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233.69) 조회 수 42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서울시시설장애인자립생활지원네트워크는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살던 장애인이 탈시설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도록 지원하는 주거복지사업을 지난 2010년부터 3년 동안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12일 이번 사업을 마무리하는 보고대회를 열고 이날 총 16명의 자립생활 과정을 생생히 담은 인터뷰집 '나 자립했다'를 발간했다. 이번 책에 실린 이들의 인터뷰를 연재한다. _ 편집자 주

“저는 제가 A형(혈액형)이라 A형이 싫어요. A형은 다른 사람에게 기분 나쁜 걸 이야기를 잘 못해요. 나는 먼저 말을 안 시키면 말을 잘 안 해요. 사람이 많은데 있으면 말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이에요. 낯을 많이 가려서.”

스스로를 사람 대하기 어려워하는 소심한 A형이라고 밝히는 오지우 씨(32), 그러나 그녀의 꿈은 의외로 ‘상담가’이다. 세상에서 받은 상처로 마음을 다쳤거나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치유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상담일. 어째서 ‘낯가리는’ 지우 씨가 이 일에 관심을 두게 된 걸까.

“제가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랐잖아요. 그래서 어려운 사람을 보면 상담을 해주고 싶어요. 저는 이야기 하는 것도 좋고 듣는 것도 좋아해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즐거워 해주고 기분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니 소심해서 A형이 싫다는 지우 씨가 가장 좋아하는 혈액형은 O형이다. “O형은 성격도 좋고 다른 사람이 해달라는 거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혈액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지우 씨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결국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에 대한 지우 씨의 가치관이다. 그리고 지우 씨는 그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열아홉 살에 시설에 들어갔다는 오지우 씨. ⓒ고은경

그녀의 방에는 유달리 분홍색이 눈에 띈다. 휴대전화도, 투박한 전동휠체어도 온통 분홍빛으로 장식되어 있다. 분홍색은 소녀적인 이미지가 있어 분홍색을 좋아하는 성인은 유치하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분홍은 공격적인 기운을 진정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색이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관계를 만드는 색이기에 ‘부드러움’과 ‘행복’을 뜻한다.

인터뷰를 위해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우리의 대화는 시작부터 별 어려움 없이 즐겁게 흘러갔다. 아마도 지우 씨가 천성이 상냥한 사람이고, 그리고 나를 많이 배려했기 때문일 게다. 무엇보다 지우 씨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HOT를 좋아했던 17살, 첫 시설에 들어간 19살

오지우 씨는 시설에 들어가기 전까지 인천에서 살았다. 지우 씨는 선천성 뇌병변장애가 있다. 지우 씨가 어렸을 적, 어머니는 아무리 어려워도 학교를 꼭 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부모님의 이혼으로 지우 씨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학교를 그만두고 처음 시설에 가게 된 19살 때까지, 지우 씨는 줄곧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당시, 친구이자 세상과의 소통 창구가 되어준 것은 텔레비전이었다. 다른 수많은 또래 친구들처럼 지우 씨도 텔레비전을 통해 만난 아이돌그룹 HOT의 팬이 되었다. 강타를 특히 좋아했던 지우 씨는 강타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지우 씨에게는 오빠와 두 명의 여동생이 있는데 집에서 차별대우 받는 것에 속상한 적이 많았다. “막내 여동생과는 어렸을 때 많이 놀았어요. 형제들과는 지금도 막내 여동생과만 연락해요. 서로 바쁘고 지금은 자주 못하지만. 시설에 있을 때도 맨날 연락하고. 시설에서는 식구들이 오려면 뭐라도 사와야 하니까 자주 못 왔는데, 지금은 6개월에 한 번씩은 만나는 것 같아요.”

19살 때 처음 가게 된 시설은 경기도 포천에 있었다. 주로 어린아이들이 있는 시설이었고 갓난아이들도 있었다. 성인들은 중증이 아닌 사람들이 많았고, 성인 여자 중 뇌병변장애는 지우 씨가 유일했다고 한다.

