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64주년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을 맞아 지난달 10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요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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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가 올해부터 장애인이 시설에서 퇴소할 때 시설장 등의 의견서를 통해 부양의무자의 부양 거부·기피를 판단하게 하는 규정을 발표하자 이 조항 때문에 시설에서 나오려는 장애인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달 31일 ‘2013년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 안내’에서 부양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에 해당해 수급자로 선정할 수 있는 사례로 ‘장애인시설 등에 입·퇴소하여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 등’을 신설했다.(본지 1월 9일자 보도 '시설장 의견서로 부양 거부·기피 판단한다')
그런데 복지부는 장애인 등이 시설에서 퇴소해 부양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려면 퇴소 전 시설장 등의 의견서를 통해 부양거부·기피를 판단하게 했다.
이에 대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미소 활동가는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한 주거복지사업으로 16명의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왔는데 그 과정에서 시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경우는 한 번도 없다”라면서 “시설은 표면적으로 장애인의 안전 문제 등을 거론하나 내부적으로는 생활인이 줄어들면 직원도 줄여야 하는 등 운영 문제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소 활동가는 “그래서 시설에서는 안전 문제, 당사자의 무능력 등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탈시설 의지를 꺾거나 ‘물을 흐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라는 이유 등으로 빨리 나갈 것을 재촉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이처럼 탈시설 과정에서 시설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구조에서 수급을 받기 위해 시설의 협조를 받아 의견서를 받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또 다른 어려움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소 활동가는 “12년 동안 시설 생활을 하다가 2011년 자립한 오지우 씨(뇌병변장애 1급)의 경우 시설에서 ‘우리 시설에서는 절대 자립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가족에게 연락해 퇴소하도록 했다”라면서 “이런 경우 실제로는 가족으로부터 아무런 부양을 받지 못했지만, 가족관계는 단절되지 않은 것으로 시설에서 의견서를 쓰면 수급자가 될 수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인천 민들레장애인야학 박길연 교장은 “지난해 퇴소한 지 1년이 지난 장애인 한 분이 부양의무자 확인조사로 수급 탈락 통보를 받은 일이 있었다”라면서 “그때 담당 공무원이 당사자에게 퇴소한 시설로부터 가족관계 단절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받아오라고 요구했다”라고 전했다.
박 교장은 “이에 우리는 담당 공무원에게 ‘왜 당사자가 시설에서 그것을 받아야 하느냐? 받으려면 당신이 받아오라’라고 요구했고 담당 공무원이 시설에서 관련 자료를 받아 수급권을 인정받은 사례가 있었다”라면서 “지역사회로 나왔다는 이유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해 수급 여부를 가려내는 것 자체가 애당초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장은 “일단 시설 입소는 수급자 우선이기 때문에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이미 수급자인 경우가 많고, 지역사회에서 가족의 부양은 물론 노동권 등 기본적인 권리를 인정받지 못해 시설에 들어간 것”이라면서 “그런 상황에서 시설에서 나오려는 장애인들은 수급이라도 받아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하려는 것인데, 가족과 몇 차례 연락이 있었다는 이유 등으로 시설이 부양 거부·기피를 확인해주지 않는다면 영영 그 사람은 시설에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냐?”라고 성토했다.
한편, 시설 거주 장애인의 수급 인정 여부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31일 김용익 의원(민주통합당)은 장애인복지시설에서 나와 자립하려는 사람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말자는 내용 등을 담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개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시설입소 수급권자가 시설에서 나와 자립하고자 하는 경우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배제하려는 것이므로, 시설에 입소하지 않은 장애인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되어 시설에 입소하였다가 나오는 경향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라면서 “따라서 부양의무자 특례 규정을 근거로 시설입소자가 아닌 장애인에 대해서도 부양의무자의 부양이 어려운 경우에는 탄력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별도로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