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2013.01.18 14:00

장애인 성폭력 정책변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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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부터 장애인 성폭력 정책 관련해서 어느 때 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짐작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2011년 가을, 역사상 최초로 장애인 성폭력 관련 정부 종합 대책이 발표되고, ‘도가니법’이라고 호명되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아래 처벌특례법) 개정안이 만장일치로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이어 2012년도에는 아동청소년성폭력 사건이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 되면서 성폭력 관련 또 다른 새 대책과 법률개정안이 속속 등장했고, 이 때문에 장애인 성폭력 관련 관심은 조금 잦아든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에 성폭력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대책(화학적 거세, 물리적 거세, 사형제, 전자발찌 등등 이루 다 열거하기도 힘듭니다)을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 경쟁하듯 내놓고 있어 이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최근 성폭력 관련 정책 변화들 안에서 장애인 성폭력 쪽은 어떤 변화가 있었고,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정리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막 바뀐 수많은 정책들은 올해 계속해서 현장과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를 것입니다. 복잡하게 급변한 정책, 여기에 앞으로 사건과 이슈에 따라 정치권과 여론의 태도가 또 어떻게 뒤바뀔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시각을 견지하고 여기에 대응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장애인 성폭력 정책의 현재 변화와 의미의 핵심을 잘 분석해 내는 작업에서부터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 <도가니> 이후, 인화학교 성폭력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문화제를 하는 사람들.

성폭력 피해자 권리 보장, 현실과 한계

장애인이나 아동 성폭력범죄를 두고 사람들은 흔히 ‘파렴치한’ 가해자의 강력 처벌에만 관심을 둡니다. 이에 비해 피해자의 지위 내지 피해자 보호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것이 사실인데, 청각장애 아동들이 수사재판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는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 영화 '도가니'를 통해 이러한 분위기가 역전돼 장애인 피해자 권리 보호 문제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미 성폭력 피해자를 비롯한 모든 범죄 피해자의 권리는 현행 헌법과 형사소송법을 비롯한 여러 법률에 보장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형사소송 법률 절차에서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공감대는 비교적 최근에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실상 오랜 시간동안 피해자는 그 위치 자체가 가지는 중요성에도 ‘제3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피고인(가해자)과 국가형벌권을 양 ‘당사자’로 하는 형사소송 절차에서 피해자는 추상적인 보호의 대상으로만 취급되거나, 절차상 권리를 가진 주체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피해자 지위와 권리에 대한 인식 부재의 결과는 심각했습니다. 성폭력 범죄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모욕감과 2차 피해 등으로 말미암아 심각하게 괴로움을 호소하고, 쉼터나 친척집 등에 숨어 지내야 하고, 두려움에 할 수 없이 가해자에게 ‘합의서’를 작성해 준 사례들. 사법절차 과정에 대해 전혀 통지를 받지 못하거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검찰이나 법정에 소환돼 가해자와 함께 대질신문을 받거나, 반복된 피해 사실 진술을 한 사례들… 이처럼 무수히 많은 사례들이 문제로 세상에 드러났고, 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법 개정 작업이나 피해자 권리 확보를 위한 여러 노력들이 뒤늦게나마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현실은 열악하고, 가야 할 길은 멉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 중에서도 현장에서 가장 큰 과제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각종 특별법 차원에서 법 개정이 여러 번 이루어졌으나 근본적으로 형법, 형사소송법 등 모법(母法) 차원의 개정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져 성폭력 2차 피해 방지와 피해자 권리에 대한 두터운 보장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이슈나 사건이 터질 경우 국회와 정부는 특별법 개정을 앞 다투어 들고 나오고, 이렇게 법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기 때문에 법률 전문가들조차 그 내용을 제대로 인지하고 쫒아가기 힘든 지경입니다. 또한 특별법만의 개정은 실무 운용에서 여러 법체계들 간의 균형을 깨고 서로가 상충되게 까지 하는 등 부작용을 낳는 문제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가니'에서 문제 제기되었던 것처럼, 장애인, 특히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정도의 정신적 장애나 시청각 장애가 있는 피해자의 권리 보장 문제는 우리 사법 체계가 이제 막 고민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다양한 장애유형별 특수성이 무엇이며, 사법체계 안에서 어떻게 그러한 특수성을 보장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권리 보장 제도의 두 축: ‘법률 조력인’과 ‘진술조력인’

하지만, 2012년도에 처음으로 시도된 성폭력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들 중에 장애인 인권의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법률 조력인’과 ‘진술 조력인’ 제도의 입법화 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들은 한 축에서 법률 전문가를 통해, 또 다른 축에서 장애/성폭력 전문가를 통해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형사소송 절차 과정에서의 2차 피해를 방지와 원활한 사법절차 참여 보장을 극대화 한다는 기본 취지로써 논의되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이미 여러 선진 국가들에서 제도화의 선례를 가지고 있기도 한데,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라는 권리보호의 범주를 보다 명확히 규정하는 추세에 있어서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차별점을 드러내고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장애여성공감이 지난해 11월 연 성폭력피해 장애인 지원자를 위한 교육 및 매뉴얼 활용 방안을 설명하는 ‘장애와 성폭력, 이것부터 시작해요’.

