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장애여성, 장애인·여성으로 다중 소외 겪어

by 베이비 posted Nov 0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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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아시아·태평양 장애포럼(Asia Pacific Disability Forum) 컨퍼런스의 주제별 워크숍의 하나인 ‘아시아태평양 지역 장애여성 재생산 정치’ 워크숍이 지난 28일 이른 9시 30분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렸다.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은 어떻게 보장받고 있는가? 한국, 홍콩, 일본, 인도, 필리핀, 태국 등의 여성들이 모여 장애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공유하며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한자리에 모인 장애여성들은 여성의 재생산은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함에도 사회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장애인이자 여성으로서 다중 소외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 비판했다.

또한 자신이 장애인이기에 ‘장애아동을 낳을 수 있다’는 이유로 주변인들과 사회적 시선에 의해 출산 금지를 강요당하고 있는 폭력적 현실에 장애여성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음에 모두가 공감했다.

2012 아시아·태평양 장애포럼(Asia Pacific Disability Forum) 컨퍼런스 주제별 워크숍의 하나인 ‘아시아태평양 지역 장애여성 재생산 정치’ 워크숍이 28일 이른 9시 30분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렸다.

이날 기조강연을 맡은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황지성 소장은 장애여성의 재생산이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설명했다.

▲장애여성 공감 황지성 성폭력상담소장
황 소장은 “장애인의 재생산에 대한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이에 대해 장애여성의 자유로운 선택이 과연 가능한가?”라고 되물으며 “이를 둘러싸고 의료기술, 정상성의 압력, 장애여성의 독립과 결혼의 문제 등 어려운 문제들이 존재한다”라고 전했다.

황 소장이 발표한 바로는 오늘날 의료과학기술의 발달로 임신한 여성이 출산 전에 시행하는 산전검사는 상당히 발달했으나, 간단한 치료로 나을 수 있는 태아의 문제에 대해서는 (치료 대신)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 소장은 “장애여성이 독립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장애여성은 결혼을 유일한 독립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혼 후 출산 시, 본인이 장애인이기에 태아도 조그만 장애라도 있으면 부담스러워 낙태를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라며 “장애여성은 이것이 장애 인권에 반함에도 스스로 낙태를 선택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장애여성의 선택은 정상성에 대한 사회의 압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황 소장은 “경제논리에 의해 과학기술이 개발되면서 과학과 의료가 시장화되어 발전한 의료기술은 장애여성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라며 “유전적 장애가 있는 장애여성이 비장애아를 낳는 사례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더더욱 몸의 정상성에 몰두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재생산 기술까지 발달시켜 오늘날 사람들은 몸의 정상성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장애를 더 배척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황 소장은 “장애여성의 재생산 정치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강하게 받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지국적 장애여성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때 장애여성의 재생산권 문제는 헌법에서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하고 있으나 장애를 포함해 몇몇 경우에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한국 법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영향 아래에 있는 문제가 된다.

홍콩여성연합회 카렌 나기(Karen Nagi)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 여성연합회에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25~60세의 다양한 연령대에 걸쳐 30명의 정신질환과 40명의 지체장애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카렌 씨는 “응답자의 60%가 주변 사람으로부터 (장애여성이기에)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고 들었으며, 그 중 5%는 직접 '장애여성이니 아이를 가지지 말라'고 들었다”라면서 “그러나 장애인 당사자의 97%는 자신에게 출산권이 있다고 생각하며, 3%만이 아이를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카렌 씨는 “응답자 중 결혼한 사람들 가운데 80%는 이미 아이가 있으나 그중 70%는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육체적·정신적 장애의 이유, 약물 복용, 재정적 어려움, 사람들의 차별적 시선 등이 어려움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카렌 씨는 이번 조사에 대해 “정신, 지체 장애여성은 다른 장애여성보다 더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면서 “설령 장애가 유전적으로 대물림 되더라도 그것이 장애여성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이유가 될 수는 없으며,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은 사회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APDF ‘아시아태평양 지역 장애여성 재생산 정치’ 워크숍에 참여한 발표자들,

국제시각장애인연맹 아태지부 미치코 타바코(Michiko Tabata) 씨는 시각장애여성의 재생산권에 관해 이야기했다.

미치코 씨는 “눈이 안 보이니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남편 혹은 친척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라며 “현재 이러한 맹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캠페인을 하고 있으며, 시각장애여성의 자녀 양육은 과거보다 늘어난 추세”라고 설명했다.