“선생님들이 나를 어려워했어요. 힘드니까 구박도 많이 했고. 왜냐면 저 같은 경우 케어하기가 힘들었거든요. 제가 19살까지 집에만 있었으니까 사회에 대해 아는 게 없잖아요. 시설에 처음 들어갔는데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도 말을 못하겠는 거예요. 말 못하고 그냥 선생님만 쳐다봤어요. 선생님들이 빤히 쳐다본다고 모라고 그러는 거예요. 저는 그냥 화장실 가고 싶은데 이야길 못해서 빤히 쳐다본 건데.”

“함께 거주하는 지적장애인 중 나랑 동갑인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애는 어린아이도 봐주고 하니까 선생들이 그 애를 예뻐했어요. 생활인 위주가 아니라 선생님들 위주의 시설이어서 생활인의 말을 들어주지도 믿어주지도 않았어요.”

선생님들은 지우 씨에게 밥 먹을 때 숟가락을 직접 이용하게 하거나 텔레비전 리모컨을 사용하도록 했다. 리모컨 버튼은 누른다 해도 숟가락은 밥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해야 하니 팔이 올라가지 않는 지우 씨에게는 가혹한 강요였다.

“처음에 물리치료사가 같이 도와줬어요. 밥도 먹여주고. 물리치료사는 내 몸 상태를 알잖아요. 그런데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었어요. 물리치료사가 먹여줄 땐 괜찮았는데 관두니까 혼자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밥을 바닥에 흘릴 거 아니에요. 자꾸 바닥에 흘리니까 선생님들이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냐고 구박도 하고, 화장실에서 먹으라고 했어요. 그렇게 밥을 한 달인가 두 달을 굶으니까 어지러운 거예요. 나중에는 우유를 하나씩 줬어요. 그런데 다 오바이트를 하고. 어지러워 죽는 줄 알았어요.”

시설 안에서 학교에 다니다

그러다 지우 씨는 시설을 옮기게 된다. 새로운 시설은 경기도 이천에 있었는데, 허가받은 지 얼마 안 되는 곳이었다. 이 시설에서 지우 씨는 학교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해서 대학 가고 싶다고 계속 말했더니 공부를 시켜줬어요. 초등학교 나왔으니까 중학교 과정부터 시작했어요. 거기는 시설이잖아요. 그래서 왔다갔다는 못하고 일주일에 세 번씩 선생님이 와서 몇 명을 같이 모아 공부했어요. 나만 가르치는 게 아니니까 전 과목은 다 못하고 필수과목 위주로.

중학교 선생님이 잘해줬었어요. 많이 가르쳐주려고 하셨고, 그나마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졸업할 때 표창장도 받고 상도 네 개나 받았어요. 고1까지는 시설에서 있다가 2학년 올라갈 무렵에 자립했어요.”

오지우 씨가 자립에 대한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은 2008년 시설에 성교육을 왔던 강사로부터 자립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게 되면서이다.

“언니들이 내가 있던 시설에 교육하러 왔어요. 성교육인가. 그걸 듣다가 자립생활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자립생활에 대해 듣기 전에도 시설에서 나가고 싶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더 나가고 싶어졌어요.”

꼭 ‘자립’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설’을 나가고 싶다는 소망은 계속 지우 씨의 마음속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시설 안에서는 선생님도 자주 바뀌고, 시설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고, 자기가 싫어도 규칙에 따라야 하고 그런 게 싫었어요. 선생님들도 대부분 나를 안 좋아했고. 나를 예뻐했던 선생님이 있었지만 그만두고 계속 바뀌고 오해받고 그런 것들이 싫었어요.”

이천의 시설은 지우 씨가 전에 머물던 시설과 달리 '선생님 위주가 아니라 생활인 위주'였고 이런 점이 처음엔 좋았다고 한다. 게다가 학교 공부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바뀌면서 문제가 생겼다. 새로 온 선생님들로부터 오해를 많이 받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선생님에 대해 다른 사람이 무어라 뒷말을 한 것이 지우 씨가 한 것으로 오인되어 미움을 받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시설을 나가고 싶었던 지우 씨에게 ‘자립’에 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가뭄에 만난 단비처럼 반가운 일이었다.

“시설 밖에 나가서 하고 싶은 일들도 있었고. 나가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는데, 이제 방법을 찾게 되었던 거예요.”

