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생애 첫 대선 참여

by 베이비 posted Dec 20, 20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8대 대통령선거가 진행된 19일, 중증장애인들도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에 나섰다.


18대 대통령선거가 진행된 19일, 중증장애인들도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에 나섰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장애인자립생활주택 평원재에 사는 중증장애인 6명은 이날 오전 11시 혜화동 제1투표소인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으로 향했다.

생활관 1층에 설치된 투표소 앞에는 이미 투표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한 바퀴 돌아서 있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투표소에 설치된 임시 경사로를 올라가 본인 확인을 거쳐 어렵지 않게 투표할 수 있었다. 근육강직과 손 떨림 등으로 혼자 투표할 수 없는 사람들은 활동보조인이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 보조를 하며 선거에 참여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김명선 씨.
이날 투표한 6명 중엔 작년 7월에 시설에서 나와 올해 4·11총선에 이어 생애 두 번째로 투표한 김남옥 씨(49세)도 있었다.

김 씨는 “투표를 하니 국민의 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매우 좋다”라며 밝게 웃었다. 김 씨는 병원에서 지내다가 28세에 시설에 들어간 뒤 20년 동안 시설에서 지냈다.

김 씨는 “스무 살 넘어서는 병원에 있어서 투표하지 못했고 시설에서도 아예 투표하지 못했다”라며 “지난 총선 이후로 두 번째 투표”라고 전했다. 자신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김 씨는 새로운 대통령이 될 후보에게 “국민에게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보장하고 장애등급제를 폐지해달라고 전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김남옥 씨보다 두 달 늦게 시설에서 나온 김명선 씨(40세)도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게 자율적으로 투표한 건 지난 총선 이후로 두 번째다.

김 씨는 본인이 기억하지 못할 어린 시절에 시설로 들어가 작년 9월에 시설에서 나왔다. 시설에서는 시설장과 시설직원 등의 강요로 특정후보에게 투표해야만 했다.

김 씨는 “시설에서 나와 밖에서 자유롭게 투표하니 좋다”라며 “나 자신이 후보에 대해 좋고 나쁜 게 무엇인지 생각하며 노력할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전했다.

김 씨는 “그러나 (신체적 조건으로) 직접 투표하지 못하고 활동보조인의 보조를 받아야만 해서 아쉽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김 씨는 새롭게 대통령으로 당선될 후보에게 부양의무제 폐지를 실현해줄 것을 요구했다. 김 씨는 “만약 내가 찍은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복지를 잘했으면 좋겠다”라며 “특히 다 같은 사람인데 부모 있는 사람은 돈 안 주고 부모 없는 사람만 돈 주는 부양의무제는 차별이다. 부양의무제가 폐지되었으면 한다.”라고 했다.

이날 투표에 참여한 김명학 씨(55세)는 “장애인이다 보니 복지 관련 공약과 진보적 성향의 사람인가를 고려해 투표했다”라며 “장애인과 소수자들에게 제도적으로 많은 복지가 이뤄졌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김 씨는 “장애인이라고 거소투표를 하라고 하는데 나는 하지 않았다”라며 “내 한 표는 내가 직접 가서 행사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투표하고 있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 근육강직과 손 떨림 등으로 혼자 투표할 수 없는 사람들은 활동보조인이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 보조를 하며 선거에 참여했다.

그러나 한편, 이번 대선에도 투표소와 기표소에 장애인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아 이에 항의하는 상황이 여전히 발생했다.

낮 12시 50분경 석관동 제7투표소 석관래미안 아파트 관리동에 투표하러 간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소장은 2층에 있는 투표소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30여분가량을 기다려야만 했다.

박 소장은 “아파트 관리동이 2층 건물이었으나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라며 “장애인, 노약자 등 2층 투표소에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비해 1층에서 안내하는 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 측 사람도 없었다”라고 밝혔다.

▲석관동 제7투표소 석관래미안 아파트 관리동. 투표소가 2층에 마련되어 있었으나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 소장은 “같이 간 활동보조인이 2층 투표소에 올라가 알려서 1층에 간이 기표소를 설치해 결국 투표할 수 있었다”라며 “그러나 만약 활동보조인이 없는 장애인이 왔다면 주권 행사도 못 하고 돌아가는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소장은 “선관위 측 사람들이 내려와 전동휠체어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가려 했는데 전동휠체어가 들어가기엔 계단의 높이와 폭이 좁아 불가능한 상황이라 이에 항의했다”라고 설명했다.

박 소장의 항의로 1층에 조립식 간이 기표소가 설치되었으나 박 소장이 투표하기까지의 과정에서도 선관위의 부실한 준비는 드러났다.

박 소장은 “명부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었음에도 선거인명부가 한 권밖에 없어 명부를 들고 내려올 수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선관위 사람들이 논의하는 데만도 30여 분이 지체됐다”라며 “결국 선관위 측에서 내려와 확인하면서 간이명부를 만들어와 서명하라고 했다”라고 전했다.

박 소장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선관위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투표 도장도 여분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또 한 번 지체됐다”라면서 “준비가 부실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박 소장은 “선관위의 방임”이라며 “어이가 없었다”라고 성토했다. 박 소장은 “선거공보물을 받았을 때 투표소가 2층이라고 되어 있어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겠구나 예상은 했었다”라면서 “그러나 선관위 또한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준비하지 않았으니 선관위는 이에 대해 알면서도 방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1층에 마련된 혜화동 제1투표소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엔 임시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 휠체어 이용 장애인도 어렵지 않게 투표할 수 있었다.

▲ 한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의 보조를 받으며 투표를 마치고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선거를 마친 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장애인자립생활주택 평원재에 사는 중증장애인들의 선거 인증샷.

▲한편, 이번 대선에도 투표소와 기표소에 장애인접근권이 보장되지 않는 곳이 속출했다. 석관동 제7투표소 석관래미안 아파트 관리동 1층에 설치된 간이 기표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2층 투표소에 올라가지 못한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소장이 투표를 위해 1층에서 본인확인 절차를 거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Articles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