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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건장한 사람들이 나타나 ㄱ 씨를 간단하게 제압한 뒤, 차에 태워 정신병원에 데려간다. 정신과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원을 결정했고, 가족들에게 동의서를 받아 격리병동에 수용한다. ㄱ 씨가 격하게 불만을 드러내면 손발이 침대에 묶이거나 ‘코끼리 주사’를 맞는다. 장기입원 6개월을 무료하게 보냈더니 기간이 연장된다. 간혹 병원 문밖을 나서게 되면, 며칠 되지 않아 다시 돌아오거나 잡혀 온다. 우여곡절 끝에 밖으로 나왔지만, ㄱ 씨에게는 만날 친구도, 일할 곳도, 살 집도 없다.

 

가상의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는 있을 법한 일이다.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조항이 무색하게도 어떤 정신장애인들은 지금도 강제로 정신병원에 끌려가 원치 않는 치료를 받고 있다. 정신장애에 대한 적절한 치료는 필요하지만,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이러한 방식은 이들 삶의 미래도 지워버린다.

 

이러한 한국과 달리 '정신병원 폐지'가 법률로 명시된 나라가 있다.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사는 것이 현실인 나라, 이탈리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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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위 캔 두 댓」. 이 영화는 정신병원 폐지를 주 내용으로 하는 '바살리아법' 시행 초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 사는 것이 현실인 곳

 

정신병원 부설 협동조합 180 그룹홈에 사는 루카 씨는 동료와 함께 나무 조각 모자이크로 마루를 짜는 것이 주업이다. 지역사회에서는 그들이 시공한 마루가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 손이 부족할 만큼 일감이 많다. 그는 조합원 동료들과 함께 사업을 논의하고, 임금도 동등하게 나눈다. 루카 씨는 진정제 투여량이 너무 많아 일할 시간에 무기력해지는 것이 불만이다. 조합 매니저, 의사와 상의해 진정제 양을 반으로 줄인 덕에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1980년경 이탈리아 협동조합을 다룬 영화 「위 캔 두 댓」(2008, 줄리오 만프레도냐 감독)에 나오는 정신장애인 루카(조반니 칼카그노 분)의 이야기이다. 루카와 동료들은 넬로(클라우디오 비시오 분)라는 조합 매니저를 만나 정신병원 수용이 아닌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 그들은 치료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의사와 동등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가족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고, 공동체에 참여해 민주적으로 권리를 행사한다.

 

영화 속 '협동조합 180'은 1981년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정신장애인과 의사가 함께 만든 논첼로 협동조합(Coop Noncello)이 모델이다. 가구 제작 등의 사업을 진행하는 논첼로 협동조합은 최초 10여 명으로 시작해 최근 600여 명으로 인원이 늘었다. 이탈리아 전국적으로는 약 3만여 명 가량의 정신장애인이 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장애인 탈원화의 토대 ‘바살리아법’

 

이처럼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토대를 만든 것은 1978년 의회에서 통과된 정신보건 법률 ‘바살리아법(Basaglia Law)’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9년 발간한 ‘정신장애인 인권개선을 위한 각국의 사례연구와 선진모델 구축’을 보면, 이탈리아에서도 1960년대까지는 많은 정신장애인, 빈민, 범죄자 등이 공공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됐다. 1904년 제정된 정신보건 관련법은 법원 판사가 정신장애인의 최초 입원을 결정하고 1개월간 평가기간을 거친 뒤 퇴원 혹은 영구 수용을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1조에 명시했다.

 

또한 당시 공공정신병원 내규에는 "정신질환에 걸린 환자가 자신 또는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을 때,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고 보호받아야 하며, 정신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호되거나 치료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유럽 각국에서 일어난 혁명의 영향을 받아 정신장애인의 탈원화 운동이 시작됐고, 프랑코 바살리아(Franco Basaglia) 등 진보적 정신보건 의학자들도 정신병원의 억압적인 의료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 결과 이 정신과 의사의 이름을 딴 바살리아법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바살리아법의 주요 내용으로는 1980년 1월부터 모든 정신병원의 신규 입원을 금지하고 그 규모를 점차 축소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대신 지역정신보건센터를 설립해 정신과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일반 종합병원에는 급성 정신과 치료 병상을 두되 최대 15개 이내로 제한했다.