하지만 시설을 나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시설에서는 지우 씨가 자립을 준비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 시설에서 핸드폰을 가지게 되었는데, 누구랑 메시지 하는지 검사하고. 그래서 메시지를 바로바로 삭제하고, 언니들과 맨날 연락했어요. 그런데 시설에서 연락한 걸 알아서 못하게 해서 한동안 안 하고 그랬어요.”

‘하늘을 날 것 같던’ 자립생활을 시작하고

오지우 씨는 지난해 3월 15일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 날짜를 정확히 외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날 것 같았어요.”

달리 표현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지우 씨가 느낀 것은 말 그대로 ‘자유’였다. 그날의 벅찬 기분은 아직도 가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지우 씨의 눈을 반짝이게 한다.

▲사진 왼쪽이 오지우 씨. ⓒ고은경

“시설에서는 2월에 나와서 집에 며칠 있었어요. 원장님이 부모님께 전화해서 저를 집에 데리고 가라고 해서 그날 아빠 집에 갔어요. 아빠는 ‘그 좋은 시설 놔두고 왜 그러냐’고 자립을 반대했죠. 엄마도 반대했구요.”

처음에 반대하던 어머니는 자립을 지원하던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지우 씨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지우 씨는 자립생활을 시작한 후 시설에서 시작한 학교공부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마치고 자립한 지우 씨는 일반 고등학교에 2학년으로 입학해 지금은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지우 씨의 집에서 걸어서 한 시간 거리의 학교로 특수학급과 일반학급이 함께 있는 곳이다. 통학은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한다. 차로는 15분 거리이다.

“통학하려면 진짜 힘들어요. 아침에 7시에 나가야 하고. 처음 두 달은 걸어서 다녔는데, 그때 어떻게 다녔나 싶어요.”

중학교 때 초등학교 과정을 듣다 보니 고등학교 일반반의 수업은 솔직히 너무 어렵다. 담임선생님이 둘이라 “아파서 가끔 못 갈 때 양쪽으로 전화해야 하”는 게 불편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학교생활은 정말 재미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친구들 때문이다.

“반 친구들이 되게 잘해줘요. 학교 가기 전에 걱정했어요. 애들이 안 좋게 대할까 봐. 생각 외로 애들이 잘해줬어요. 2학년 때 ‘굿프렌드’(비장애학생이 장애학생의 활동보조를 함께 해주는 또래도우미 제도)가 있었어요. 2명이 있었는데 3학년 올라가면서 그 중 1명이 같은 반이 되었어요. 3학년에는 ‘굿프렌드’가 세 명이 된 거죠.

전동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가는데 손을 고정시키고 가잖아요. 학교에 도착하면 애들이 그걸 풀어주고, 특수학급으로 이동할 때 전동휠체어 운전도 해줘요. 친구들끼리 ‘누가 운전 제일 잘 하냐’고 묻고 서로 내가 제일 잘한다고 그래요. 정말 웃겨요. 하하하!”

누가 전동휠체어 운전을 제일 잘하나 겨루는 지우 씨의 유쾌한 ‘굿프렌드’들처럼 지우 씨도 참 밝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지우 씨에게 재미난 학교친구들이 생긴 게 왠지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자석처럼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이에게 끌리지만, 동시에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는 이들끼리 모인다.

특수반에서도 지우 씨는 ‘인기짱’이다. “특수반에 1, 2학년 애들이 나를 되게 좋아해요. 와서 꼭 인사해요.”

학교 친구들은 지우 씨가 서른두 살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학교에서 다른 애들은 내가 자기들보다 한두 살 많은 줄 알아요.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했대요.” 그래도 열한 살을 더 어리게 봐준다니! 지우 씨가 동안이라 그런가 봐요, 라고 하니 “열일곱까지 봐주기도 한다”며 웃는다. 지우 씨의 너스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작년에 초등학생까지 봐준 사람도 있어요.” 나와 지우 씨, 그리고 활동보조인까지 세 사람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방안 가득 터져나간다.

요즘 지우 씨는 ‘커피가게’를 운영하는 휴대전화 게임에 푹 빠져 있다. 지우 씨의 커피 가게는 나날이 번창 중이다.

