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재능을 기부하며 살고 싶다

by 배추머리 posted May 0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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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을 기부하며 살고 싶다
균도와 걷는 세상이야기 58
쉰여덟번째날 이야기(5월 8일)
2011.05.09 00:55 입력 | 2011.05.09 02:42 수정

어버이날이다. 아직 나는 카네이션을 주는 것인 줄로만 알지 받을 줄 모른다. 카네이션을 나의 가슴에 단다는 것이 낯설다. 균도가 학창시절 만들어 왔던 종이 카네이션을 달고 기뻐한 적이 있다. 그렇게 난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간다.

 

어제저녁 균정이가 카네이션 화분 하나를 사 들고 들어왔다. 그런데 자꾸 균도가 내게 내민 종이 카네이션이 더 생각난다. 부모라는 것, 참 의무감과 책임감이 따르는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쏟아졌던 아름다운 부성애… 나는 부담스럽다. 장애아들을 키우면서 느꼈던 것을 맘껏 이야기했다. 걸어가는 내내 균도가 살아갈 미래를 이야기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서 한계가 있다. 그리고 나처럼 가진 것 별로 없고 병약하게 생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그나마 이슈를 만들고 '우리 아이가 이렇습니다'라고 사회에 알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많지 않았다. 그래서 행동했다. 그리고 이슈를 이끌어냈다.

 

오늘은 몸이 아프니 아이들이 내 앞에서 보이는 것도 성가시다 할지라도, 매일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가둬놓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래서 넓은 세상 세상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균도를 재조명하고 싶었다.

 

걷기가 끝나고 균도는 추억이 많이 쌓였다. 그리고 나는 많은 자신감도 얻었다. 걷는 동안 장애인 부모의 염원이 무엇인가 알게 되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우리 균도같은 아이는 결코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아마 장애가 있는 모든 이가 마찬가지다. 사회는 장애를 책임져야 한다. 지금은 사회 스스로 노년을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그렇지만 장애에 대해서는 아직 인자하지 못하다.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시샘하듯이 발언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다른 이에게 배려하는 것이 매우 아쉬운 실정이다. 같이 행복해야 한다.

 

오늘 방송에서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80위 밖이라고 한다. 가장 행복한 곳이 남미의 코스타리카라고 한다. 행복한 것과 가장 밀접한 것은 기부라고 이야기한다.

 

사는데 불편하지 않으면 나에게 가진 것을 기부한다. 그러면 언젠가 나에게 돌아온다. 이렇게 생을 산다면 행복하다고 한다.

 

나 역시 인색하게 살아왔다. 그렇지만 장애아들을 키우면서 우리 아이를 위한 길을 찾게 되었고, 학교에서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해서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균도를 위해서 걷다 보니 나의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나의 아들을 위한 것도 되지만, 다른 장애인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의 재능을 기부하면서 살고 싶다. 나를 위해, 세상에 힘든 장애인을 위해…

 

다음에 마음이 달라질 때를 대비해서 글을 남긴다. 부끄럽지 않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 오늘도 균도랑 세상 걷기를 한다. 균도를 위해서, 발달장애인의 미래를 위해서…

 

어버이날에 균도를 바라본다. 균도야,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자!


▲주말농장 품파는 모습, 균도는 반대쪽에서 논다.


▲농장에서 망중한.


▲울고 있는 아빠를 생소하게 쳐다봅니다. 청와대 앞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목놓아 이야기합니다. 가난한 아빠가 너를 위해 해줄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600km를 아빠에 의지해 걸어준 우리 균도 너무 자랑스럽다. 아빠와 남은 세상 발달장애인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자. 균도와 세상걷기 화이팅!!!! ♥♥♥



이진섭 부산장애인부모회 기장해운대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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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기의 추억
        2011.05.04 17:45 입력 | 2011.05.06 18:37 수정

        스무 살 쯤으로 기억한다. 아버지한테 타자기를 사달라고 졸랐다. 글을 쓰고 싶어서였는데 아버지는 내가 그것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며 망설이셨다. 마침 누나가 대학에 들어가서 영문 타자기가 필요하다니까 그제야 아버지는 누나의 영문 타자기와 함께 한글 타자기도 사 오셨다. 당시는 장애상태가 지금보다는 조금 나아서 무릎으로 서서 빠르게 걷기도 했고, 테니스공을 손으로 잡고 던질 수도 있었다.

