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장애등급제 폐지 대안으로 ICF 모색

by 베이비 posted Jan 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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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이른 10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증장애인을 위한 복지전달체계 연구’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주최로 열렸다.


2012년 대선에서 주요 여야 후보자들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공약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공약에 '장애등급제 폐지 및 개선’이라고 애매하게 표현했으나 실천 내용에서는 ‘장애등급제 개선 보완’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현행 장애등급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복지전달체계가 개개인의 욕구를 무시한 채 행정 편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등급제 대안으로 어떠한 것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논의하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복지전달체계 연구’ 토론회가 10일 이른 10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아래 한뇌협) 주최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한뇌협 김태현 전 사무처장이 발제를 맡고 의정부성모병원 재활의학과 김윤태 교수,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실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이미정 교수, 장애인개발원 정책개발연구부 이복실 연구원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김태현 전 사무처장
발제자로 나선 김태현 전 사무처장은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특별요구교육 석사과정에 있는 윤상원 씨와 함께 연구한 ICF(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제도를 소개했다.

ICF는 의학적 기준을 포함해 사회환경적 영향에 관한 판단도 고려해 장애상태를 확인하는 제도다. 따라서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 전반의 문제로 확대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장애를 낙인처럼 찍던 부정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될 가능성도 담고 있다.

김 전 사무처장은 “ICF를 사정 도구화해서 욕구조사를 시행하면 욕구파악이 가능해 복지전달체계에서 나타나는 복지사각지대가 해소될 수 있다”라며 “ICF는 사례관리에도 큰 도움이 되는데 이것이 데이터화 되어 쌓이면 예산이 어느 정도 필요한지 예측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사무처장은 “ICF가 사정 도구화되기 위해서는 복지전달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라며 “대만에서는 지난해부터 장애인권리보장법과 함께 ICF를 실행하고 있는데 권리보장법 안에 ICF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라고 전했다.

김 전 사무처장은 “대만은 복지전달체계, 경제수준, 문화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렇게 되기까지 10년 동안 번역사업, 법과 ICF와의 관계 등 많은 연구를 진행했다”라면서 “현재 정부는 장애인복지전달체계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며, 실제 연구용역사업도 진행했으나 아직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자들은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장애인복지체계 전달방안으로서 ICF를 적극 환영하면서도 ICF를 한국 상황에 맞게 어떻게 적절히 구성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또한 기존에 장애등급제를 사용하다가 2012년부터 ICF를 도입한 대만의 사례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실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실장은 “ICF는 장애 판정 기준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환경, 활동참여까지 보기 때문에 건강의 한 상태로 장애를 개념화해 그 사람의 건강상태를 ICF의 코드에 따라 코드화하는 것”이라며 “이것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아동, 노인 등 사회복지 서비스가 필요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김 정책실장은 “ICF는 사정 도구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도구”라면서 “작년 10월 유엔 에스캅에서 아시아·태평양 장애인 10년을 위한 이행전략 중 하나로 신뢰성 있는 장애통계를 만들자고 했는데 이를 위해선 ICF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ICF가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하는 만큼 양이 방대하다는 것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김 정책실장은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며 “ICF 평가항목은 1,400개 이상으로 방대하다. 각 나라에서 핵심적 부분만 뽑아서 만든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장애유형별로 코드를 뽑아 간편하게 이용할 방법은 없을까”라고 물음을 던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은 “북유럽은 전부터 보편적 복지라는 사회적 환경에서 개별 서비스에 대한 방식이 행정 중심적이지 않았기에 ICF의 필요성이 강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현재 ICF를 도입한 대만은 전에 장애등급제를 썼으며, 한국의 경우 이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없으면 쉽지 않기에 대만의 사례를 잘 살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남 정책실장은 “장애인계 내에서도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의 대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2단계 논의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ICF가 적극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라며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운동의 실질적 설계도의 중요 부분으로 ICF를 가져갔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ICF를 적용하려면 현재 적용하고 있는 장애유형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새롭게 나왔다.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이미정 교수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이미정 교수는 “장애유형이 존재하는 곳은 중국, 대만, 일본, 한국 등 동양 쪽이며 미국은 그 사람의 상태를 중심으로 나뉘기에 장애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장애유형 또한 행정 편의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뇌병변장애 중에도 뇌성마비, 뇌졸중이 다르고, 지체장애에서도 척수장애와 절단장애는 다르다”라며 “장애를 등급으로 나눠 1등급에 획일적 서비스를 주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는데, (그 안의 욕구가 다름에도) 장애유형별로 동일하게 지원되고 있어 이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즉 지금 처해 있는 상태 그 자체로 보는 게 타당하며, 그렇지 않으면 장애등급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ICF를 통해 평가결과가 나왔을 때 어떻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이 없는 부분도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개인별로 점검한 서비스가 나왔을 때 장애유형 특성과 연관성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ICF를 통해 동일한 점수가 나왔다고 해서 기존과 같은 서비스를 받는다면 장애등급제와 같은 결과가 또 나올 것”이라고 현재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이 교수 또한 ICF가 한국에 도입된다면 “1,400여개의 평가항목 중 우리나라 환경에 맞게 어떤 항목을 선별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라면서 “ICF를 연구 진행할 때 전문가, 의료진, 장애인당사자 세 주체가 함께 논의하며 합리적 방법을 모색하는 기회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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