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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고 박지훈 군의 49재를 맞아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장애인활동가들이 지우·지훈 남매 영정에 헌화하는 모습입니다.

지난달 30일 파주 장애남매 화재사건 희생자인 고 박지훈 군(뇌병변장애 1급, 당시 11세)의 49재가 치러졌습니다.

지우·지훈 남매의 영정을 앞세운 사람들은 안국동 보건복지부 앞을 출발해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지난번 장례식 때처럼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높으신 분이 장례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과 마주칠까 저어했는지 경찰 병력이 행렬 앞을 막고 느릿느릿 걸었기 때문입니다. 한바탕 거센 항의를 받고서야 경찰은 길을 터주었습니다.

49재 행렬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 도착하니 앞서 기자회견 중이던 뉴타운·재개발 지역 주민들이 자리를 비켜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너도나도 “장애인이니까 비켜주는 거야”라는 말을 툭툭 던지며 갑니다. 평생 그런 말을 듣고 지내온 장애인활동가들은 입술을 살짝 깨물거나 고개를 돌리기도 했습니다.

이어진 49재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 서혜자 부회장이 지우·지훈 남매의 입관식 모습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과잉행동장애가 있던 지우 양은 생전에 항상 웃고 있는 활발한 소녀였는데, 입관식 때는 한이 서린 것처럼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반면 지훈 군은 너무나 편안한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지훈 군의 그런 모습에 서 부회장은 이승보다 저승을 더 편안하게 여기는 것 같아 가슴이 더욱 아팠다고 합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대하기보다는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훈 군은 그들이 말하는 보호의 대상에조차 끼지 못했습니다.

지훈 군을 위해 부모님은 주민센터에서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려고 했으나, 장애등급재심사를 받아 장애등급이 하락하면 활동지원서비스는커녕 그나마 받던 지원도 끊길 수 있다는 말에 신청을 포기했습니다. 또 장애아가족 양육지원서비스를 신청했지만 예산 등이 없다는 이유로 참사가 벌어질 때까지 서비스를 받지 못했습니다.

지훈 군은 청각장애도 있어 인공와우 수술을 받으려고 했지만, 수술을 받아도 눈에 띌 만큼 개선될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이조차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보호의 실체입니다.

지난달 29일 개막한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세계대회에서도 이러한 보호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조직위원회가 실종 예방을 위해 참가 선수 전원에게 위치추적 단말기를 제공한 것입니다.

스페셜올림픽에서 실종 사고가 잦은 만큼 실종 예방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조직위원회 차원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위치추적은 근본적으로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치추적 단말기를 제공하고자 했다면 이에 맞는 사회적 검증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더구나 대다수의 언론은 위치추적 단말기가 내포한 인권침해 요소는 철저히 무시하고 선수 전원에게 위치추적 단말기를 제공함으로써 정보통신 강국의 이미지를 드높였다는 식의 보도로 일관했습니다. 대회 내내 위치추적 단말기를 개목걸이처럼 목에 달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시각각 위치를 노출하며 다녀야 하는 발달장애인당사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거나 침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발달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한국농아인협회 회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 차별 기사를 쓴 중앙일보를 진정하기 앞서서 기자회견을 열고 규탄하는 모습입니다.

장애인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대하지 않는 태도는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인선하는 과정에서도 불거졌습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가 있고 고령으로 청력이 약해져 보청기를 낀 전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그것입니다.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은 지난달 28일 <“질문 간단히 써달라” ‘보청기 총리’, 문제없나>라는 기사에서 ‘국무총리에게 건강한 청력은 필수’, ‘건강 같은 생물학적 조건은 후보자를 검증할 때 가장 기초적인 것’이라면서 전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국무총리직을 수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김 후보자의 정치적인 관점이나 비리 여부 등이 아닌 '장애'라는 이유 때문에 국무총리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야만적인 논리가 2013년 새해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횡횡하고 있습니다. 이에 분노한 한국농아인협회 소속 농아인들은 중앙일보를 3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차별로 진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서 중앙일보만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돌출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닙니다. 트위터 등 온라인상에서 스스로 개혁·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김 후보자가 낀 보청기가 ‘불통’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냐며 입방아를 찧었습니다. 결국 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두 아들 병역 면제 비리 의혹까지 불거지자 자진해서 사퇴했습니다.

흔히 여성 차별을 이야기할 때 자주 ‘유리 천장’을 빗대 말합니다. 형식적으로는 남녀를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가로막는, 투명하고도 견고한 장벽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장애인들은 아직 ‘유리 천장’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노골적인 장애인 차별이 당연시되고, 심지어 자랑거리도 됩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공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버젓이 중앙 일간지에 실립니다.

지훈 군의 49재를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경남 김해에서 청각장애가 있는 한 소녀(17세)가 장애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스스로 떨어져 숨졌습니다. 그날 밤, 소녀가 자신이 살던 23층 아파트의 가장 높은 곳인 옥상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본 하늘에는 어떤 천장이 놓여 있었을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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