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14명이 현재 영화 ‘도가니’를 상영 중인 상영관에서 관람에 필요한 자막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문화 접근권을 침해받았다며 14일 정오께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상영관 네 곳과 영화진흥위원회, 문화관광부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와 장애인정보문화누리는 이날 진정에 앞서 이른 11시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극장주는 자막상영을 할 것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청각장애인의 문화 접근권을 보장할 것 △청각장애인의 자유로운 영화 관람을 위한 정책을 개발할 것 등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장추련 배융호 상임집행위원장은 “지난해 한국에서는 168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되었는데, 일반 상영관에서 청각이나 시각장애인들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한글자막이나 화면해설을 제공한 영화는 15편 정도에 불과해 90% 이상의 영화는 볼 수가 없었다”라면서 “세계가 한국 영화를 주목한다고 하지만, 정작 한국에 사는 장애인들은 한국 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배 상임집행위원장은 “심지어 청각장애학생에 대한 성폭력 사건을 다룬 ‘도가니’조차 많은 상영관이 자막서비스를 거부해 청각장애인들은 이를 자유롭게 볼 수 없다”라면서 “오늘 청각장애인 14명의 진정이 계기가 되어 앞으로 모든 장애인이 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세식 회장은 “상영관에서는 비용이 더 들고 비장애인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를 대며 자막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정부가 영화에 대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장애인을 관객으로 보지 않고 여전히 시혜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라면서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라고 성토했다.
안세준(청각장애 2급) 씨는 “나와 같은 청각장애인 이야기라 꼭 보아야 할 것 같아 자막이 없지만 영화를 보았다”라면서 “영화를 보면서 어린아이들의 아픈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프면서도 자막이 없어 내용이 이해가 안 돼 화가 났다”라고 전했다.
안 씨는 “우리들의 이야기인데 왜 우리가 도가니 영화를 보지 못하느냐?”라면서 “우리도 비장애인처럼 영화를 보면서 웃고, 울 수 있도록 한국 영화를 볼 권리를 달라”라고 촉구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은종군 정책팀장은 “지금 전국 어느 극장에서나 도가니를 상영하지만, 자막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소수에 그쳐 청각장애인이 이 영화를 보려면 시군구를 넘어야 한다”라면서 “현재 영화 도가니로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하나 이를 계기로 장애인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도가니’는 쉽게 뜨거워졌다가 쉽게 식은 ‘냄비’에 그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에 진정 대상이 된 상영관은 서울극장, 롯데시네마 강동점과 모란점, CGV 송파점 등 네 곳이다. 12일 기준으로 전국 상영관 640곳 중 CGV 대학로 점 등 22곳에서 하루 1∼2회씩 자막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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