 

강제입원은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치료할 수 없거나 치료에 실패했을 때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됐다. 그 경우에도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 2명의 독립적인 평가가 있어야 하며, 기간도 최대 7일까지만 허용된다. 기간 연장이 필요한 경우에도 엄격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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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0년대 이탈리아 정신보건 개혁을 주도한 정신의학자 프랑코 바살리아. 그의 이름을 딴 법이 1978년 제정됐다. ⓒHarald Bischoff (CC BY-SA 3.0)

 

# 공공정신병원 문 닫은 곳, 지역 기반 정신보건 체계 자리 잡다

 

이후 이탈리아 사회는 정신병원 중심이 아닌 지역사회 전반에 걸친 서비스 체계를 구축했다. 법 시행 당시 7만 8538명이 수용됐던 76개 공공정신병원은 1999년까지 모두 문을 닫았고, 지역정신보건센터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2006년 기준 707개의 지역정신보건센터가 설치됐고, 공공정신병원의 의료 종사자들은 지역정신보건센터 인력으로 편입돼 지역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보건센터는 12시간 이상 운영해 지역 정신장애인의 응급 상황에 대비하며, 3~4개 팀으로 나눠 가정방문 등 최일선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반 종합병원에서 이뤄지는 입원치료는 전반적인 정신보건에서 적은 부분을 차지하며, 역할도 10일 내외의 응급 치료로 한정된다. 바살리아법의 강제입원 제한 규정이 충실히 반영되면서, 이탈리아의 강제입원율은 지속해서 하락 추세를 보인다.

 

또한 의료서비스와 연계해 2006년 기준 각 도시와 보건센터 등에는 아파트, 단독주택 등 1370개 주거지원 시설이 설치돼 1만 7138명이 거주하고 있다. 노동 영역에서는 실업률이 높은 이탈리아 특성상 정신장애인의 취업이 어렵기는 하나, 민간 영역을 통해 이러한 문제가 일부분 보완된다. 예컨대 시민들은 협동조합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적 관계 형성을 독려하며, 정부는 헌법과 사회적협동조합법 등 법률로 협동조합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2006년 기준 4862개의 병상을 지닌 54개 민간 병원은 바살리아법 시행에도 병상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역 간 서비스와 인력 분포가 불균등한 문제 등은 정신장애인 지원체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해결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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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내 협의를 거쳐 마루 짜는 일을 하게 된 정신장애인들. 이를 통해 이들은 지역사회 자립에 성공한다. (영화「위 캔 두 댓」화면 갈무리)

 

# 한국에서도 정신병원·강제입원 없는 사회는 가능할까

 

“바살리아법으로 정신병자들이 풀려났죠. 가족들이 이 정신병자들을 데리고 간다면 아마 가족들도 미쳐버릴 게 뻔해요. … 정신병은 법으로 치료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다시 영화 「위 캔 두 댓」의 초반부. 의사이자 협동조합 180의 이사장인 델 베치오(조르지오 콜란젤리 분)는 바살리아법 초기 지역사회 중심, 당사자 중심 정신보건 체계에 완고하게 반대한다.

 

그가 관리하고 있던 협동조합은 단순히 바살리아법 이전의 정신병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흥분하면 사람을 때리는 성향이 있는 루카의 진정제 양을 줄이자는 넬로의 제안에는 “루카가 어땠는지 아세요? 그 속에 포악한 상어가 있다고요.”라는 악담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던 그가 변한다.

 

“치료 효과가 향상됐어요. 가능하지 않다고 봤는데, 당신(넬로)이 하던 게 효과가 있었죠. 계속하세요.”

 

바살리아법 초기 많은 정신과 의사와 대중은 영화 초반 델 베치오와 비슷하게 정신장애인의 탈원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봤을 수 있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사회적인 노력이 이어지면서, 반대 측 사람들도 차츰 정신장애인을 병원에 가두는 것 이외의 길이 있음을 인정하게 됐을 것이다. 그렇게 이탈리아는 정신병원과 강제 입원이 없이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됐다.

 

40여 년 전 이탈리아 정신장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현재 한국의 정신장애인들도 권리가 박탈되는 정신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물론 정신병원 의사와 정신보건의학자들이 당사자들과 함께 강제입원의 비인권성을 주장했던 이탈리아와 비교한다면, 한국의 정신장애인들이 내는 목소리는 아직 사회적으로 미약하다.

그러나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보면 지역생활 자립을 요구하는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맞닿아있다. 1991년 UN이 발표한 ‘정신장애인 보호와 정신보건의료 향상을 위한 원칙’에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노동하며 살아갈 권리(원칙 3), 강제 입원 최소화와 입원기간 단축(원칙 15, 16) 등의 내용이 명시됐다.

 

법으로 정신병원을 없앤 이탈리아가 독보적인 사례이기는 하나, 영국, 미국, 독일 등 여러 국가에서도 20세기 후반부터 정신장애인의 탈원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들 나라의 정신병원 입원 인원수, 강제입원율, 평균 입원 일수 등이 지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를 보인다. 한국과 유사한 정신보건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일본도 1987년 정신보건법 제정을 시작으로 정신장애인의 탈원화와 지역사회복귀 촉진을 명시한 법률이 제·개정되고 있으며, 이에 맞춰 지역사회 정신의료보건복지체계의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정신보건법 대신 지역사회 복지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을 제정하기 위해 1인 시위, 기자회견, 공청회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여전히 정신병원, 정부, 사회는 꿈쩍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될 안과 밖의 변화 요구에도 저들이 꿈쩍하지 않을까. 그것은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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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정신장애인 복지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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