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우리에게 ‘일상’을 허하라

by 베이비 posted May 2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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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사회연대가 주최한 바늘땀연대의 대형걸개 천에 '마음 편하게 연애하고 공부하고 여행하고 늙어갈 수 있는 그런 사회, 원해요'라는 문구를 적어넣었다.


"마음 편하게 연애하고 공부하고 여행하고 늙어갈 수 있는 그런 사회, 원해요"

‘바늘땀연대’의 대형걸개작업이 완성됐다. 걸개에 지지와 연대 발언을 하나씩 쓰라고 해서, 나도 쓰고 싶은 말을 썼다. 조금은 뜬금없나 싶으면서도 생각하던 걸 글로 옮겨놓으니 마음 한편으로는 뿌듯하다. 그 문장을 마주 대하고 있자니 가슴이 한가득 부풀어 오르는 것도 같았다. 설렌다. 이 얼마나 멋진가. 연애, 공부, 여행, 늙음, 이 모든 것들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사회라니.

연애에도 돈이 드니 만나기 전 통장잔액부터 확인하고, 공부가 하고 싶어 대학원에 들어갔으나 한 학기 오백만 원에 육박하는 학비와 생활비, 암담한 미래에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견디다 못해 결국 때려치워 버린 내 모습이 생각났다. 마음 접고 자퇴했으나 여전히 학자금대출을 갚고 있다. 내게 여행은 사치다. 그래도 갑갑하니 종종 가난한 사치를 부려본다.
 
정년퇴직 후 “내일 출근 안 하니깐 괜찮아, 집에서 할 일도 없는데 뭐…”라는 말을 종종 습관처럼 내뱉으시는 아빠의 모습을 대할 때면, 늙어간다는 게 얼마나 숨 막히는 건가 싶다. 늙어서 퇴출당한, 사회로부터 정리해고된 인생. 다정치 못한 딸은 그런 아빠에게 짜증을 부린다. 아빠의 늙어가는 모습이 끔찍하다. 늙어가는 게 아니라 낡아가는 것 같다. 낡은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머리가 얼얼하다. ‘나는 저렇게 살기 싫은데….’ 마음속으로 웅얼거려본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생각에 온 존재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영혼이 텅 비어 버린다. 그 느낌이 싫다. 참 우울하다. 나는 재미있고 신나게 살고 싶다. 다만, 그뿐이다. 통장잔액 바라보기 전에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먼저 살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생존에 삶을 압도당하긴 싫다. 현재의 일상에서 도망쳐 또 다른 일상을 꿈꾼다. 

▲지난 17일 빈곤사회연대 주최로 대한문 쌍용차 해고노동자 분향소에서 2주 동안 진행된 '바늘땀연대'의 대형걸개작업이 완성됐다.


“내가 찾고 싶은 일상이요?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것, 저녁에 아이들이랑 밥 같이 먹는 것, 아이들보고 숙제했느냐고 물어보고… 숙제 안 했으면, 숙제 도와주는 거요.”

어떠한 일상을 되찾고 싶은지 물었더니, 쌍용차 해고노동자 고동민 씨가 대답한다. 그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듯 언어를 찾는다. 아니, 그가 더듬거리며 찾은 것은 어쩌면 언어가 아니라, 그의 ‘빼앗긴’ 일상에 대한 그리움 일지도 모른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네, 저도 그랬으면 정말 좋겠어요…”라는 공감의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먹먹했다. 대신 “집엔 언제 다녀오셨어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분향소가 설치된 뒤 지난 4월 21일 추모대회 날, 평택 가는 길에 집에 한 번 들렀다고 한다. 어린이날 당일에는 못 가고, 그 다음 날 막차 타고 갔다가 하룻밤 지내고 다음 날 아침만 챙겨 먹고 올라왔다고 한다. 집에 가니 씻을 수 있어서 좋고 편하다고 했다.

