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과 시혜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장애민중의 삶의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19대 국회에서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등의 구시대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철폐하고, 장애인의 인권과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전면적인 법 제도의 정비가 요구된다."
서강대 법학연구소 주최로 22일 늦은 2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19대 국회, 인권입법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장애인권 부문 발제를 맡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이같이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박 상임공동대표는 "19대 총선 과정에서 진보 장애인운동 진영은 '99%장애민중선거연대'를 구성하고 장애민중의 생존권적 요구들을 공약으로 요구하였으나, 정치적 힘을 가진 주요 정당들은 여야 모두 장애인운동의 주요 의제들을 철저히 외면했다"라면서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등은 장애인의 삶과 현실에서 핵심 쟁점이 된 지 오래되었지만, 19대 총선 과정에서 장애인공약의 핵심이 되거나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라고 평가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새누리당은 오직 발달장애인법 제정만을 상징적으로 내세우며 장애인복지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구체적 내용도 확인되지 않는 제목만 있을 뿐이어서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활용만 하고 그치려는 의도가 아닌지 심각히 의심이 드는 상황"이라면서 "민주당 역시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과 소극적인 입장을 오락가락하고 있으며, 구시대적이고 차별적인 복지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의지를 보이지 있고 않다"라고 지적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따라서 19대 총선에 진보 장애인운동 진영이 요구했던 과제들을 19대 국회에서 제기하고 성과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투쟁이 요구된다"라면서 "그것이야말로 선거 시기에 인물로 집약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장애인운동의 정치세력화"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장애인연금법과 장애인활동지원법 전면 개정 △발달장애인법 제정 △수화언어 및 농문화 지원법 제정 △정신장애인 지원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 △(장애인지 예산 도입을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 등을 장애인복지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19대 국회의 과제로 제안했다.
특히 박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에 대해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자립생활패러다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장애를 사회적 관계가 아닌 개인의 신체기능손상 문제로 왜곡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라면서 "이에 장애인복지법을 폐기하고 자립생활패러다임의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해 장애등급과 가구소득기준을 폐지하고 신체적 요인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생활환경과 서비스욕구를 고려한 개인별 지원체계를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강대 법학연구소 조백기 박사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개혁방향에 대해 발제했다. 조 박사는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 흔들기와 무력화에 의해 더 이상 사회적 소수자들과 인권증진과 보호를 위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그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인권위를 구하기 위해서는 인권위원 구성, 예산과 인력, 법령제정 등에서 행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더욱더 강화된 독립성 확보가 이루어져야 한다"라면서 "특히 국제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의 2009년 권고에서도 지적된 것처럼, 인권위원의 인선절차 없이 임명권자만 명시된 법·제도적 한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조 박사는 "특히 비공개적으로 혹은 밀실에서 인권위원으로서의 자질이나 능력, 인권감수성 등에 대한 검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인적 구성은 '과연 인권위가 진정으로 국가인권기구일 수 있는지' 회의를 들게 하는 최대의 원인"이라면서 "이 밖에도 의사공개의 원칙, 처리결과의 공개, 국가기관과의 협조, 조사대상의 확대, 각하사유의 축소 등 인권위 운영의 민주성·투명성·공개성 확보와 진정절차의 개선방안에 대한 더 진전된 논의가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학생인권 부문 발제를 맡은 인권교육센터 '들' 배경내 활동가는 "2010년 경기도, 2011년 서울과 광주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지만, 지역마다 학생인권기준이 다를 뿐만 아니라 대다수 지역에서는 조례 제정을 기대하기 힘들어 지역적 불균형이 갈수록 심각해질 전망"이라면서 "아울러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4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학생인권조례의 일부 조항이 아예 효력이 없어졌다고 선포해 법률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면서, 조례가 단위 학교에 미치는 규범적 구속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결과가 빚어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배 활동가는 "따라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입법이 시급하다"라면서 "물론 법률 차원에서 학생인권이 보장된다고 해서 한국사회 교육이 내포한 모든 인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학생 인권 보장 없이 인권적인 학교문화와 학교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라고 지적했다.
정보인권 부문 발제를 맡은 진보네트워크 장여경 활동가는 "정보가 권력이 되는, 즉 정보에 대한 통제권이 권력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보사회에서 정보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서는 정보에 대한 통제권이 소수에게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 분산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시민 개개인에게 주어져야 한다"라면서 "정보인권의 보장은 정보에 대한 시민의 통제를 보장하는, 정보 민주주의를 위한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장 활동가는 인터넷 실명제와 주민등록번호의 폐기도 촉구했다. 장 활동가는 "특히 익명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의 정치참여를 위축시키며, 본인확인기관으로 등록된 신용정보업체를 비롯한 민간기업으로 하여금 민감한 개인정보인 주민등록번호의 수집과 오남용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인터넷 실명제를 폐지해야 한다"라면서 "아울러 주민등록제도를 개혁해 행정기관이든 민간기관이든 제 고유 목적에 한정된 목적별 번호를 사용하고 범용사용번호로서 주민등록번호를 폐기하고, 주민등록증 발급 시 지문을 강제 날인하는 제도도 폐기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표현의 자유 부문 발제를 맡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주민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발생한 한국진보연대 사건, 자본주의연구회 사건, 6·15공동선언실천 청년학생연대사건, 왕재산 사건 등 국가보안법 사례를 보면 수사를 할 때는 조직사건으로 거창하게 포장해놓고는 정작 이적표현물소지죄 정도로 기소하는 예도 있고 재판과정에서 공안당국의 기소 내용이 무죄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라고 소개했다.
박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는 사라지지 않고 언제든지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라면서 "결국 개정으로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기에 폐지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종합토론에서 통합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 김애화 연구위원은 "통합진보당에서는 현재 인권교육법 제정을 고려하고 있으며, 이 법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공무원까지 포함해 전 사회가 인권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을 것"이라면서 "장애 부문의 발제 내용에 대부분 동의하나, 장애여성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는데 복합적인 차별을 받고 있는 장애여성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담은 장애여성기본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민주통합당 민주정책연구원 박일환 수석연구위원은 "장애인 부문의 가장 핵심은 장애등급제 폐지인데, 장애등급을 폐지한 뒤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라면서 "현실적으로 예산에 한계가 있고 우리가 인위적으로 기준을 제시하기 어려운 만큼, 앞으로 이해당사자들이 적절하게 복지서비스가 지원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통해 틀을 제시해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는 "소수자 중에서 한국 현실에서 공론화되기 어려운 성소수자 부문이 이번 토론회에서 빠진 것이 아쉽다"라면서 "18대 국회 때 박은수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바 있지만 당시 '성적 지향'을 '성적 평등'으로 모호하게 표현해 논란이 있었는데, 19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시에는 이를 분명하게 명시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명숙 상임활동가는 "인권위의 독립성을 확보를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것은 인권위원 구성의 독립성 확보이며, 조사대상의 확대도 사회적 약자의 보루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중요하다"라면서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개정되어 초, 중, 고등학교 및 대학교에 대한 개인의 진정, 공기업의 인권침해도 다룰 수 있게 되었는데, 앞으로 인권위의 진정기능이 자유권 중심에서 벗어나 사회권 영역까지 확대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