“게임을 하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안 나고 그래서 좋아요. 올여름에 너무 더워서 에어컨 쐬러 극장에 갔는데 사주보는 사람이 있길래 사주를 봤어요. 저더러 나중에 사업가가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지금 빠져 있는 게임도 커피 가게 운영인가보다, 농담을 던졌다. 지우 씨는 자기와 함께하는 활동보조인이 4명이니, 이미 종업원 네 명을 둔 사장님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활동보조인은 “사장님께 잘하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또다시 지우 씨의 방은 우리 세 사람의 웃음소리로 한 가득이 된다.

“내가 신기가 있는 것 같아요. 될 것 같은 예감이 들면 돼요. 제가 장콜(장애인 콜택시)을 1년 넘게 탔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기사 아줌마가 있는데, 오늘 아침 그 기사분이 와줬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그분이 온 거에요. 장콜 기사분 삼백몇 명 중에 그 기사분이 와준 거죠. 그리고 얼마 전에는 장콜 이용자가 십만 명인데 그중에 스무 명을 뽑아서 10월 9일에 서울대공원에 가는 행사에 당첨되었어요. 내 생각에는 기사님들이 데리고 가고 싶은 사람을 뽑는 건데 그 기사님이 날 뽑아준 게 아닐까 해요.”

‘사는 맛’이 있는 삶을 살다

고등학교 3학년인 지우 씨는 한국복지대학 컴퓨터공학과에 원서를 냈다. 원하던 심리학과는 나중에 공부를 더 해서 가려고 한다.

자립을 시작할 무렵 지우 씨는 자립 이후의 계획과 소망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우선, 제대로 고등학교 전 과정을 배우고 싶고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대학에서 심리학을 배우고 싶고 17살 때부터 꿈이 심리학을 전공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계획한 대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을 준비하고 있으니, 한 과정 한 과정을 차근히 밟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자립생활은 즐겁고 보람차기만 하지 않다. 사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더 많다.

“지난달에 사고가 있었어요. 거의 5일을 입원했어요.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에 받혀서 발판도 망가지고. 그런데 교통사고를 낸 기사분이 되게 웃겨요. 저녁에 사고가 났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등하고 허리가 아파서 연락했어요. 병원에 가야 될 것 아니에요. 보험회사에 접수해야 하는데 전화를 안 받는 거예요. 메시지를 했어요. 허리 등 아프니까 병원 가야 될 것 같다. 접수 좀 해달라고. 그런데 연락이 없어요. 계속 전화했어요.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찍었더니 의사가 일주일간 입원하래요. 그날이 토요일인데 통화도 안 되고 입원준비도 없이 갔는데. 경찰서에 전화했는데 (경찰서로) 와서 신고해야 된대요. 그래서 활동보조인과 같이 경찰서 갔더니 경찰서가 엘리베이터도 없고 2층인 거예요.

그 경찰서에서 기사에게 전화했는데 경찰서 번호가 뜨니까 그제야 받더래요. 받긴 받았는데 경찰한테 뭐라고 그랬대요. 뭐라 그러냐면 전동휠체어는 자동차가 아니고 보행자라고. 결국에 그분이 경찰한테 자동차라고 접수는 해줬는데 접수번호를 문자로 보내달라고 했더니 정말 접수번호만 찍어서 보냈더라구요. 어떤 회사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경찰에서 그 사람에게 전화했더니 운전자가 교회 목사인 거예요.”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들의 왜곡된 인식만 힘든 건 아니다. 무엇보다 자립생활을 어렵게 하는 것은 사회적인 지원체계가 아직 많이 모자라다는 점이다.

“제가 수급자잖아요. 심사를 6개월에 한 번씩 하는데 이번에 쪽지가 날아왔어요. 부모님 때문에 수급자에서 탈락될 수가 있다고. 그것도 꼭 시험기간에만 일이 터져요. 일 년에 두 번이잖아요. 공부에도 방해받고. 의견서를 제출하고 해서 간신히 탈락은 면했어요.”

