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활동보조제도 도입의 필요성
24시간 활동보조제도가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는 24시간 활동보조제도가 없으면, 가족을 떠나, 시설을 나와,
병원을 나와, 지역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중증장애인의 기본적인 요구가 묵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교토에는 24시간 활동보조제도가 보장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전신성 근육장애로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중증장애인도 자신이 살던 집에서 가족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호흡기를 끼거나, 요도에 관을 꽂아 배뇨를
해결하는 중증장애인들이지만, 지역에서 살고 있다. 한국이라면 이들 대부분은 병원에서 살아갈 것이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집에는 하루에도 몇 명의 활동보조인이 드나들며, 동시에 두세 명의 활동보조인이 있는
예도 있다. 불을 끄고 잘 때도 당연히 옆에 활동보조인이 있다. 호흡기를 낀 중증장애인이 병원이 아닌 지역에서 살기를 원하는 건 아무리
친절하고, 안전하다고 해도, 병원은 병원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케어는 중증장애인의 삶의 스타일보다는 병원시스템이 우선한다.
또한 중증장애인의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문자판을 통해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중증장애인의 경우
의사나 간호사는 문자판을 통해 의사소통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경우 중증장애인의 의사나 선택이 무시된다. 몸 상태가 안 좋아져
병원에 잠시 입원했다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오히려 몸 상태가 악화되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중증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 ▲집 안에서 화재로 사망한 고 김주영 활동가의 죽음에 분노하며 활동보조 24시간을 요구하는 활동가들의 시위
장면. 지난 11월 유엔 에스캅 정부 간 고위장관급회의가 열린 인천 송도 컨벤시아 1층 로비에 펼쳐진 대형
현수막. |
이와 같이 중증장애인이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장애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기 위해, 의료의 일부라고
여겨지는 일을 활동보조의 영역으로 확대해 온 자립생활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또 이곳을 통해 그러한 영역까지 커버할 수 있는 활동보조인이
중증장애인과 자립생활센터에서 양성된다.
24시간 활동보조서비스가 제공되며, 상황에 따라서는 2명, 3명의 활동보조인이 동시에 배치되기도 한다. 즉 여러
명의 활동보조인이 중증장애인 한 명의 자립생활을 떠받치는 구조인 것이다. 많게는 20여 명의 활동보조인이 중증장애인 한 명의 활동보조를
담당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본 전 지역에 24시간 활동보조제도가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이 그런 지역을 찾아 이사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즉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인 주거의 자유는 일본에서도 제한되고
있다.
활동보조, 장애인의 손발
활동보조는 장애인의 손발이라는 주장은 다음과 같이 말해진다.
활동보조인이 이용자의 손발이 된다는 것은 즉 활동보조인은 없는 듯 행동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
수동휠체어를 활동보조인이 미는 경우에도 이동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이용자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도 활동보조인은 이용자의 '발'이 된다(마에다,
2009:43-44)¹).
활동보조는 활동보조인 측에서 본다면, 장애인의 지시대로 잘 따라 하는 일, 장애인이 하는 말을 충분히 귀
기울여, 그 지시대로 정확히 실행하는 일이다(와타나베, 2011:59)²).
즉 활동보조인의 움직임은 장애인의 결정이나 선택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활동보조인이 기계도 아니고,
어떻게 장애인의 지시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활동보조인도 의견이 있는데,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과 외출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장애인이 볼일이 있어 비장애인은 활동보조로 따라갔을 뿐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장애인에게 묻지 않고 비장애인에게 질문한다. 은행을 가도,
물건을 사러 가도 장애인은 늘 그런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은 늘 제한적인 경험을 해 왔다. 그래서 중증장애인은 비장애인이라면 '상식'처럼
아는 일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종종 활동보조인이 조언을 하고, 중증장애인이 거기에 따르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실패를 덜 하게 되기도
하고, 편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모의 판단대로, 시설종사자의 판단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중증장애인은 실패할 기회조차 충분히 얻지
못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립생활을 선택한 중증장애인의 삶은 실패를 희망하는 삶이기도 하다. 그래서 활동보조인은 나서고 싶은 마음과
자기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게 되어 버리는 자신의 손과 발을 늘 조심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24시간 늘 누군가가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의 피곤함
활동보조인이 중증장애인의 손발이라는 주장은 중증장애인이 자신의 활동보조를 담당하는 모든 활동보조인과 친밀하게
지낼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기도 한다.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24시간 활동보조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할 수 없는 삶을 강요하는 것이다.
24시간 활동보조가 없으면, 장애인은 화장실 볼일을 볼 수 없으며, 때로는 똥 싼 기저귀를 밤새 차고 있어야
한다. 때로는 생존의 위협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중증장애인도 있다. 그래서 중증장애인은 자신의 존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활동보조인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의 이 주장은 너무나 정당한 것이므로 반드시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게 될 것이다.
자, 한국에 24시간 활동보조제도가 도입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꼭 24시간이 아니어도 좋다. 파트너가 아닌
활동보조가 늘 가까이에, 장시간 붙어 있어야 하는 삶을 살아가는 중증장애인에게 모든 활동보조인에게 따뜻하게 대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또
모든 활동보조인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가능하기나 한가. 있는 듯 없는 듯해 주어도, 자신의 옆에
누군가가 늘 있다는 것은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예를 들어 술이 당겨 술 컵에 빨대를 꽂아 달라고 했는데, '몸에도 나쁜 것을 뭐 하러 먹냐고?' 활동보조인으로
일일이 간섭 내지는 조언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게 있고 싶은데, '그렇게 할 일이 없냐고, 이거 같이 할까?
저거 같이 할까?'라며 수시로 묻는 사람이 옆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생각만으로도 답답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활동보조, 장애인의 손발이라는
주장은 활동보조인이 과도하게 나서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중증장애인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활동보조는 장애인의 손발이라는 주장이 장애인이 모든 일을 일일이 지시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대신 알아서 해 주는 것이 좋은 때도 있다. 일일이 모든 일을 시켜야 하는 것은 또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그리고 중증장애인은 절대로 활동보조인과 친한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활동보조는 장애인의 손발이라는
주장을 오해해서도 안 된다. 활동보조인 중에서도 왠지 마음이 잘 통하고 의지가 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런 활동보조인과
또 다른 관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매뉴얼처럼 딱히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활동보조는 실제로 하면서 알아갈 수밖에 없다.
또 기술을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하며, 모든 일이 그렇듯 고비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 내가 활동보조를 계속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이러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 글이 활동보조인의 잦은 교체로 말미암아 마음고생, 몸 고생 하는
중증장애인과 활동보조를 그만두고 싶다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래본다.
¹) 마에다 타구야(前田·拓也)(2009) 활동보조 현장의 사회학(介助現場の社會學),
생활서원(生活書院).
²) 와타나베 타쿠(渡邊·琢)(2011) 활동보조인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介助者たちは、どう生きていくのか)
생활서원(生活書院). 이에 대해 와타나베는 활동보조는 감정 억제가 필요하게 되며, 이런 감정 노동의 측면이 활동보조인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와나타베 같은 책 60쪽).
* 이 글은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소식지 '숨은 독립찾기'
2012년 하반기호 8호에도 실렸습니다. 곽정란 씨는 장애여성공감 회원이며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대학원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