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 세계는 99%의 민중들이 1%의 그들이 만든 지옥 같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온갖 애를 쓰고 있다. 1%의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은 경쟁과 효율을 바탕으로 한 생존의 정글 그 자체이다. 돈이 없으면 교육도 치료도 받을 수 없고 살 집도 없다. 그들 삶의 방식에 나 같은 장애민중이 같이 좀 살자고 아무리 외쳐도 1%의 그들에겐 귀찮고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악한 부자, 착한 부자, 가난한 자 이렇게 셋으로 나눌 수 있겠다. 이 세상의 자원(쉽게 돈이라고 생각하자)은 무한한 것이 아닌 유한한 것이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골고루 나누어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누는 방법 즉 함께 살아가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규칙(경쟁과 효율)으로는 앞의 세 가지 악한 부자, 착한 부자, 가난한 자의 발생은 피할 수가 없다. 강하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자가 더 많이 갖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악한 부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이며, 착한 부자는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수준에서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난한 자는 그 둘에게 빼앗기는 힘 없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악한 부자보다 착한 부자가 더 위험하다. 악한 부자는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지만, 착한 부자는 그렇게 인식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본질은 역시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다. 단지 천천히 그리고 저항에 부딪히지 않을 만큼 행할 뿐이다.
근본적으로 누구는 더 가져야 하고 누구는 덜 가져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다. 사람은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나누고 연대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99%의 우리는 1% 그들의 방식인 경쟁과 효율을 바꾸어야 한다.
장애인은 애당초 1%의 방식에는 맞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여태껏 1%의 그들이 중심인 사회에서 배제당하고 차별받아 왔다. 그런데도 일부의 장애인마저 그런 1%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그래서 1%의 방식을 99%의 우리 방식 즉 평등, 평화, 연대의 가치로 바꾸어 줄 진보신당을 지지한다.
내가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2007년 초 활동보조서비스 제도를 만들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증장애인 30명이 점거하고 24일간 단식 농성을 했다. 그 당시의 보건복지부 장관은 유시민이었다. 그 사람의 신념 또한 착한 부자와 다르지 않다.
2011년 말, 예전 김영삼의 3당 합당보다 더한 난리를 보면서 결심했다. 더 이상 부자(악하건 착하건)들에게 희생당한 최옥란 열사, 우동민 열사와 같은 이 땅의 비극을 만들지 말자고 말이다. 그러기에 나는 1%의 방식을 99%의 우리의 방식으로 바꾸기 위해, 부자들에게 더 이상 희생당하는 열사가 없게 하기 위해 진보신당을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