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신장애 3급으로 거의 치료가 끝난 상태이며 예방차원에서 약을 복용하던 중 OO생명에 전화해 보험 상품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서 가입하고 싶다고 문의했으나, 현재 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안 된다고 거절당했습니다"
"남편은 시각장애인이고 저는 청각장애인인데 아이를 임신해 태아 보험에 가입하려 했으나 보험 가입을 거절당했습니다. 보험사 측은 태아와 산모를 한 몸으로 보고 태아의 선천성 난청률이 높을 것이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보험회사들이 장애인의 보험 가입을 거부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애인 보험차별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와 대한정신건강재단 주최로 9일 늦은 2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국장. |
이날 토론회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지체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질병보험, 암보험, 자동차보험 등 일체 보험 가입이 안 되는 등 장애인 보험차별은 전 장애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보험회사들이 장애인은 수명이 짧은 것이라는 편견으로 생명 보험을 거부하고, 질병률이 높을 것으로 생각해 의료실비보험을 거부하는가 하면, 위험률에 방어능력이 없다고 화재보험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박김 사무국장은 “보험회사에 장애인의 건강에 대한 보험을 모두 책임지라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또한 고객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다양한 장애유형에 따른 보험연구가 이루어져서 장애인이 더는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정신건강재단 신동근 운영위원은 “정신질환 중 심각한 장애가 있는 정신장애인 환자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구제할 수 있지만, 정신장애보다 훨씬 많은 대다수 경미한 정신과 환자들은 법적인 구제 조항마저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불면증으로 3년 전에 정신과를 단 한 번 방문한 경우에도 보험가입이 거절된 사례가 있으며, 8년 전에 2차례 불면증 치료를 했다는 이유로 거절된 사례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신 운영위원은 "공식적으로 보험회사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이 없다고 하나 정신장애뿐 아니라 정신과 치료만으로도 가입이 거절되고 있다"라면서 "소아 연령에서부터 정신과 치료를 이유로 보험을 거절하는 경우도 있어 낙인과 차별이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소개했다.
신 운영위원은 "가입심사 단계가 아니라 모집원 수준에서 가입이 거절되므로 가입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박탈되고 있는데, 보험회사의 적절하고 합리적인 심사 기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법무법인 지평·지성 임성택 변호사. |
법무법인 지평·지성 임성택 변호사는 “공보험이 아닌 사보험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므로 사적자치의 원칙, 계약자유의 원칙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보험회사가 계약심사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따라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고 운을 뗐다.
임 변호사는 "그러나 헌법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 등에 의하면 보험사가 보험 가입, 유지 등에 있어서 장애인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 차별인지 여부가 쟁점"이라며 "아직까지도 민간 보험사들은 보험계약의 체결, 유지 및 보상의 각 단계에서 장애인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민간보험에서 장애인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나아가 적극적으로 장애인의 특수한 상황에 따른 보험상품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균등하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라면서 “장애인도 중요한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아름다운 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는 “상법 732조 때문에 정신장애인의 보험가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고, 민간 보험사들이 장애인에 대한 보험가입을 거부하는 근거 조항으로 악용되어 왔기 때문에 마땅히 삭제되어야 한다"라면서 "법무부에서는 단서규정을 신설해 상법 732조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지만, 의사능력에 관한 문제는 계약의 일반원칙으로 해결하면 될 문제이지 그에 관해 단서를 신설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염 변호사는 "상법 732조를 삭제하더라도 보험계약 체결에서 사안마다 계약의 일반원칙에 따른 의사능력 유무를 판단해야 하므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의사능력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의 제정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상법 732조는 15세 미만인 자, 심신상실자 또는 심신박약자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은 무효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 ▲인권위 조형석 장애차별기획조사팀장. |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인권위 조형석 장애차별기획조사팀장은 인권위가 마련한 '장애인 보험차별 가이드라인'의 초안을 공개했다.
이날 발표된 '장애인 보험차별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장애를 사유로 △보험 상담 및 심사 거부 △보험 청약에 대한 승낙 거절 △보험 조건에서 부당한 차별을 할 경우 △보험계약 부당 해지 △보험금 지급 거부 및 낮은 보험금 지급 등을 보험 차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 차별이 발생했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예외로 적용된다. 정당한 사유에 대한 합리적 근거는 △법률의 규정 △검증된 통계자료 △의학적, 과학적 근거 △기타 전문가 의견 등이다.
보험과 관련해 차별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차별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입증해야 하며,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가 아니라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보험회사가 입증해야 한다.
보험회사는 어느 장애나 어떤 장애인이 해당 보험상품의 서비스와 관련해 위험률이 높다는 검증된 통계자료를 제시하면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장애를 이유로 보험차별의 피해를 본 사람은 인권위에 진정할 수 있으며, 인권위가 보험차별에 관한 시정권고를 내렸으나 권고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법무부 장관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보험회사가 시정명령을 정당한 사유 없이 이행하지 않았을 때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조 팀장은 "장애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보험회사는 사적 상업기관으로 가입을 거절할 수 있지만, 거절하더라도 합리적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인권위는 다음 달 보험사 등 관련 기관과의 면담과 관련 부처의 협의를 거쳐 장애인 보험차별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김가영 기자 chara@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