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빵만으로 안돼요’ 창의적 연출, 상상력 굿∼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개막작 관람 후 느낌

by 배추머리 posted May 18, 20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빵만으로 안돼요’ 창의적 연출, 상상력 굿∼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개막작 관람 후 느낌
극단 ‘날라갓’, 수익안정이 공연 질 향상 도움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1-05-18 10:32:26
연극 공연에 배우로 참여하며 장애인 연극에 대해 고민하던 주제 중 하나가 장애인 연극을 통해 중증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도모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한 연극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프로페셔널한 연극을 만들기 위해서 배우들에게 일정 수준의 트레이닝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중증 장애인 배우들이 배제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 참여 경험이 없는 중증 장애인의 사회 참여만을 도모하다보면 연극의 ‘대중성’에 제한이 가해지기 마련이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 방법 중 하나는 창의적인 연출에 있다고 생각한다. 뇌성마비 장애인 햄릿이, 휠체어를 탄 줄리엣이 무대 위에서 위화감 없이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연출과 연극 무대만이 가지는 다채로운 상상력!

지난 10일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의 개막작으로 선보인 이스라엘 시청각장애인 극단 날라갓(Nalaga'at)의 작품 ‘빵만으로 안돼요’ 무대에서 창의적인 연출과 다채로운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의정부국제음악극 축제 개막작, 이스라엘 시청각장애인 극단 날라갓(Nalaga'at)의 "빵만으로 안 돼요". ⓒ문영민
에이블포토로 보기▲의정부국제음악극 축제 개막작, 이스라엘 시청각장애인 극단 날라갓(Nalaga'at)의 "빵만으로 안 돼요". ⓒ문영민
11명의 시·청각장애인 배우들은 공연 시작 전부터 빵을 빚는다. 자기소개를 하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열심히 빚어지던 빵 반죽들은 오븐에 들어간다.

시각장애를 가져 늘 세상은 어둡지만 외로움에 더더욱 어두웠던 어느 비오는 날, 자신을 찾아온 친구들이 건네던 담배 한 개비.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 배우가 가고 싶었다던 이탈리아 무대. 이스라엘에서 가장 훌륭한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을 받는 꿈이나 100달러를 줍고 싶다는 꿈.

그들이 말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은 소박하기만 하다. 그러나 배우들은 소박한 에피소드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빛난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에피소드에서 배우들은 이스라엘 최고의 미용사가 되기도 하고, 정원을 날아다니는 새가 되기도 하며, 바티칸의 교황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남자 주인공의 꿈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인데,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과 ‘초스피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 축제가 시작되고, 구워진 빵내음이 극장에 가득하고, 꽃가루가 날리며 막이 내린다. 구워진 빵은 연극이 끝난 후 관객들이 무대에 올라가 함께 나누어먹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세워진지 4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날라갓 극단의 높은 공연 수준에 놀랐다. ‘음악극’이라는 장르에 맞게 때로는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악기를 다루어야 했는데 배우들 모두 연극 무대에 선지 얼마 되지 않는 배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능숙하게 퍼포먼스를 수행해냈다.

다른 배우의 대사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무대 보조인들이 중간중간 북을 두드렸고 그 진동으로 대사 순서가 전달되었다. 청각장애를 가진 배우의 경우 대사를 전달하는 것이 어려웠고, 전맹 시각장애인 배우들이 무대를 오고나갈 때는 보조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보통 연극무대와 다른 이러한 장치들이 무대에서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북소리나 보조인들의 움직임마저도 장면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연출력의 탁월함 때문이기도 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 연극 무대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삶의 한 장면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장애인 극단 날라갓의 내한 공연 ‘빵만으로 안돼요’. 공연 시작 전부터 열심히 빚어지던 빵은 오븐에 들어가 공연이 끝날쯤 노릇노릇하게 익어져 관객들이 맛 볼 수 있다. ⓒ서유랑
에이블포토로 보기▲이스라엘 장애인 극단 날라갓의 내한 공연 ‘빵만으로 안돼요’. 공연 시작 전부터 열심히 빚어지던 빵은 오븐에 들어가 공연이 끝날쯤 노릇노릇하게 익어져 관객들이 맛 볼 수 있다. ⓒ서유랑
연극이 끝나고 난 후, 잠깐동안 배우분들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소사나’ 역으로 출연한 소사나 씨가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나의 질문은 영어로 통역되었고, 영어 질문은 다시 소사나 씨의 수화 통역자 분을 통해 수화로 소사나 씨에게 전달되었다.

여러 번의 통역 과정을 거쳐 질문을 하고 답이 돌아왔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 전달은 어려웠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날라갓 극단과 연극에 대한 열정은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나는 연극의 프로페셔널리즘과 장애인의 사회 참여 사이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아직 극단이 세워진지 4년 밖에 되질 않아 그러한 고민에 심각하게 직면한 적은 없다. 다만 극단은 까페를 운영하며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공연 수익금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어 공연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기꺼이 한국 장애인 극단과 교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친절하게 응해주던 배우 소사나. 나의 질문은 영어로, 영어는 다시 수화로 소사나에게 전달되었고, 반대의 과정을 통해 답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서유랑
에이블포토로 보기▲인터뷰에 친절하게 응해주던 배우 소사나. 나의 질문은 영어로, 영어는 다시 수화로 소사나에게 전달되었고, 반대의 과정을 통해 답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서유랑
장애인 연극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위한 또 하나의 방안은 장애인 연극단체에 대한 지원이다. 흔히 창의적인 연출은 연출가의 머릿 속에서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무대 장치, 의상, 조명 등을 제작하고 설치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연극 무대에서 다양한 장치들을 고안하고 사용될 수 있도록 상상력이 제한되지 않으려면, 극단과 배우의 경제력이 필요하다. ‘배고픔’이 예술적 영감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장애인 배우들의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보수 역시 연극의 질 향상을 위해 필수적이다.

날라갓 극단은 단체 내에서 까페를 운영해 수익의 70%를 자체적으로 충당하고 있다. 국가적인 재정 지원 역시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6년까지 문화예술인 창작 활동 지원 사업 내 장애문화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은 전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에 와서야 ‘소비자’가 아닌 문화의 ‘생산자’로 장애인의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장애인 극단의 공연이 대학로에서 막을 올리고, 장애인 화가들의 작품을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 예술가들의 자립의 벽은 높기만 하다.

사회 참여가 제한적이었던 장애인들이 문화의 진정한 생산자로 거듭나, 소비자들에게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빵만으로 안 된다”며 무대에 섰지만, 빵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장애인 예술가들에게 여전히 빵은 중요하다.

이 글은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주관 “장애청년 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에 “장애인 예술가의 자립”이란 주제로 참여 신청을 한 ‘나는 예술가다’팀원들의 공연관람 감상 등을 정리해 문영민씨가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기고를 하실 수 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기고/문영민 (saojungym@hanmail.net)

기고/문영민의 다른기사 보기 ▶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너: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구독료 1,000원도 큰 힘이 됩니다. 자발적 구독료 내기배너: 에이블서포터즈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