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남은 이들이 장애인차별철폐 위해 투쟁할 것”

by 베이비 posted Mar 20, 201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아래 석암비대위)에서 활동하다 지병으로 숨진 이인석 열사의 4주기 추모제가 지난 17일 이른 11시 30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서울시립추모의집에서 열렸다.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아래 석암비대위)에서 활동하다 지병으로 숨진 이인석 열사의 4주기 추모제가 지난 17일 이른 11시 30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서울시립추모의집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서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형숙 공동대표는 “오늘 이 추모제에서 석암재단에 계셨던 분들과 김포지역 분들이 오셨는데. 이인석 동지 덕분에 다 모일 수 있었다”라면서 “지난해 투쟁으로 올해 4월부터 김포에 장애인콜택시가 운행되는데, 이런 것은 갑자기 된 것이 아니고 김포에서 계속 투쟁하던 석암동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라고 밝혔다.

또한 추모제에는 석암재단의 비리를 최초로 제보한 김선민 전 베데스다요양원(현 향유의 집) 생활교사가 함께했다. 김 전 생활교사는 “모두 오랜만에 뵈니 좋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뵐 것”이라고 전했다.
▲추모제에 참석한 김선민 전 베데스다요양원 생활교사.

이어 이인석 열사와 함께 베데스다요양원에서 생활했던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규선 소장은 “부끄럽지만 추모제에 처음 참석했다”라며 “하늘에서 잘 쉬고 계시리라 믿으며, 남아 있는 장애인들은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석암비대위 김진수 활동가는 “우리 석암 식구들이 다 왔다. 하늘에서 잘 지내고 계십니까?”라며 “우리가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만들었는데 고인도 함께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이인석 열사는 석암재단이 운영하는 베데스다요양원에서 생활하면서 시설 내 비리 문제와 맞서 싸우며 탈시설 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열사는 동료와 시설에서 나온 뒤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운동을 이어가며 석암비대위 활동을 지속했다.
또한 탈시설 이외의 인권문제에도 관심을 두고 '인권위 축소 행안부 규탄 결의대회'를 비롯해 각종 집회와 기자회견에 참석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열사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의 서울시립추모의집 봉안당에 안치돼 있다.
한편 16일 정오에는 이현준 열사 8주기 추모제가 강화도 황청포구에서 진행됐다.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10여 명의 활동가들은 간단한 추모제에 이어 열사의 유골을 뿌린 바다에 헌화하며 고인을 기렸다.

근이양증 장애인인 이현준 열사는 함께걸음 기자,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연구원 등을 지냈고, 지난 2001년부터 장애우권익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장애인기초연금제, 성년후견인제도, 장애인콜택시, 장애비하용어 정리, 활동보조인제도, 자립생활제도 도입 등 장애인 정책제시와 실현을 요구하는 활동을 해왔다. 열사는 자립생활을 선언한 뒤 밤에 호흡곤란 등의 증세로 4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바 있다.

▲추모하는 활동가들.
▲헌화하는 활동가.
▲열사의 영정에 절하는 한 활동가.
▲추모하는 참가자들.
▲이날 스무 명가량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현준 열사 8주기 추모제가 16일 낮 12시 강화도 황청포구에서 진행됐다.
▲추모제 직전 참가자들의 모습.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진우 활동가가 분향을 마치고 추모발언을 하고있다.
▲참가자들이 이현준 열사 유골이 뿌려진 바다에 헌화하고 있다.
▲8주기 추모제를 마친 이현준 열사의 영정 모습.


조은별 기자 sstar0121@beminor.com

Articles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