인도 장애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샨타기념재활센터 리나 모한티(Reena Mohanty) 씨는 “인도 장애여성의 지위는 매우 열악한데 인종차별, 높은 문맹률, 열악한 의료시설, 성적 학대 등에 시달리고 있으며 현재 샨타기념재활센터는 900여 명의 장애여성을 돕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리나 씨는 “2007년에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한 이래 장애여성이 이용할 수 있는 법률, 시설물에 대한 교육 등을 하고 있다”라면서 “장애여성은 자기표현을 잘 하지 않는데 처음에는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그 후에는 기술교육, 은행과의 연계를 돕고 있다”라고 밝혔다.

샨타기념재활센터에서는 기술 교육을 통해 자신이 만든 물건을 가장 최적의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도록 주선한 뒤, 지역은행에서 도움을 받아 자신의 가게를 운영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리나 씨는 “장애여성이 출산, 임신을 하게 되면 보건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라면서 “이렇게 장애여성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장애인의 권리,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등을 알리고 장애여성 권리 보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방정부와 협력하고 있다. 조만간 인도에서도 장애여성 권익보호법안이 새롭게 제정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세계장애인연맹 아태지부 사와락(Saowalak Thongkuay) 사무국장은 “장애여성은 성차별, 장애, 사회적 배경 등 사회로부터 다중 차별을 당하고 있다”라며 “팔다리가 없는 성폭행 피해 여성을 사람들이 그냥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든가, 욕창을 앓는 장애여성을 두고 남편이 사라지는 등 장애여성은 카스트 제도의 최하위계층처럼, 혹은 2등 국민처럼 살아간다”라고 토로했다.

필리핀 가항 와랑 하다낭 조슬린 가르쿠아 세바로스(Jocelyn Garcua Cevaros) 이사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통해 장애여성의 어려움을 역설했다.

▲필리핀 가항 와랑 하다낭 조슬린 이사
조슬린 이사는 “필리핀에서 장애여성은 가족들로부터 학대받는 확률이 높고, 집에 갇힌 채 빨래 등 가정일만 하도록 제한된다”라면서 “장애여성에 대한 인권침해 가능성은 크나 이들은 자신을 옹호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조슬린 이사는 “가족 모두가 장애여성을 감시하고 있어 장애여성은 누구를 만나거나 남자를 사귀는 게 불가능해 사랑이나 로맨틱한 관계를 맺기 어렵다”라면서 “나는 마치 내 앞에 커튼이 처져 있어 그 누구도 나를 보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 역시 로맨틱한 관계를 원한다.”라고 밝혔다.

조슬린 이사는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성적 소외에 대해 강조했다. 현재 조슬린 이사는 결혼해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결혼 후, 자궁절제수술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조슬린은 아이를 입양해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조슬린 이사는 “장애여성도 성에 대해 동일한 욕구가 있으나 장애여성의 섹스에 대해서는 공론화되지 않는다”라면서 “장애가 있는 커플은 이에 대해 교육받지도 못하고, 이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에 사회는 무관심하다”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무관심은 결국 제도의 미흡함과 재생산 등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의 무지와 이어진다. 조슬린 이사는 “그래서 장애 때문에 직면하는 문제보다 법적 지원을 받지 못해 부딪히는 문제가 훨씬 많다”라며 “장애인 당사자는 자신의 신체에 대해 기본적 지식을 갖추지 못한 예도 있다”라고 밝혔다.

조슬린 이사는 장애여성에 대한 병원 의료진들의 인식 부족과 병원 및 보건시설의 물리적 접근성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조슬린은 “현재 장애여성에 대한 정책과 프로그램은 임신 예방에 중심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장애여성의 임신은 간과한 것으로 의료진과 간호사들에게도 장애인 재생산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라며 “이미 임신한 사람에게 병원은 아이를 낳지 말라, 혹은 다음엔 임신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듣는 장애여성은 처참한 기분이 든다”라고 밝혔다.

조슬린 이사는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 보건에 관해 세부조항이 없는데 이를 마련해 장애여성을 폭력에서 보호하고 장애여성에 대한 적극적 지지와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라며 “앞으로 10년 동안 장애여성 당사자들끼리 파트너쉽을 강화해 이에 대한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워크숍은 20여 명의 여성이 참여한 가운데 세 시간가량 이어졌다.

한편, 황 소장은 발표에서 “한국 헌법에선 낙태를 금하고 있으나 신체적·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경우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라면서 “그런데 현재 여성운동에서는 장애로 말미암은 낙태가 법으로 금지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장애인운동에서는 이러한 낙태는 장애 인권에 반한다고 주장해 이 둘이 마치 대립하고 있는 듯 보인다”라고 설명하며, 법 조항을 둘러싼 딜레마에 대해 다른 아태지역에서의 논의는 어떠한지 물음을 던졌으나 이날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토론회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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