         

        타자기의 무게는 상당했다. 약 10kg 정도였는데 그것을 책상에 올려놓고 사용하곤 했다. 오른손으로 자판을 탁탁 치면 왼쪽으로 종이가 밀려가면서 글자가 찍히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난 그것으로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얘기는 하나도 없고 동생 얘기, 누나 얘기, 같이 살았던 할머니 얘기 등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주로 쓴 것 같다. 그것도 사방 몇 평 안 되는 방구석에서 말이다.

         

        글을 썼다기보다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것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심지어 그것으로 그림까지 그려봤을 정도니까. 타자기로 그림 그리기는 까다롭지 않았다. 종이 끼우는 곳에 종이를 조금씩 손으로 조절해 자판 하나만 계속 찍어가며 초점을 맞춰주면 제법 그럴듯한 그림이 나온다.

         

        그렇게 어릴 적 추억이 묻어난 타자기가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독일의 구덴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이후 450년이 지난 1868년 미국의 크리스토퍼 숄즈라는 사람이 지금 형태의 타자기를 발명했다고 한다. 그 이후 수많은 작가들이 이것을 이용해 명작들을 집필했다. 영국 시인 존 메이스필드는 ‘시와 산문을 두드려 만든다.’며 타자기에 대해 노래했고 미국 작가 폴 오스터는 ‘빵 굽는 타이프라이터’라며 타자기를 칭송했다.

         

        ▲내가 사용했던 타자기와 같은 모델인 크로바 타자기.

         

        타자기는 또한 그것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힘 좋은 남성들만의 영역이었던 노동의 영역에서 여성들의 일자리를 혁명적으로 넓히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화이트칼라라는 말도 타자기가 발명된 직후 나오게 된 말이다. 타자기는 이렇듯 20세기 문화를 풍미했다. 나 역시 글쇠 한 자 한 자를 누르면서 영화 속에 날올 법한 유명한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스티븐 킹 소설 '미져리'를 비디오로 보면서…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타자기가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으로 그 화려했던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우리나라 타자기 생산업체인 크로바와 마라톤이 95년 일찌감치 문 닫았고, 지구 상의 마지막 타자기 생산공장인 인도의 고드레지&보이스도 결국 문을 닫는단다. 결국 타자기는 골동품이 되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컴퓨터도 조만간 골동품이 될 것이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력 때문에…

         

        하지만 난 여전히 타자기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 풋풋한 잉크 냄새와 한 자 한 자 글쇠를 찍을 때마다 ‘탁~탁!’하고 나는 경쾌한 리듬이 글 쓰는 재미를 더해주곤 했다. 물론 한밤중에 치는 타자 소리 때문에 잠이 깬 할머니의 잔소리도 꽤 들었지만 말이다.

         

         

        박정혁의 달팽이의 기어달리기

         

        달팽이는 매우 느린 동물 중 하나다. 그런 달팽이가 어디론가 기어가는 중이다. 자기 자신은 있는 힘껏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빠르다고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달팽이는 너무 느리다. 너무나 느려서 가고 있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다른 이들이 푸념을 늘어놓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돌아간다. 그의 걸음걸이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묵묵히 기어 달린다. 꽃이 피면 꽃향기 맡으며, 바람이 불면 바람과 대화하며, 비가 내리면 비와 함께 묵묵하게 한 방향으로만 기어 달린다.



        박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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