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장애인이 결혼하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혼인신고를 하면 혼자 사는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다.
시설에서 23년간 살다가 지난 2009년부터 서울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김아무개 씨(뇌병변장애 1급)는 지난해 5월 이아무개 씨(뇌병변장애 1급)와 결혼식을 올렸지만 아직 혼인신고를 못했다.
김 씨는 “현재 내가 약 210시간, 아내가 약 250시간 정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혼인신고를 하면 각각 70시간, 합쳐서 140시간이 줄게 된다”라면서 “현재 쓰고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시간도 빠듯한데 여기에서 시간이 줄어들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혼인신고를 하고 법적으로 떳떳하게 부부로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것”이라면서 “그래서 요즘은 차라리 혼인신고제도 자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라고 토로했다.
현재 활동지원서비스에서는 혼자 사는 장애인(1인 가구)에게 독거특례로 월 80시간에서 20시간에 상당하는 추가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1~2급 장애인만으로 구성된 가구에는 10시간에 상당하는 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독거특례로 추가급여를 받던 장애인들이 혼인신고를 하면 추가급여 시간은 월 최대 70시간에서 월 최소 10시간이 줄어든다.
더욱이 월 80시간을 받는 장애인은 인정조사 1등급에 해당하는 최중증장애인이지만 오히려 혼인신고로 줄어드는 시간이 월 70시간으로 가장 많게 된다.
지난해 9월 결혼식을 올린 장아무개 씨(뇌병변장애 1급)와 김아무개 씨(뇌병변장애 1급)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부부도 혼인신고를 하면 둘이 합쳐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140시간 줄어들기에 혼인신고를 미루고 있다.
지난 5월 26일 결혼식을 올린 신아무개(뇌병변장애 1급) 씨와 조아무개 씨(뇌병변장애 1급)는 아예 결혼을 올리기 전에 서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기로 했다. 둘 다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화장실에 가기가 어려운 최중증장애인인데 혼인신고를 하면 기존에 받던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절반가량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정하 조직실장은 "중증장애인 부부는 비장애인 수급자와 달리 장애인연금을 받고 있어 혼인신고를 할 경우 수급비가 삭감되는 것보다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줄어드는 것이 혼인신고를 미루게 하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라면서 "시설에서 수십 년 살다가 지역사회로 나와 결혼 생활까지 하게 됐지만, 중증장애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도 때문에 이들은 계속 고통을 받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각각 혼자 생활하던 중증장애인이 결혼할 경우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줄어드는 문제는 이미 민원을 통해 알고 있다”라면서 “이러한 사항을 포함해 장애인활동지원 급여 전반에 대한 개선과제를 발굴,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6월 중 관련 고시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미뤄지고 있어 언제 고시가 개정될지 말하기는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문제에 대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개선 방안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는 활동지원기관과 활동보조인 등을 통해 현재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수급자 중 1인 가구와 인정점수 400점 이상 1인 가구 중 혼인신고 또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오는 6일까지 조사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최중증 1인가구로 지원을 받다가 결혼으로 지원시간이 축소되거나, 결혼했지만 서비스 축소가 우려돼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가구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시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며 이에 필요한 예산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현황 조사가 필요하다”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따라서 이번 조사는 부정수급 확인 여부와는 전혀 관련이 없기에 대상자의 구체적인 신원은 밝히지 않고 가구별 세부 현황만을 조사해 보내도록 조치했다”라면서 “또한 부정수급을 확인하고자 했다면 굳이 서비스가 축소된 가구 현황까지 파악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