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4월 20일을 맞아 글 한 편 써야겠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켜고 고민을 했다. 무엇을 쓸까? 몇 분을 고민하던 차에 문뜩 떠오른 생각 하나! ‘우리는 왜 장애인이라고 불리고 있지?’, ‘장애인의 뜻이 뭘까?’라는 생각에 그 뜻을 한번 알아보았다. 알아보면서 긍정적인 뜻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거는 좀 심했다.
우선 쉽게 생각해 보면 ‘장애인’은 한자어다. 한자로 장애인을 이렇게 쓴다.
‘障礙人’
한자는 뜻글자다. 글자 하나하나마다 뜻을 가진다. 그러니까 한자 障礙人은 세 가지 뜻이 합쳐져서 한 가지 뜻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한자의 뜻은 뭘까?
보통 국어사전에는
명사
신체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 [비슷한 말] 장애자.
장애인 편의 시설
정부는 장애인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 네이버 국어사전
이런 식으로밖에 안 나온다. 그럼 바로 옆에 한자사전을 클릭해서 한 자 한 자 풀어보자.
障 - 막을 장
1. 막다, 2. 가로막히다, 3. 장애 4. 보루(堡壘) 5. 둑 6. 병풍(屛風) 7. 밭두둑길 8. 지경(地境: 땅의 가장자리, 경계) 9. 칸막이
가로막다. 또는 가로막히다.
礙 - 거리낄 애
1. 거리끼다 2. 장애가 되다 3. 지장을 주다 4. 방해하다(妨害--) 5. 거치적거리다 6. 거북하다 7. 막다 8. 그치다 9. 해치다 a. 푸른 돌(의)
거리끼다 또는 지장을 주다. 거치적거리다 또는 거북하다? 역시 여기도 ‘막다.’가 보인다. 딱 하나 특이한 것으로 보이는 a. 푸른 돌(의) 이건 뭔가??
人 - 사람 인
1. 사람, 인간(人間) 2. 다른 사람, 타인(他人), 남 3. 딴 사람 4. 그 사람 5. 남자(男子) 6. 어른, 성인(成人) 7. 백성(百姓) 8. 인격(人格) 9. 낯, 체면(體面), 명예(名譽) 10. 사람의 품성(稟性), 사람됨… 이건 굳이 덧붙일 말이 없다.
어쨌거나 이 한자어들을 종합해서 ‘장애인’의 뜻을 유추해 보면 장애인(障礙人)은 ‘가로막혀 거리끼는 사람’이다.
우리가 평생을 달고 다녀야 하는 이 ‘장애인’이란 이름의 뜻이 이거란다. 어떤가? 마음에 드나? 나는 절대 ‘아니다.’다. 우리가 가로막혀 꺼려지는 존재라는 얘긴데 아주 기분 나쁜 명칭이다. 이런 이름으로 평생을 불리며 살아야 한다니 여간 찝찝하고 불쾌한 일이 아니다. 모르는 게 약이란 속담이 있는데 이런 데 필요한 것 같다.
이름대로 따라간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장애인의 삶은 항상 막혔다. 평생을 골방 벽에 막혀 사는 장애인도 많고 평생을 시설의 장벽에 갇혀 사는 장애인도 많다. 거리에선 10cm의 턱에 막히기도 하고 계단에 막혀 되돌아가는 일도 수백 번 된다.
직장에선 ‘건강하고 용모 단정한…’이라는 문구나 능률과 효율이라는 자본의 논리에 막히기도 하고, 학교에선 수화통역사도 없이 음성만 윙윙대는 벽에 막히기도 하며, 장애인은 지금도 평생 꽉 막힌 인생을 살고 있다. 이렇게 꽉 막힌 장애인이란 이름을 가지고 평생을 막히며 살아야 할까?
장애인은 소통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 소통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과도, 세상과도 소통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소통하는 존재다. 그런데 누가 우리를 장벽으로 막고 있나. 세상은 우리를 장애인이란 이름으로 우리들의 소통하고 싶은 삶을 가로막았다.
이제 우리는 세상과 소통하며 함께 살고 싶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가로막는 ‘장애인’이란 이름을 과감히 버리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스스로 장애인이란 이름 때문에 포기한 일도 많았다. '나는 장애인이니까 못해!'가 아니라 이제부터 '우리는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이라 뭐든지 할 수 있어!'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장애인’에 대한 개명운동을 하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장애인이란 명칭이 오래전부터 법적인 용어로 쓰이고 있고 우리 자신도 장애인이란 명칭에 익숙해져 있어서 나의 제안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명칭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가 그렇게 안 살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리의 명칭이 다른 사람에게 더 긍정적으로 다가가려면 그만큼 긍정적이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명칭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도전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처럼 우리를 부르는 명칭이 더 창의적이고 우리 스스로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바꿀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혁명에 가까운 시민권 회복운동에도 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달팽이는 매우 느린 동물 중 하나다. 그런 달팽이가 어디론가 기어가는 중이다. 자기 자신은 있는 힘껏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빠르다고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달팽이는 너무 느리다. 너무나 느려서 가고 있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다른 이들이 푸념을 늘어놓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돌아간다. 그의 걸음걸이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묵묵히 기어 달린다. 꽃이 피면 꽃향기 맡으며, 바람이 불면 바람과 대화하며, 비가 내리면 비와 함께 묵묵하게 한 방향으로만 기어 달린다. |
박정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