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청각장애인 특수학교 4곳의 교사 156명 중 수화통역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몇 명일까? 2010년 서울교육청 자료를 보면 단 8명으로 5%에 불과하다.
전국적으로 보면 이 수치는 더 낮아진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자료를 보면 청각장애인 특수학교 교사 548명 중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21명으로 3.8%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420공투단)는 10일 늦은 1시 교육과학기술부(아래 교과부) 앞에서 수화통역교사 증원 및 일반학교 수화교과 신설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교과부가 청각장애인 교육권 보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세식 회장은 “도가니 영화가 대한민국을 강타할 때 내심 이 기회에 청각장애인 교육권 문제도 해결되었으면 했다”라면서 “그러나 관련 단체도, 해당 부처도 청각장애인 교육권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가렸다”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농아인의 의사소통양식에 따라 언어를 선택하고, 교육받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라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농학교는 물론이고 통합교육 현장에서도 교사뿐만 아니라 임직원도 수화를 필수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하며, 일반학교에서 수화를 정규과목으로 수업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지난해 각 학교에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가를 조사하러 나갔을 때 청각장애학생들은 소통이 되지 않아 ‘사오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라면서 “특히 초등학교 4학년 청각장애학생이 보청기를 끼거나 수화를 하면 장애인임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안 들려도 들리는 척하면서 생활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참담한 심정이었다”라고 밝혔다.
박 사무국장은 “결국 수화를 하지 못하는 교사 아래서 청각장애학생들은 차별과 폭행을 당해도 이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이제는 청각장애인이 학교와 사회에서 소통되지 못하는 이 현실을 우리의 요구로 깨뜨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장애와여성 인권연대 마실 김광이 대표는 “30년 전 청각장애인들과 1년 정도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도 자격 있는 교사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었다”라면서 “하지만 30년이 지나 그들이 중년이 된 뒤에야 이런 문제 제기가 이뤄지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결국 이 문제는 교과부가 장애인 교육 문제를 방치했기 때문”이라면서 “앞으로 농인당사자분들의 투쟁과 장애인들의 연대를 통해 이 차별을 깨뜨려나가자”라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영어 한 과목을 위해 공교육, 사교육 모두 수조 원의 돈을 들여 몰입교육을 하고 있다”라면서 “하지만 수화는 사람들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수화교실 같은 곳에서 농인과 수화에 관심 있는 몇 명의 건청인을 놓고 가르치는 것이 전부”라고 지적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따라서 이번 기자회견은 시혜적이고 동정적인 통역서비스가 아니라 당당한 언어로 수화가 대접받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자리”라면서 “정부는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고 수화과목을 정규과목으로 채택하고 수화교사를 증원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420공투단은 기자회견문에서 “청각장애인 교육은 청각장애인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라면서 “이에 통합현장에서는 청각장애인의 자유로운 언어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수화통역사를 전문적으로 대우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라”라고 요구했다.
420공투단은 “또한 특수학교의 교사나 임직원들이 수화를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통역사 자격소지를 의무화하고, 수화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일반교과과정에 영어나 일어처럼 수화를 제2외국어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라면서 “이러한 사항이 시행되지 않는다면 교과부 장관 사퇴촉구 등 교과부를 상대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