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부터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도시빈민의 삶과 운동을 다룬 ‘가난의 시대’(동녘 출판사)가 발간됐다.
이 책은 20년 넘게 집과 일터를 잃은 사람들과 함께 투쟁한 빈민활동가 최인기 씨가 지난 2009년 벌어진 용산학살 이후, 노동자 역사 자료수집과 열사정신 계승 사업을 하는 모임인 ‘노동자 역사 한내’의 요청으로 쓰기 시작했다.
저자는 글을 쓰면서 시대별로 도시빈민운동의 흐름을 살펴보고, 이 과정에서 사라져간 열사들의 희생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고자 했다.
그 후 인터넷 언론 '참세상'에 약 1년간 ‘도시빈민운동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면서 각 정부의 정책을 추가로 살펴본 뒤, 여기에 빈민운동의 평가와 전망 부분까지 더해 이번에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을 보면 스스로 문민정부로 칭하던 김영삼 정부 때 서초구청의 노점 단속에 항의해 분신한 최정환 열사와 아암도에서 노점 철거에 맞서 망루 농성을 하다가 바닷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이덕인 열사, 생산적 복지를 말하던 김대중 정부 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한계를 폭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옥란 열사 등 장애와 빈곤이라는 이중의 굴레를 깨뜨리고자 했던 장애인 열사들이 도시빈민운동의 한 자락에 자리해 있다.
저자는 최정환 열사와 이덕인 열사에 대해 “장애인이면서 노점상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극한의 상황에 몰려 있었다”라면서 “최정환 씨의 분신은 김영삼 정부의 장애인 정책이 지닌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 때 제정된 ‘장애인고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당시 300명 이상이 일하는 기업체는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2% 이상 고용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기업 대부분은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부담금을 내 정부는 법 시행 2년 만에 400억 원을 거둬들였다.
이처럼 장애인이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노점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에 대한 정부의 탄압은 끊이지 않았다. 이 시기에 대해 저자는 "특히 노점상 가운데 장애인 노점상들의 희생은 컸다"라면서 "노점상 문제에서 비롯된 투쟁이었으나 장애인문제까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고, 장애인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최옥란 열사에 대해서는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빈민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극명하게 보여줬다”라면서 “최옥란 씨의 죽음은 기초법의 한계를 폭로하고,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를 위한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선포한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은 철거민운동과 노점상운동으로 크게 나눠 전개된 도시빈민운동 조직의 분화와 발전, 2000년대 들어 등장한 반빈곤운동 등을 살펴본 뒤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기탄없이 적고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이 책은 도시빈민들의 생활상과 자신의 삶과 처지를 바꾸기 위해 어떻게 저항해왔는지를 담고 있다”라면서 “단순히 가난의 모습을 시대순으로 정리하거나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그려보려는 의도가 더 컸다”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