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30일에 진행된 고 김주영 활동가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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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30일 고 김주영 활동가 장례식에 참가했던 사람들에게 경찰이 무더기로 출석요구서를 발부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남병준 정책실장은 “이날 행사는 장례식이지 집회가 아니었다”라고 못 박고 “설령 법 적용에 있어서 불법성이 있었다고 해도 장례식까지 문제 삼는 건 아니지 않은가”라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남 정책실장은 “당시 광화문광장에서 복지부로 가는 과정에서 펴고 있는 현수막 때문에 장례식 대오 폭이 넓다며 경찰이 막아섰다”라면서 “경찰이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게 하고 복지부로의 이동을 무리하게 막으면서 충돌이 발생했다. 결국 길 위에서 네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복지부로 행진조차 하지 못했다.”라며 그날의 상황을 설명했다.
남 정책실장은 현재까지 중증장애인과 일반 참가자 등 30여 명의 사람이 조사를 받았고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라면서 이번 경찰 조사가 정치적 의도가 담긴 표적수사라고 강조했다.
남 정책실장은 “현재 경찰은 전장연 회원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하고 있는데 이는 진보 장애인운동에 대한 표적 수사”라며 “대선 직후 경찰 조사 규모가 커졌는데 대선 직후라는 시기상 정치적으로 의도된 수사라는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남 정책실장은 “단일 사건으로 이렇게 대규모로 탄압한 적은 장애인운동에서 이제껏 없었다. 심지어 이번 조사과정에서 4년 전 서울시탈시설투쟁까지 경찰은 조사하고 있다.”라며 “현재 경찰은 당일 장례식날 무작위로 채증한 사진으로 신원만 확인되면 조사를 받으라고 강요하고 있는데 경찰이 무슨 의도로 어디까지 조사할지, 탄압이 어디까지 갈지, 그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관혼상제에 속하는 노제를 집시법 위반으로 걸고 있다”라며 “이번 사건은 박근혜 정부가 법과 원칙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에게 반하는 세력들, 저항하는 세력들을 어떻게 탄압할지 본때를 보이는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이는 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탄압하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라면서 “현재 정부는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을 비롯한 수많은 사건을 샅샅이 뒤져서 벌금과 기소로 억누르려고 한다”라고 꼬집었다.
장애해방열사 단 박승하 활동가는 “당일 만장만 들고 있었는데 일반도로교통방해죄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박 활동가는 “이날 장례식은 집회가 아니었으며 한 동지가 억울하게 죽은 것에 대한 항의였는데 경찰이 과도한 탄압식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게 아닌가”라며 “고 김주영 활동가의 죽음에 항의하러 복지부로 가는 길을 경찰에서 무턱대고 막아놓고는 조사과정에서 경찰은 ‘점거’라는 표현까지 썼다”라고 비판했다.
당일 장례위원으로 참석했다가 경찰의 조사를 받은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는 “고 김주영 활동가의 죽음에 대해 정부가 잘못을 반성하고 추모하지는 못할망정 처벌하려는 것 자체가 웃긴 것”이라면서 “경찰은 ‘점거’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추모식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고 김주영 활동가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부산 판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상래 대외협력국장은 “국가의 차별적이고 잘못된 정책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국가는 이에 대해 한마디의 사과와 책임도 지지 않았다”라며 “억울하게 죽은 고 김주영 동지의 마지막 가는 길, 자유롭게 가라고 마련한 장례식이었는데 국가는 이것마저 허용하지 않고 경찰들은 불법이라며 당일 길을 막고 현재 소환장까지 발부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직 모르겠다.”라며 분노를 표했다.
![]() ▲화재가 발생한 고 김주영 활동가의
집 |
한편, 장례식 참가자들에 대한 경찰 조사 과정상에서 인권 침해적 요소도 드러난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명애 상임대표는 “현재 대구 수성구에 사는데 종로경찰서에서 수성구 경찰서로 전화해
내 번호를 모른다며 아파트에 내가 살고 있는지 관리실에 연락해보라고 했다”라며 “그래서 관리실에서 내게 연락해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며
연락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박 상임대표는 “경찰서에서 내 전화번호를 알려면 충분히 알 수 있을 텐데 몰라서 그랬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라며 “공개적으로 아파트에 창피를 주려는 건가 해서 굉장히 짜증 났다.”라고 전했다.
또한 박 상임대표는 이번 건에 대한 경찰 조사의 객관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박 상임대표는 “이전에는 조사하는 형사가 따로 있었는데 이번에는 현장에서 나를 진압하던 사람이 직접 조사했다”라면서 “조사받는 동안 내가 무슨 말을 하면 해당 경찰이 반박하며 ‘내가 그때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이야기하고, 내게 ‘벌금 나올 거다, 많이 봐줬다’는 등의 위협이 느껴지는 협박성 발언들도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박 상임대표는 “진술서를 쓰고 난 후 진술서 끝에 선처를 바란다는 말을 쓸 기회조차 경찰은 주지 않았다”라며 “내가 왜 그 기회를 주지 않느냐고 물으니 경찰이 ‘그런 거 필요 없다, 써봤자 도움 안 된다’라며 기회조차 아예 주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박 상임대표는 “경찰은 우리가 그날 무엇 때문에 그러했는지에 대한 진정성을 너무 훼손시키고 있다”라며 “우리는 주영 씨의 억울한 죽음을 이야기하러 왔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무더기 소환 조사에 대해 남병준 정책실장은 “지난해 벌금을 내지 못해 수배가 떨어진 중증장애인들이 자진 구속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는데 앞으로 벌금이든 재판이든 탄압이 온다면 더 극한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라며 “경찰이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탄압한다면 우리는 이 또한 저항하며 무자비한 탄압을 사회에 알릴 것”이라고 전했다.
고 김주영 활동가는 지난해 10월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세 시간 뒤인 새벽 2시경 행당동 자택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질식해 숨졌다.
당시 고인이 직접 119에 신고해 구조대가 1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으나, 비장애인이면 불과 서너 걸음에 이르는 거리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그 자리에서 질식사한 채 발견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