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2012.09.14 12:20

쪽방촌에 ‘부엌 인권’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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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늦은 3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마을 부엌이자 마을 도서관인 '사랑방 식도락'이 개소식을 했다.

“부엌은 인권입니다. 그런데 이곳엔 인권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민 스스로) 인권을 만들었습니다. ‘사랑방 식도락’을 이용하면서 이곳에서의 생활이 전보다 편리해지고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동자동 사랑방 황순애 운영위원)

서울역 11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거리, 그곳엔 동자동 쪽방촌이 있다. 11일 늦은 3시, 동자동 쪽방촌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동자동 쪽방촌에 마을 부엌이자 도서관인 사랑방 식도락(아래 식도락)이 문을 열었다. 이날 개소식에는 빈곤사회연대, 건강세상네트워크,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등을 비롯한 사회시민단체와 동자동 쪽방촌 주민 50여 명이 모여 식도락의 출발을 축하했다.

올해로 동자동 쪽방촌에 산 지 13년째인 김순애(85세) 씨는 “쪽방에선 밥통 놓고 휴대용 버너에 찌개 끓여 먹고 물은 공동 수도에서, 화장실은 공동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많이 불편하다”라며 “그런데 이런 공간이 생겨서 좋다”라고 전했다.

김 씨 곁에 앉아 있던 황운식(83세) 씨 또한 김 씨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나도 똑같다. 쪽방엔 부엌이 없으니 방 안에서 밥을 해먹어야 한다.”라며 “쪽방에 산 지 14년째이지만 그동안 쪽방에서의 삶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식도락은 부엌이 없는 쪽방에 사는 동자동 마을주민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 부엌’이다. 식도락의 공간 벽면은 책들로 채워져 있어 도서관 역할도 한다. 또한, 사람들이 모이니 자연스레 마을 사랑방이 된다.

▲사랑방 식도락 내부 모습. 한쪽 벽면에 책들이 꽂혀 있다. 식도락은 마을 부엌만이 아니라 마을도서관도 겸한다.

동자동 사랑방 조승화 사무국장은 “식도락의 탄생은 취사공간이 없는 쪽방이란 공간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라며 쪽방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현행법상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은 3.6평인데, 이 안엔 부엌도 포함된다. 그런데 쪽방은 1평~1.5평 정도다. 쪽방에는 밥 지을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 즉, 방안에서 휴대용 버너에 음식을 해야 한다. 그러니 쪽방에서 할 수 있는 음식은 한정되어 있다. 라면, 밥, 김치, 김치찌개 정도. 방 한쪽에 짐이 있고, 그 안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거다. 이런 공간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쪽방 사람들은 그 안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 화장실과 세면장은 방 밖에 따로 있는 공동 화장실, 공동 세면장을 사용한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다. 즉, 이 공간(식도락)은 이러한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 주민,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 제기기도 하다.”

이어 조 사무국장은 “쪽방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노인이거나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라며 “이것은 건강권, 주거권 등에 대한 문제도 섞여 있다”라고 덧붙였다.

공간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조 사무국장은 주민이 만나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식도락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쪽방은 사람이 쉽게 고립되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 동자동에는 주민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는데, 주민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곳에는 쉬어가는 사람도 있고, 정수기를 약수터처럼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이곳은 누군가를 데리고 와서 같이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한 공간에서 계속 만나게 된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소통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같이 밥을 먹고, 서로 건강을 챙겨주면서 사람들은 소통할 수 있다.”

식도락을 만든 ‘동자동 사랑방’은 동자동 쪽방촌 주민이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2008년 2월에 출범한 단체다.

동자동 사랑방은 현재 쪽방촌 주민을 대상으로 수급권, 파산, 알코올중독 및 도박 등 인권과 복지 전반에 대한 문제들을 상담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의 협동조합에 대한 하나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 역시 이곳에서 탄생했다.

▲사랑방 식도락 주방 모습.


식도락은 회원제로 운영된다. 월 회비는 3천 원, 1년 회비는 3만 원이다. 식도락을 이용할 회원은 '마을 부엌 이용 현황판'에 자신이 이용할 시간을 표시한 뒤 이용하면 된다. 공간 내 주방용품, 식기, 조미료 등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 후 설거지와 뒷정리를 반드시 해야 한다. 단, 이곳에서 음주와 흡연은 할 수 없다.

조 사무국장은 “사실 한 달 3천 원의 회비로는 가스비 등 공간운영비를 대기도 어렵다”라면서 “식도락에서 밥을 해놓으면 사람들이 와서 밥은 500원에, 반찬은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먹거나 직접 만들어 먹으면 된다”라고 말했다.

조 사무국장은 “이곳이 단순한 주방이 아니라 주민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라며 “그래서 같이 밥상을 나눠 먹을 수 있는 자리, 같이 밑반찬을 만드는 요리교실, 커피교실, 바둑교실 등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날 개소식에 참여한 오 아무개(26세, 지체장애 1급) 씨는 “곧 결혼하는데 남편 될 사람이 동자동 사랑방에서 일해서 1주일 전에 이쪽으로 이사 왔다”라면서 “쪽방에는 부엌이 없는데 이런 공간이 생기니 기쁘다”라고 전했다.

그런데 건물 1층에 있는 식도락에는 높은 계단만 있을 뿐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동식 경사로가 지원되기는 하나 이를 설치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다. 이날 개소식에 참여한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이동식 경사로를 이용해 들어갈 수 있었다.

한편, 동자동 사랑방 측은 “식도락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부엌용품, 식기류(그릇, 국자, 수저 등), 음식재료와 마을도서관에 필요한 헌책 등을 후원받고 있다”라며 “식도락을 함께 운영해갈 자원활동가도 모집한다”라고 전했다.

- 문의 : 전화 070-8658-6057, 전자우편jjokbangtown@naver.com
- 후원물품 보낼 곳 :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5-4, 1층 동자동 사랑방
-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5-001-324038, 국민은행 098901-04-041418 (예금주: 동자동 사랑방)

▲개소식을 진행하고 있는 동자동 사랑방 엄병천 대표(왼쪽)

▲개소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커팅식을 하고 있다.

▲개소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동자동 마을 사람들.

▲작은 골목을 가운데에 두고 왼쪽엔 ‘사랑방 식도락’이, 마주한 반대편엔 ‘사랑방 마을기업 밥이 보약’ 식당이 있다. 동자동 주민이 개소식을 맞아 과일과 떡 등 준비한 음식들을 식당으로 나르고 있다.

▲‘사랑방 마을기업 밥이 보약’ 식당에서 사랑방 식도락에서 준비한 음식들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마을 사람들.

▲사랑방 식도락 바깥 풍경.

▲사랑방 식도락 안쪽 벽면에는 동자동 사랑방 활동사진들이 걸려 있다. 사진을 바라보는 동자동 주민.

▲"목구멍이 열려야 귓구멍이 열린다", "사랑과 희망이 이곳에 있습니다" 등 개소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남긴 메시지들. 사랑방 식도락 한쪽 벽면에 걸려 있다.

▲사랑방 식도락 입구에 설치된 이동식 경사로.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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