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2012.12.21 11:04

그는 원래 거기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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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冬至)날이면,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추모제’가 열립니다. 올해 역시 열두 번째 추모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추모제 기획단은 홈리스로 살다가 올해를 끝으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생애를,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전합니다. 거창할 것 없는 그들의 생애 발자취를 통해, 홈리스가 된다는 것, 홈리스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려 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세 차례에 걸쳐 나눠 싣습니다. _ 편집자 주

사회 다수에 속하는 이가 ‘소수자’를 이해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부정적 이미지로 학습 받았고 여전히 그렇게 기억되고 있는 ‘노숙인’을 이해하는 것은 더 그렇다.

주변 친구와 만나 내가 요즘 ‘서울역 노숙인 추모제’에 함께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가 생각하는 노숙인의 이미지는 어떤지 물었다. 듣던 중, “우리하고는 다른 사람들 같아”라는 말이 가슴에 꽂혔다.

‘우리와 다른 사람’. 그들은 과연 우리와 다른 사람일까.

▲자본의 마천루인 서울역 한복판. 역설적이게도 홈리스들은 이곳에서 바닥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을 때, 먼저 그의 말과 행동과 같은 드러나는 모습에서 그의 맥락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그의 현실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가고 곧 그것이 사회가 된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노숙인들은 이 같은 기본적 관계 맺기에서도 늘 배제된다.

우리와는 다른 존재로 인식되는 그들에게는 심지어 우리에게 해를 가할 수도 있는 사람,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는 표현까지도 늘 당연하게 사용된다.

나 역시도 과거 노숙인에 대한 이미지는 다가가기 두려운 사람들, 어두운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것을 공유하며 살아간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제 노숙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폭력적인 일반화의 대상에서 벗어나, 일도 하고 사랑도 하고 좌절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글은 고(姑) 임Ο균 님의 생애를 그의 지기였던 설ΟΟ님께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고 임Ο균 씨는 핸드백공장의 미싱사였다. 고인은 어려웠던 가정환경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서울로 올라가 공장에서 일을 배웠다.

“아버지가 좀 주폭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가정환경이 저하고 똑같이 안 좋은 거 같아요.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어머니 때리고…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중학교 졸업하고. 그때 당시에는 배우려고 해도 환경이 안 좋으면 그러지 못했잖아요. 지금이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되지만… 아버님영향도 많이 받고 중학교 졸업하고 서울 와서 사회로 진출한 거 같아요.”

고인과 89년 공장에서 만나 동갑내기 친구로 절친하게 지내다 IMF 때 헤어지고, 2004년에 노숙을 하며 고인을 다시 만난 설 씨는, 유난히 술을 좋아했던 사람으로 고인을 기억한다.

“직장 다닐 때는 다음날 일을 나가야 하니까 소주 한두 병 먹어도 다음날 웃는 얼굴로 같이 일하고 그랬으니까 심하진 않았는데… 공장이 망하고, IMF 터지고 나서 뿔뿔이 흩어지니까 술에 의지한 거 같아요.”

▲서울 중구청의 노숙 금지 안내문. 우리 사회는 홈리스가 바닥으로 내몰린 이유를 묻기보다는 그가 없어져야 할 이유을 만드는 데 더 익숙하다.
설 씨는 고인이 IMF 이후부터 완전히 술에 의지한 것 같다고 했다. 고인은 제기동 다리 밑과 빈집 등에서 노숙 생활을 하는 내내 술에 의존했었다. 고인의 사망도 술 때문에 간이 완전히 녹아버린 것이 원인이었고, 거리에서 술을 마시다 피를 토한 후 병원에 후송된 지 사흘 만에 사망했다.

“굉장히 좀 안타깝고 (사망 한 달 전) 5월 어느 날인가 봤어요. 근데 간이 안 좋으면 얼굴이 팅팅 붓잖아요. 밥도 안 먹고 내리 술만 먹더라고요. 주변에 파지 주워가지고 (팔아서) 내내 술만 먹더라고요.”

장례는 고인을 애타게 찾던 가족들에 의해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장례는 가족이 있었나 봐요. 가족들이 애타게 찾았던 거 같아요. (중략) 고집이 센데 자기 처지가 이래서 연락 못 하는 사람 있잖아요. 그 친구가 그런 스타일이에요. 그 친구는 집에 전화도 안 했어요. 집하고 몇 십 년 동안 담을 쌓은 것 같아요. 나중에 죽고 나서 가족이 장례 치렀다는 거 보니까 연락을 전혀 안 한 것 같아요. 그전에 연락하라고 내가 말했을 때도 전혀 듣지를 않더라고요.”

자신을 애타게 찾던 가족에게도 연락하지 않던 고인은 다소 고지식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는 것이 설 씨의 증언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일까. 고인은 오랜 음주로 말미암은 간경화에도, 의료지원이나 수급지원을 거부한 채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지기는 평소 고지식한 성격 탓에 술을 걸치고 나면 종종 동료와의 다툼도 있었지만, 마음이 따뜻했던 사람으로 고인을 추억한다. 지기가 구치소에 있을 때, 일부러 면회 와서 영치금 3만 원을 넣어주고 간 것도 고인이었다. 고집이 셀 뿐, 친구를 좋아하고 사람을 그리워했던 고인.

고인이 술에 더 의존하게 된 것도 노숙 동료였던 절친한 친구의 죽음 때문이라고 한다.

“그전에 자기 친구가 죽었기 때문에, 다리 밑에서 여러 명 죽어나가는 걸 봤나 봐요. 그래서 아마도 자기친구 죽은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거 같아요. 그 죽음 때문에 의지할 사람이 사라지고 해서 더 술에 의존한 거 같아요.”

또한 지난 5월 지기를 만났을 때, 어머니를 애타게 찾았다고 한다.

“5월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요. 술 한 잔 먹으면 엉뚱한 소리하고 그러더라고요. 어머님이 빨리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머니를 그렇게 많이 찾더라고요. 같이 잠자다가 어머니, 어머니 소리하는 걸 들었어요. 자기는 자기 몸을 아는 거 같아요. 나는 다 살았구나 하는걸. 피 토할 정도면. 근데도 참 미련하게 술을 먹고 토하고 나서 또 먹고 하니까 병원에서는 손을 델 수가 없죠. 의지할 사람이 없다 보니까 삶의 끈을 놔버린 거 같아요.”

의지할 사람 없이, 술에 의존하며 반평생을 살았던 고인. 그를 더욱 회의적으로 만들고 술에 의존하게 한 것은 그 자신일 수도 있지만, 기술자였던 그를 한순간에 거리로 내몬 자본의 탓일 수도, 고인의 삶의 궤적 따위는 전혀 고려치 않은 채,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노숙인’으로 치부하며 지내 온 우리의 탓일 수도 있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그에게 기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노숙인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아니다. 모든 것에는 맥락이 있다. 이제 우리는 노숙인에 대한 배제를 중단하고 그들의 삶의 궤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화신 노숙인추모제공동기획단, 인권영화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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