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68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협의체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가 지난 15일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영희 소장을 3년 임기의 새 회장으로 뽑았다.
그동안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한자협은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비마이너는 양영희 회장을 만나 앞으로 한자협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 ▲지난 15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총회에서 3년 임기의 회장으로 선출된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영희
소장. |
비마이너(아래 비) : 한자협 회장으로 선출된 것을 축하한다. 특히 올해는 한자협 창립 10주년으로 새로운 10년의 주춧돌을 놓아야 하는 회장의 책임이 막중하리라 생각한다.
양 회장님은 자립생활운동 초기 때부터 함께하셨고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중증장애인당사자이자 장애인활동가로서 현재 우리나라의 자립생활은 어느 수준까지 와 있다고 보는가?
양영희 회장(아래 양) : 제가 이번에 한자협 회장으로 선출되기는 했으나 능력이 특출하거나 똑똑한 사람은 아니어서 개인적으로는 부담이 크다. 다만 10년이 넘게 꾸준히 자립생활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회장이라는 직책까지 맡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 중증장애인의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전에는 길거리에서 중증장애인을 보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당시 중증장애인들은 시설이나 집에 있는 것이 선택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길거리에서 중증장애인을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자립생활이 발전했다는 뜻이다. 정부의 정책도 기존의 재활 중심 정책에서 자립생활 중심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특히 전에는 중증장애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중증장애인도 사회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지난 10년간 중증장애인이 사회적 목소리를 낸 결과로 이동권과 활동보조 등에서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자립생활 전반에서 보자면 이동권과 활동보조뿐만 아니라 소득, 주거, 교육 분야 등에서도 중증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이 2백일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아직까지도 자립생활 기반 조성에는 숱한 과제들이 남아 있다.
비 : 한자협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연대하면서 자립생활운동을 진보운동의 관점에서 함께 견인해왔다. 자립생활운동이 진보운동의 관점에서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양 : 자립생활운동을 하는 이유는 장애대중의 변화를 위한 것인데 그 중심축에 전장연이 있다. 전장연의 활동으로 중증장애인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삶이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협이 전장연과 함께 그러한 대중운동의 중심에 있게 된 것이다.
제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전장연 이전에 장애인운동은 사안별 투쟁이었다고 생각한다. 흔히 장애인운동은 심신장애자복지법 개정과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의 양대 법안 투쟁 등이 있었던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당시 투쟁은 사안에 한정되는 한계가 있었다. 사안이 끝나면 운동도 동력을 잃었다.
그러나 전장연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일컬어지던 중증장애인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이동권, 장애인차별금지법, 활동보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안을 가지고 투쟁을 지속적으로 이끌고 있다. 아울러 전장연은 노동, 빈곤 등 다른 대중투쟁과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면서 장애인운동의 영역을 확장했다.
전장연과 한자협의 차이가 있다면 한자협은 자립생활센터를 중심으로 그러한 대중운동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자립생활센터와 대중운동의 관계에 대해 말할 때 자립생활센터 안정화를 먼저 이뤄야 한다는 견해도 있긴 하지만, 한자협은 대중운동이 먼저라고 판단했기에 전장연과의 연대를 통해 장애대중의 변화를 위한 투쟁에 함께한 것이다.
비 : 오는 3월 8일이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이 200일을 맞는다. 농성에 한자협 활동가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장애등급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 ▲지난 1월 10일 복지부 앞에서 열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양영희
회장. |
손을 쓰지 못하느냐, 걷지 못하느냐, 소리를 못 듣느냐, 지적 능력이 어느 정도이냐, 앞을 보지 못하느냐 등으로만 장애를 판단할 수 없다. 청각장애인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수화를 한다면 실제로는 장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걷지 못하는 지체장애인도 전동휠체어를 주고 활동보조인이 보조를 한다면 그만큼 장애를 느끼지 못한다. 장애인이 계단과 엘리베이터 앞에서 느끼는 장애는 다르다.
그런데 현행 장애등급제는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켜 결국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장애등급제 아래서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가 얼마나 중한가를 증명해야 한다. 국가는 사회적 환경이나 주변 상황을 고려하거나 이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의학적으로 장애가 중하다고 판단된 사람들을 선별해 이들에게만 떡고물을 나눠 줄 뿐이다. 이는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시대적 흐름에도 맞지 않다.
현재 박근혜 정부에서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투쟁하느냐에 따라 단계적 개선으로 그칠지, 아니면 폐지까지 나아갈지가 결정이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장애등급제 폐지는 우리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다.
비 : 한자협은 정관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가로막는 장벽과 차별을 철폐하고,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확대와 장애인의 권리 옹호 및 권익 신장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간 한자협의 활동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양 : 아무래도 한자협이 대중운동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자립생활 정책을 만들거나 자립생활센터의 협의체로서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는 데에는 다소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투쟁 등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은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제 임기 중에는 자립생활이 장애인의 권리로 보장받는 활동과 더불어 지역의 열악한 환경을 공유하면서 그러한 환경을 바꿔 나가는 활동을 하고 싶다. 그동안 한자협 활동이 대정부투쟁에 치중해 서울과 중앙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이제는 지역 기반을 조성하는 활동을 통해 지역을 아우르는 조직으로 발전해야 할 시기가 됐다.
비 : 자립생활센터들이 생존을 위해 활동지원서비스 중개기관의 역할에 중점을 두어 자립생활센터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 것으로 안다. 앞으로 자립생활센터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양 : 현재 활동지원서비스 바우처 중계수수료가 자립생활센터의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하는데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현실이다.
그런데 자립생활센터 입장에서는 활동지원서비스는 지역 장애인을 만날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따라서 활동지원서비스를 통해 만난 장애인들을 동료상담 등 자립생활센터의 다양한 활동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더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회참여 경험이 적은 관계로 아직까지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는 장애인활동가들의 업무 습득 능력이나 수행 능력이 비장애인활동가보다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자립생활센터에서는 교육사업 등으로 장애인활동가들의 역량을 강화해 이들이 지역 장애인들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해나갈 필요가 있다.
결국 자립생활센터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이 더 확대되는 것은 물론 센터 자체의 역량도 강화되어야 한다.
비 :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이 창립을 앞두고 있는 등 앞으로 활동보조인 노동권 보장 문제가 사회적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활동보조인 노동권 보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보는가?
양 : 누구나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하며 활동보조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단순하지는 않다.
현장에서는 활동보조인의 노동조건과 이용자의 자기선택권이 부딪치는 일이 많다. 그리고 활동보조인을 고용한 것은 중개기관이지만, 실제로 노동조건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정부이다. 이용자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적합한 활동보조인을 수급 받기 어려워 권리를 무시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게 활동보조인, 이용자, 중개기관의 이해관계가 다 다르므로 어느 한 쪽이 자신의 입장만 고집스럽게 내세운다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소통과 논의를 통해 실제로 활동보조인의 노동조건을 바꿀 수 있는 정부를 대상으로 한 투쟁으로 만들어가려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자협은 활동보조인, 이용자, 중개기관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고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역할을 잘 해나가도록 하겠다. 물론 조율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과정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 : 마지막으로 후배 장애인활동가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은?
양 : 전에 장애인의 사회참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자신만의 신앙활동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일반적으로 단순히 교회 다니는 것은 사회참여로 보지 않고 전도사, 목사 정도는 되어야 사회참여라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럴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바로 사회참여가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운동이 아니라 단순한 센터활동, 혹은 개인적인 공부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지난 2010년 우동민 열사 등 동료 장애인활동가들과 함께 '장애인활동보조살리기 신문고를 울려라' 행사에
참여 중인 양영희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