나는 매일 집에 가고 매일 씻는데. 그런 짤막한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일상적인 것 아닌가. 일상적인 것, 나에겐 일상이나 그 누구에겐 되찾고 싶은 것. 나도 언젠가 저들처럼 내 일상을 빼앗기는 날이 올까. 그럭저럭 일상을 유지한 채 또 다른 안온한 일상을 꿈꾸는 나와 빼앗긴 일상을 고향처럼 그리워하는 그의 모습. 두 사람은 차마 만나지 못하는 섬처럼 마주 앉아 대화한다.

▲고동민 씨가 걸개 천에 '한두 번 연대로 실망하지 마라! 수많은 실망과 고통 속에서도 버텨온 사람들이 있다. 그 질기게 버텨온 사람들에게 끝까지 손을 내밀어라!'라는 문구를 적어 넣고 있다.


묘하다, 일상을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자체가 일상이 되고 말았다. 그들의 일상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들의 삶에서 일상을 쑤욱 뿌리째 뽑아버린 손은 보이지 않는다. 

5월 18일, 고 이윤형 씨의 49재가 지나가고 19일에는 범국민대회가 서울역에서 열렸다. 그리고 19일 밤, 고동민 씨 페이스북에는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 속에서 둘째 아들 이든이가 그의 품 안에 기대어 잠들어 있다. 그 사진 밑에 적혀 있는 말. “둘째 넘(놈) 이든은 언제 도착하는 거야 라며 칭얼대다 폭 잠드셨다. 우리가 찾고 싶었던 건 이런 일상이다”

일상을 되찾기 위해 일상을 잠시 미뤄둬야 하는 삶.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은 등 뒤로 감춰놓는다. 아내가 챙겨주는 옷 대신 때 묻은 상복을 챙겨 입는다. 길 위에서 끼니처럼 도시의 먼지를 코로, 입으로 들여 삼킨다. 그렇게 대한문 앞에서 49일을 버텼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집에 갈 수 없다. 아직 도래하지 않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집은 정류장처럼 잠시 스쳐 지날 뿐이다. 

묻고 싶다.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 일상을 부정하며 일상을 살고, 나는 오늘을 살고 있으나 내일을 꿈꾸며 행복해한다. 왜 오늘 안에서 행복하기는 어려운 걸까. 오늘의 행복은 다가오지 않은 내일에 수탈당한 것인지. 내일이 오면, 내일은 또 그다음의 내일을 꿈꾸며 살지 않는가. 내가 꿈꾸는 ‘내일’은 대체 언제 도래하는가. 

당신의 일상과 나의 일상. 길 위를 걸어가는 저 이름 모르는 이의 일상. 수많은 이들의 일상이 씨실과 날실로 교착된다. 교착된 일상은 하나의 세계가 되어 비틀거리며 굴러간다. 이 거대한 세계의 단면은 사람들의 일상으로 촘촘히 박혀 있다. 그 안에 그들의 일상과 나의 일상이, 당신의 일상이, 내일의 희망에 수탈당한 오늘의 저녁이 저물어간다.  
 
▲비 오는 날의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의 모습.

▲비 오는 날, 한 기자가 "가자! 총파업으로"라는 문구가 적힌 우산을 들고 촬영을 하고 있다.

▲한 남성이 바느질을 하고 있다.

▲바늘땀연대 작업 중, 한 여성이 작년 여름 희망버스 손수건 "사람이 우선이다" 천조각을 바느질하고 있다.

▲바느질하고 있는 한 남성의 주름진 손.

▲"학살을 멈춰라"

▲"용산과 쌍차는 하나다! 구속자 석방! 책임자 처벌!"

▲민주노총 전국여성노동조합연맹 전국비정규직여성노동조합(아래 여성연맹)에서 연대 방문을 왔다. 고동민 씨가 사회를 보고 있다.
▲'최저임금 현실화! 간접고용 철폐!'라는 문구가 적힌 몸 피켓을 입고 있는 여성연맹 조합원들.

▲고 이윤형 씨 분향소에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회원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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