법률 조력인 제도는 성범죄 피해자에게 국가가 국선변호인을 지정해 주어서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애초 2011년 정부가 법률조력인 지원 대상이 되는 성범죄 피해자 범위를 아동청소년과 장애인으로 규정해 처벌특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으나, 국회에서 해당 법률이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성범죄 피해 아동청소년의 변호인 선임에 관한 특례를 규정한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만이 통과돼 2012년 3월부터 시행되었고, 현재 성범죄 피해 아동청소년(장애가 있는 아동청소년도 포함됩니다)들에게는 법률조력인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1월 말 국회 법사위에서 법률조력인 수혜 대상자를 장애인과 비장애 성인까지 포괄하고, 법률조력인의 권한 또한 확대하는 내용의 처벌특례법 개정안¹이 통과되었고, 이제 2013년도부터 전체 성범죄 피해자가 형사소송 절차상 변호인으로부터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한편 진술조력인은 아동과 장애인 등 의사소통이나 소송절차 참여에 있어 일정정도 특수성이 있는 피해자에 대해 피해자와 수사·재판부 간 의사소통을 조력하고 피해자의 특수성이 절차에 반영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사람입니다. 본 제도는 작년 8월 정부의 공청회를 거쳐 입법발의 되었고, 마찬가지로 11월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된 처벌특례법 개정안 안에 최종 포함되었습니다.²

형사소송 과정, 특히 성폭력 범죄의 형사소송 과정은, 가해자의 혐의부인과 범죄의 물적 증거 없음 등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입증하고 절차에 참여해 법적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전략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 그중에서도 사회적 취약층이라 할 수 있는 아동청소년이나 장애인 등이 이러한 법률적 행위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이에 지금까지는 성폭력상담소 등 여성·장애인 등을 위한 시민단체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 지원과 절차 보조 모두를 수행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사건을 인지해 지원을 하는 케이스는 전체 피해자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할 뿐이며, 사실상 많은 피해자들이 형사소송절차라는 극히 낯선 미지의 영역에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함으로써 다양한 2차 피해와 불기소 처분, 무죄 판결 등 최악의 상황으로 귀결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법률조력인과 진술조력인 제도를 통해 형사절차상 최소한의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장애와 사법절차, 근본적 인식의 변화 촉발해야

최근 범죄 피해자의 권리보호에 대한 인식이 한층 진일보했으며, 동시에 장애인과 같은 취약계층의 보호를 우선해 제도가 마련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물론 이러한 제도들이 제대로 정착, 운용될 수 있도록 어떻게 현장을 정비하고 인식을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는 별도의 문제로, 아직 회의적이라는 시각도 많고, 그래서 관련 연구나 현장 의견수렴을 위한 노력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역시 정부, 사법부 및 민간단체들과 함께 변화된 제도들의 개선과 제대로 된 운용을 위해 다양한 통로로 연구 작업 및 의견개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애인 등을 위한 형사사법절차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 변화는 특별법에 한해 진행되었고, 이는 ‘부분적’ 성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장애인 안의 다양한 특수성이 인적지원 뿐 아니라 다양한 물리적 지원 제도로 보장될 수 있는 기반마련과 인식의 변화를 위해 아직 가야할 길은 먼 것 같습니다.

범죄피해자로서 권리 보장의 대상이 ‘장애인’이라는 한정된 범주에 수렴되는 추세에 대해서도 우리는 비판적 질문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성폭력, 가정폭력 등 피해자이지만 ‘장애’라는 범주에 포함되지 않으면 권리 보장에서 제외되는 것은 문제일 것입니다(또한 성폭력, 가정폭력의 피해자 중 다수가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았지만 사회적 폭력으로 말미암은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가진 정체성 그 자체로 다양한 범죄 피해의 위험에 놓이고 있는 현실에서 범죄 피해자에 대한 권리 인식이 다른 사회적 소수자 및 취약계층에까지 확대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급변하는 정책변화와 언론의 잘못된 대응, 이 속에서 더욱 갈피를 잡기 어려운 성폭력 정책 방향. 이럴 때 일수록 다시 현장으로, 피해자들의 삶으로 들어가 근본적 변화를 위한 논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1)「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개정법률안 제27조(성폭력범죄 피해자에 대한 변호인 선임의 특례)[2012.11, 국회 아동여성대상 성폭력 대책 특별위원회안]

① 성폭력범죄의 피해자 및 그 법정대리인은 형사절차상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방어하고 법률적 조력을 보장하기 위하여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

⑥ 검사는 피해자에게 변호인이 없는 경우 국선변호인을 지정하여 형사절차에서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

2)「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개정법률안 제36조(진술조력인의 수사과정 참여) ①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성폭력범죄의 피해자가 13세 미만의 아동이거나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의사소통이나 의사표현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원활한 조사를 위하여 직권이나 피해자, 그 법정대리인 또는 변호인의 신청에 따라 진술조력인으로 하여금 조사과정에 참여하여 의사소통을 중개하거나 보조하게 할 수 있다. 다만,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이를 원하지 아니하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이 글은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2012년 하반기호 통권 8호에도 실렸습니다.



황지성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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