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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장애인 박경석과 ‘망고’트위터요즘미투데이페이스북 매일매일 국가로부터 ‘망고’를 받는다

by 로뎀나무 posted Apr 2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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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늦은 8시, 문화예술카페 별꼴에서 ‘1급 장애인 박경석과 망고 - 시혜와 동정의 시대에서 권리의 시대로’ 강연이 열렸다.

 

1급 장애인 박경석과 ‘망고’

 

“얼마 전 대전에서 휠체어 밀고 가는데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날 세우더니 자기 주머니에 있던 망고 주스를 줬어요. 그리고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힘내세요' 하더라구요. 힘내세요, 좋은 말이죠. 지나가는 사람에게 망고 주스 주니 이건 또 얼마나 착해요? (웃음)” 

 

17일 늦은 8시, 문화예술카페 별꼴에서 ‘1급 장애인 박경석과 망고 - 시혜와 동정의 시대에서 권리의 시대로’ 강연이 열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이자 노들장애인야학 박경석 교장이 이날 강연자였다.
 
1983년 스물네 살, 행글라이더 사고로 척수장애를 입은 박 교장은 그 후 5년 동안 집에만 "처박혀 있었다.” 5년 만에 집 밖으로 나왔지만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은 쉽지 않았다. 어느날 지하철역 안에서 휠체어리프트를 타고 움직이는 자신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마치 “온몸에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날도 있었다. “엄마, 이 아저씨는 왜 휠체어 타고 있어?”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꼬마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말 안 들어서 그래"

 

박 교장은 이러한 시선이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 중심의 주류사회를 표현한 사례”라고 꼬집었다. 그날 그의 손에 쥐어진 ‘망고’는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시혜와 동정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스 신화 중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게 있다.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아 침대에 눕혀 침대 길이보다 사람 몸이 길면 잘라버리고, 짧으면 억지로 늘려 죽였다는 이야기다. 박 교장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바로 '장애등급제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침대는 예산이고 예산에 맞춰 잘린 게 등급제라는 거다.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이 활동보조서비스 받을 권리를 은폐한다. 2008년 실태조사를 보면 장애인 중 일상생활에서 거의 남의 도움 필요하다(5.4%), 대부분 필요하다(9.1%)로 조사됐다. 이들은 총 35만 명으로 일상생활에서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현재 활동보조서비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장애인은 5만 명이다. 활동보조서비스는 2007년 시행 이후 1급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었다. 올해 들어 2급으로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이 중에서 실제 이용하는 사람은 3만여 명 정도로 집계된다.

 

활동보조가 필요하지만 이용할 수 없는 이유, 바로 ‘자부담’ 때문이다. 현행 활동보조는 시간에 따라 이용자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있어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등급이 되어도 돈이 없으면 이용할 수 없다. 자부담은 월 최대 20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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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장은 장애등급제가 소득의 문제도 은폐한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은 각종 재활치료나 보조기기 구매 등 비장애인보다 월평균 16만 1천 원 더 든다는 통계가 있다. 특히 중증장애인은 더 많은 23만 6천 원의 추가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연금은 1, 2급과 중복 3급 장애인만 받을 수 있다.

 

2007년부터 장애등급 재심사가 이뤄졌다.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장애인연금 등으로 예산이 확대되자 복지부가 이를 미리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이때의 등급재심사로 중증장애인 중 36%가 등급 하락했다. 기존 1급이었던 장애인이 2, 3급으로 떨어진 거다. 자신의 장애는 그대로인데 급수만 하락했다.

 

그러나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등급 판정을 받은 후 인정점수조사를 또 한 번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장애인의 몸에 등급과 점수를 매기고 장애인은 그 점수에 따라 한 달 동안 이용할 서비스 시간을 받는다. 박 교장은 결론적으로 등급이 없어도 서비스 이용을 책정하는 기준표는 따로 있기 때문에 등급은 그저 한정된 예산 내에서 이용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장치였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활동보조서비스는 형식상의 문제도 있지만 내용상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장애인의 환경과 욕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 교장은 묻는다.

 

“장애인의 49.5%가 초등학교 이하의 학력을 갖고 있습니다. 노들야학에는 아직도 ㄱ, ㄴ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 지하철 타고도 목적지를 읽지 못하는, 은행에 가도 계산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 대학원까지 졸업한 장애인의 욕구가 같을까요?”

 

그 사람의 집에 계단이 있는지 등 개별 환경과 욕구는 보지 않는다. 단지 의학적 기준만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현재 장애인 문제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이는 의사이며, 이때 장애인은 치료해야 하는 집단이 된다고 박 교장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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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국가로부터 ‘망고’를 받는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 - 존 맥나이트”

박 교장은 존 맥나이트의 말을 빌려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으로 정의된 사람들이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문제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힘을 240일째 이어가고 있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농성장에서 발견한다고 말했다.

 

“어떤 운동에서도 청와대 대통령 앞에서 플래카드 편 사람은 없을 거예요. 지하철 열 번 내려가도 그걸 도와주는 비장애인은 잡아가도 장애인은 안 잡아가요. 이것도 ‘망고’죠. 광화문 농성장에서 240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데 광화문 해치마당, 임대료만도 엄청납니다. 그런데 무료로 있죠. 이 또한 ‘망고’예요. 전기도 그대로 끌어다 써요.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를 지키는 노동자들, 철탑에서 고공 농성하고 있는 동지들 생각하면 호텔이에요.”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의 대안에 대한 물음이 나왔다.

 

이에 대해 박 교장은 “오늘 복지부가 2014년부터 1급~6급으로 나뉘는 등급제를 없애고 경·중증으로 간다고 발표했다”라며 “그러나 이렇게 하면 무료감면 혜택, 장애인연금 등 장애등급과 관련된 현 제도를 건드리는 것 없이, 지금의 등급제와 다르지 않다”라고 밝혔다.

 

6급까지 나뉜 등급을 지운다고 해서 그것이 등급제 폐지는 아니라는 거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앞서 말했듯 ‘장애’ 그 자체를 재정의하는 문제다. 박 교장은 “거칠게 말하자면 (현재 등록된 장애인) 260만 명에게 장애인연금을 다 지급하라는 요구”라고 강조했다.

 

박 교장은 마지막으로 멕시코 치아파스 어느 원주민 여성의 말을 빌려 끝맺었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 멕시코 치아파스 원주민”

“그 해방의 맞닿은 지점들을 놓치지 않도록 함께 투쟁합시다. 장애등급제는 반드시 폐지됩니다. 5년 후, 이 자리에 와서 얼마나 바뀌었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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