지우 씨는 얼마 전에 활동보조인과 함께 동해안의 정동진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렇게 멀리 여행간 건 거의 처음이다. “예전부터 해돋이가 보고 싶었어요. 그 전날 밤 11시 기차를 타고 갔는데, 내가 갔을 때 날씨도 되게 좋았고 해 뜨는 것도 잘 보였어요.”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소원도 빌었다. “예쁘고 좋은 일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고… 집도 생겼으면 좋겠고… 사람들에게 상담도 해주고….”

소원을 말하는 지우 씨의 얼굴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지우 씨에게 행복이란 뭘까요?”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곧 이런 답을 들려줬다.

“지금처럼 하고 싶은 거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는 거요”

‘행복’을 ‘지금’의 삶에서 찾고 있는 지우 씨에게 자립생활의 선배로서, 자립을 꿈꾸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자립생활에는 분명히 안 좋은 것도 있고, 힘든 것도 있어요. 시설에서 생각한 것보다 힘들겠지만, 나와서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고 그러면 그게 사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시설보다는 되게 만족감이 있는 것 같아요. 생각보다 자립하면 만족감이 있으니까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인터뷰 후기

오지우는 매력적인 여자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그녀는 멋에도 관심이 많다. 머리카락은 특별히 레드와인 색으로 염색을 했고, 놀러 나갈 때는 장미색 립스틱도 필수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한다. 언젠가 풍경이 아름다운 프랑스 파리에 가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함께 있으면 즐겁다. 인터뷰가 끝나고 오는 길, 자꾸 생각이 났다. 세상을 호기심으로 대하는 그녀가 좋다. 재미있는 농담을 던지고, 휴대폰 게임에 열중해 카카오톡으로 초대문자를 보내는 그녀도 좋다. 아마도 그녀는 그 상냥하고 엉뚱한 에너지만으로도 꽤 좋은 상담가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 박희정 여성주의저널 <일다> 편집장



박희정 여성주의저널 일다 편집장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42 인권/복지 고 장성아 씨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file 베이비 2013.01.30 466
2041 인권/복지 기아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해고자, 28일 밤 자살 file 베이비 2013.01.30 318
2040 인권/복지 활동보조인은 208시간 초과해 일하지 마라? file 베이비 2013.01.30 2176
2039 인권/복지 '18대 대선 장애인 참정권 차별받았다!' file 베이비 2013.01.30 332
2038 인권/복지 스페셜올림픽 위치추적단말기, 인권침해 논란 file 베이비 2013.01.30 529
2037 인권/복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공포 1년… 보수 교육감 앞에 존폐위기 file 베이비 2013.01.28 324
» 인권/복지 “행복이요? 지금처럼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요” file 베이비 2013.01.28 426
2035 인권/복지 인권위, 보험차별 개선 가이드라인 마련 file 베이비 2013.01.28 332
2034 인권/복지 인수위 누리집, 장애인 접근 불가" 진정 제기해 file 베이비 2013.01.25 498
2033 인권/복지 인권위, 지적장애인 착취한 양봉업자 검찰 고발 file 베이비 2013.01.25 469
2032 인권/복지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한국선수단 출정 file 베이비 2013.01.25 1040
2031 인권/복지 정리해고에만 너무 힘쓰는 거 아니냐고? file 베이비 2013.01.25 313
2030 인권/복지 증액 예산 시각장애인 센터에만 쓴다고 file 베이비 2013.01.24 619
2029 인권/복지 "웹접근성 인증 은행, 인터넷 뱅킹은 거절" file 베이비 2013.01.24 690
2028 인권/복지 제주 장애인콜택시, 올해 10대 증차 file 베이비 2013.01.24 640
2027 인권/복지 제주 장애인콜택시, 올해 10대 증차 file 베이비 2013.01.24 913
2026 인권/복지 서울 지역 특수교육지원센터, 장애영아반 설치 file 베이비 2013.01.24 546
2025 인권/복지 '직원폭행·불법투표' 윤석용 회장 직무 정지 file 베이비 2013.01.24 560
2024 인권/복지 영화 ‘나비와 바다’ 결혼 제도의 가부장적 민낯 file 베이비 2013.01.24 658
2023 인권/복지 인수위 누리집, 장애인 접근 불가" 진정 제기해 file 베이비 2013.01.24 636
Board Pagination Prev 1 ...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 152 Next
/ 152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