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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장애인차별철폐공투단이 마련한 선전전 부스에서 한 시민이 서명을 하고 있다.

 

참 많은 사람이 지나갔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농성천막을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걸음을 서두르던 사람, 선전물을 내미는 손을 피해 가는 사람, 선전물을 건네기 위해 다가가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뒷걸음치는 사람. 그리고 그냥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

 

반면 흔쾌히 먼저 다가와 서명해준 이들도 있었다. 어떤 고등학생은 “무슨 내용이에요?”라고 물으며 다가왔다. 자신이 특수교육학과 학생이라고 밝힌 이는 지난번에 있었던 1인 시위 결과를 묻기도 했다.

 

선전전을 함께하면서 선전물을 내미는 내 손과 “서명 부탁해요”라고 말을 하는 내 목소리가 스스로 너무 어색했다. 그러나 처음의 어색함이 익숙하게 변하는 건 금방이었다. 다만 지나가는 시민의 반응을 대하는 것이 내겐 조금 힘들었다.

 

선전물을 내밀었을 때 사람들이 모른 척 지나치면 어깨가 움츠러들고 마음이 콩알만 해졌다. 무안했다. 그런 사람들을 연이어 만나면 자신감이 한 움큼 쑤욱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러다가 선전물을 열심히 읽어보며 서명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사람을 만나면 이내 안도가 되었다.

 

선전전을 하다가 의자에 앉아 잠시 쉬며 조금 전 내가 서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내 앞에 있는 풍경이 문득 낯설게 보였다.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발달장애인법 제정.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겐 너무 낯선 이야기였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들이었다. 지나가는 저 사람들에게 내가 서 있는 쪽의 풍경이 어떻게 비춰질까. 혹시 불쌍해 보일까. 참 고생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까.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들이 떼지어 종각역 지하에 있는 모습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을까.

 

작년 여름이었던가. 시청역을 지나가다가 노들장애인야학 학생분들이 천막농성을 하며 서명을 받는 곳을 지나친 적이 있다. 서명하고 적은 양의 후원금을 내니 색색의 예쁜 연필을 선물로 주셨다. 왠지 고맙고 미안했다. ‘장애인분들이 정말 열심히 싸우시는구나’ 하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정작 그들이 어떠한 권리를 주장하며 싸우는지에 대한 속 내용을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실 물음을 가지지도 않았다.

 

몇 년째 인천의 장애인 비장애인 통합야학에 후원을 하고 있으나 장애인문제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거칠게 말하자면 내 삶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니 물음을 던지고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는 연결고리 자체가 없었다. 그저 몇 달에 한 번씩 야학에서 오는 소식지를 보며 ‘아, 그렇구나’ 싶기만 했다.

 

▲종각역에서 선전물을 나눠주고 있는 420공투단 활동가.

 

그리고 반년이 지난 지금, 저쪽에 서 있던 내가 이쪽에 서 있다.

 

큰 결심이 작용했던 것도 아니고 삶의 작은 선택들을 따라오다 보니 저쪽에서 이쪽으로 어느덧 옮겨와 있었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나의 삶과 완전히 동떨어진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어느덧 지금은 내 삶의 가장 큰 영역으로 자리하고 있다. 많은 물음이 햇살처럼 쏟아진다.

 

종각역 농성장을 찾아간 날은 겨울처럼 바람이 불던 4월 셋째 날이었다. 저녁 7시가 가까워지자 몇몇 활동가들이 시청 부근 재능교육 농성장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열리는 길거리 특강을 들으러 갔다. 그들은 야외에서 덮을 각자의 침낭을 챙겨 나갔다.

 

그곳에 있던 한 활동가는 “농성은 매일매일 서로 바꿔가면서 하고, 하루에도 여러 단체가 와줘서 가능하다”라면서 “다들 힘을 모아주기에 가능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겨울 같은 날씨에 침낭을 들고 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연대의 힘은 종각역 안에서만 머무는 게 아님을 발견한다.

 

저녁 7시. 슬슬 배가 고파지면서 피로가 온몸을 좀 먹는 듯 기운이 없다. 공기가 차갑고 탁해서 그런지 피곤이 누적되는 속도가 다른 곳보다 빠른 것 같다. 이곳엔 감기가 심한 이들도 유난히 많은 것 같았다.

 

서명 테이블 뒤편에 앉아, 휠체어를 탄 활동가들이 다른 활동가들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알아보고 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홍구 공동대표는 종각역 주변엔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식당이 마땅히 없어서, 음식을 사 와서 먹거나 주로 시켜먹는다고 했다. 장애인 화장실은 잘 되어있느냐고 물어보니, 남녀 화장실 구분은 되어 있으나 한 칸씩만 있어서 화장실 이용이 많을 땐 줄 서서 기다린다고 한다.

 

그리고 노숙농성이 시작된 뒤 종각역 엘리베이터 사용이 늘면서 고장이 잦은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엘리베이터가 세 시간가량 고장이 나서 반대편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말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노숙농성을 한다는 것의 무게가 또 한 번 다르게 다가왔다. 자신들의 권리 요구 싸움을 하기 위한 주변 환경 자체가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장벽이다. 화장실을 가는 것,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이동하는 것. 비장애인들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을 장애인들은 싸움을 통해 하나하나 획득해야만 누릴 수 있다.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권리들 또한 과거 누군가가 투쟁으로 얻어낸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 이 권리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다. 차별이다.

 

타인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로 내 권리가 안전하게 지켜질 수는 없다. 권리는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장애인도, 성소수자도, 이주노동자도, 비정규직도… 그렇기에 지금 이 싸움은 나의 싸움이 된다.

 

▲지나가는 시민이 '장애인이동권, 4대강에 빠져죽었다'라는 현수막을 들여다보고 있다.

▲종각역 안에 마련된 420공투단 선전부스. 지나가는 시민이 서명에 참여하고 있다.

▲부양의무제 폐지, 장애등급제 폐지, 발달장애인법 제정 등을 촉구하며 돌입한 노숙농성이 9일째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안내게시판.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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