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운동 과정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를 내지 못해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중증장애인 활동가 6명이 9일, 늦은 2시경 모두 출소했다. |
중증장애인들의 투쟁으로 2007년 4월부터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가 도입됐다. 제도의 도입과 함께 정부는 활동보조 지원 대상인 1급 중증장애인들에게 장애등급재심사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2007년부터 2010년까지 9천여 명이 넘는 장애인들이 등급재심사를 받아 이중 36.7%가 등급이 하락했다.
등급하락으로 활동보조 지원이 끊겨 생존권에 위협을 받은 중증장애인들은 2010년,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를 점거하고 집단단식에 들어갔다. 당시 중증장애인들은 ‘소, 돼지’처럼 등급이 매겨지는 삶이 아닌, 보편적 권리를 가진 인간의 삶을 위해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쳤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응답은 벌금 폭탄이었다.
2010년 장애등급심사센터 점거 농성, 국가인권위 점거 농성 등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과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30~120만 원의 벌금을 받은 중증장애인들이 지난 7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 모였다. 수십만 원의 벌금을 내지 못해 공권력의 수배에 쫓기던 중증장애인들은 '차라리 잡아가라!'며 노역을 택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기초생활보장수급자 혹은 차상위계층이다.
7일 밤 10시께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중증장애인 6명은 복역한 지 3일 만에 종교단체의 벌금 대납 등의 절차를 거쳐 출소했다. 9일 오후 서울구치소에서 나온 중증장애인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부산 삶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상래 소장은 2010년 장애등급심사센터 점거 농성으로 벌금 30만 원을 받았다. 조 소장은 “부산에서부터 결의하고 올라왔지만 막상 구치소에 들어가니 여기는 사람이 들어와선 안 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면서 “이 안에는 자유도 없고 사육당하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특히 구치소는 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인이 생활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이날 풀려난 6명의 말을 종합해보면, 복도에서는 휠체어 이용이 가능하나 여러 명이 사용하는 방은 한 평 남짓한 공간으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었다. 따라서 방에 들어갈 때는 휠체어에서 방바닥으로 내려가 생활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첫째 날 새벽, 심한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중증장애인 활동가의 팔이 빠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구치소 교도관들은 중증장애인의 활동보조를 같은 방을 쓰는 수감자에게 맡긴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구치소에 수용됐던 중증장애인 6명은 같은 방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활동보조를 받을 수도 있고 전혀 받지 못하기도 하는 등 편차가 심했다. 이는 일반 사회에서 장애인활동보조를 하기 위해 전문적인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것과 극히 대조된다.
조 소장은 “방에서는 휠체어를 탈 수 없으니 움직이지 못해 화장실도, 씻는 것도 할 수 없었다”라며 고충을 털어놨다. 장애인문화공간 박정혁 활동가 역시 “화장실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굉장히 좁았다”라고 밝혔다. 교도소 측은 ‘장애인 방’이라고 밝혔으나 실제 장애인 편의시설이 설치된 것은 아니었다.
조 소장은 “사흘 동안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를 보고 ‘이것도 투쟁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내게 투쟁은 그야말로 삶 자체인데 밥 먹는 것도, 씻는 것도, 사랑도 모두 투쟁이다. 이미 가지고 태어난 장애는 바꾸지 못하겠지만 내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은 투쟁으로 바꿀 수 있다.”라며 이번 ‘노역 투쟁’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 ▲지난 2010년, 중증장애인들이 장애등급심사 중단과 장애등급제폐지를 요구하며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점거 당시 모습. |
3일간의 구치소 생활 동안 인권침해 사례도 밝혀졌다.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규식 소장은 “구치소 와서 처음 들어간 방은 노인 2명과 나를 포함해 장애인 2명이 있는 방이었는데 그곳 방장이 반말하고 밤새 나를 걷어차는 등 잠도 못 자게 했다”라며 “방장은 내게 ‘밥 먹으면 소변은 누가 치우냐’, 교도관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 장애인은 밥 주지 말고 물만 먹여라. 똥 많이 싸면 치우기 어렵다’라는 등의 말을 했다”라고 밝혔다.
장애인활동가들이 구치소에 들어간 다음 날인 8일 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직권조사가 이뤄졌다. 이 소장은 이러한 인권침해 사실을 인권위에 알리며 방을 바꿔 달라고 요구했고, 그 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있는 방으로 옮기게 됐다.
이 소장은 “방을 옮기기 전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죄를 지어 사람을 구치소로 잡아왔으면 최소한 사람이 먹고, 쌀 수 있게는 해야 하지 않느냐”라며 “심지어 구치소 보안과장이 왜 중증장애인에게 벌금 때리고 수배 내려서 구치소로 들어오게 하느냐, 왜 우리가 중증장애인들을 책임져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라고 꼬집었다.
이 소장은 ‘오이도 참사’로 알려진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휠체어리프트 추락사건 당시 장애인이동권연대 투쟁국장을 지냈으며 지금까지 장애인운동을 해오고 있다. 그동안 현장투쟁 등으로 이 소장이 받은 벌금 총액은 3,000만 원 남짓이다. 2007년 처음 구치소에 들어가 봤다는 이 소장은 “이제까지의 벌금은 구치소로 가서 ‘몸빵’ 하거나 다 갚았다”라며 “올해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날과 5월 1일 노동절 재판이 남아있는데 또 벌금을 매긴다면 다시 구치소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 ▲장애인운동 과정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고 이를 내지 못해 수배 중이던 장애인활동가 8명이 지난 7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자진 노역을 신청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영희 소장은 “하루에 한 번 30분, 뒷마당으로 나가는 운동시간이 있었는데 경사로는 있으나 자갈이 깔린 흙바닥이어서 휠체어가 상할까 봐 나가지 않았다”라며 “만약 장기간 수감 생활을 해야 하는 중증장애인이 들어온다면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운동이나 햇빛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과 시설이 필요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또한 양 소장은 “첫날 들어왔을 때, 같이 들어온 활동가 중 언어장애가 심한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과 같은 방을 쓰게 해달라고 요구했는데 구치소 측은 동일범죄인은 공범으로 인정되어 같은 방을 쓸 수 없다고 답했다”라며 “그러나 우리는 이미 판결이 끝났고 다만 벌금을 못 내서 수감된 것이므로 이러한 답변은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양 소장은 “국가인권위 조사관이 왔을 때, 이 부분에 관한 이야기와 검찰청에서 구치소로 수송하는데 6시간을 대기한 점, 검찰청에서 식사할 때 활동보조인을 지원하지 않은 부분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라고 밝혔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강민 사무총장은 “밖에 나갈 수 있는 운동시간이 30분 있었지만, 사람들이 나는 방에 있으라고 하며 나가지 못하게 했다”라면서 “둘째 날 인권위 조사가 진행됐지만 전혀 개선된 사항은 없었다”라고 밝혔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중증장애인들의 구치소 수감에 대해 지난 8일 긴급 조사를 진행했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정당한 편의시설 제공 여부 등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