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식당 이용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 문제는 난항
관공서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편의시설 등을 바꿔 모두가 편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장애인인권단체들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변화의 움직임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지난 5월 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인권단체들은 서울 영등포구청 근교로 사무실을 옮겼다. 이들 단체 중증장애인 회원들은 주변 식당보다 상대적으로 값싼 영등포구청 내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구청으로 향했다. 주변 식당의 밥값도 비싼 편이었고 경사로를 갖춘 곳도 드물어 일반 식당을 이용하기가 만만치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구청 식당 앞에도 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구청 식당은 지하 1층에 있었고, 엘리베이터는 지상 1층까지만 운행되고 있었다.
![]() ▲영등포구청 본관 엘리베이터는 지상 1층에서 5층까지만 설치돼, 계단을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은 지하 1층 구청 식당에 접근할 수가 없다. 이음 이규식 회원이 구청 식당으로 가는 계단 앞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
![]() ▲장애인에게는 그림의 떡. 영등포구청 지하 1층에 있는 식당. |
이후 장애인생활시설에서 거주하다가 지역사회로 나와 자립생활을 하는 중증장애인들의 모임 탈시설네트워크 '이음' 회원들은 수차례 영등포구청 사회복지과를 찾아가 구청 식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등 구청 및 인근 지역 장애인편의시설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이 단체에서 활동하는 중증장애인 회원들은 영등포의 사무실을 자주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등포구청 사회복지과에서는 엘리베이터 설치 문제는 사회복지과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대신 장애인인권단체가 입주한 건물 인근 식당 세 곳에 경사로를 설치했다. 이에 대해 이음 서성남 회원은 "우리가 구청 식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하자, 구청에서 식사문제에 초점을 맞춰 식당에 경사로를 설치해주고 있는데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생활할 수 있도록 은행, 약국 등에도 경사로를 설치해주면 좋겠다"라고 지적했다.
![]() ▲이음 회원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구청 인근 식당에 경사로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
![]() ▲하지만 여전히 영등포구청 인근 대부분의 건물은 턱으로 인해 휠체어 장애인이 들어갈 수 없다. |
9일 늦은 4시에는 영등포구청 사회복지과에서 이음 회원들과 사회복지과 관계자, 행정지원과 관계자와의 면담이 다시 이뤄졌다. 이날 면담에는 장추련 박옥순 사무국장도 함께했다.
![]() ▲9일 늦은 4시 영등포구청 사회복지과 사무실에서 이음 회원들과 구청 관계자가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
이날 면담에서 구청 시설 관리를 맡고 있는 행정지원과 관계자는 이음 회원들의 엘리베이터 설치 요구에 대해 "지하 1층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면 건물 기초까지 뜯어내야 하기에 구조안전진단이 필요하다"라면서 "구조안전진단에는 7백만 원에서 1천만 원에 이르는 예산이 수반돼 예산확보 문제도 있어 단기간에 설치는 어렵다"라고 밝혔다.
장추련 박옥순 사무국장은 "1990년대에 우리가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고 요구했을 때 관계자들은 구조안전진단을 이야기하며 엘리베이터 설치에 난색을 표했고 엘리베이터 대신 리프트를 설치했다가 결국 장애인들이 사고로 죽어나가자 그제야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라면서 "영등포구청에서 장애인들의 요구를 '떼를 쓴다'라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음 이규식 회원이 "단기적으로 엘리베이터 설치가 어렵다면 식당을 지상으로 이전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묻자,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식당을 지상으로 옮기면 대신 사무실이 지하로 가야 하는데 역시 사무실에 장애인분들이 접근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라고 답했다.
이후 이음은 구청에 엘리베이터 설치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서를 이른 시일 안에 보내달라고 요구했고, 구청 측도 이를 받아들였다. 장추련 박옥순 사무국장은 "의견서를 받으면 우리가 직접 엘리베이터 설치 가능 여부를 확인해보고 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 ▲영등포구청 보건소 화장실. 마주보고 있는 남녀화장실 입구 사이에 칸막이가 설치돼 휠체어 접근이 어렵다. |
다음으로, 중증장애인 회원들은 영등포구청 보건소 화장실을 이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보건소 화장실은 남녀화장실이 마주 보고 있는 구조라서 입구 쪽 복도에 칸막이를 설치했는데 이 때문에 폭이 좁아 휠체어가 화장실 안까지 들어가기 어려웠다. 이음 회원들은 "칸막이 대신 커튼 또는 블라인드로 바꿔 설치해달라"라고 요구했고 구청 관계자들은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답했다.
이어 이음 회원들은 "본관 화장실의 경우 7월 8일 처음 이용했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청소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누가 안에서 잠금 버튼을 누르고 나와서 그렇다'라고만 답하고 그냥 가버렸으며, 이에 활동보조인이 억지로 문을 반쯤 열어 열림버튼을 누르고서야 이용할 수 있었다"라면서 "또한 장애인세면대는 손을 대면 자동으로 물이 나와야 하는데 작동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행정지원과 관계자는 "전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는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라면서 "확인해 조치하고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 ▲구청 옆에 있는 우리은행 경사로. 도로를 침범해 경사로를 설치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가파르게 설치됐다. 장애인 혼자서는 이용이 불가능하며 도움을 받아 이용한다고 해도 사고 위험성이 높다. |
![]() ▲구청 쪽 우리은행 입구. 이음 회원들은 애당초 이곳에 경사로를 설치했다면 도로를 침범하지 않아 안전한 경사로 설치가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
마지막으로 이음 회원들은 구청 인근 건물의 편의시설 문제를 지적했다. 이음 회원들은 "인근 식당과 건물에 경사로가 설치된 곳이 거의 없어서 들어갈 수가 없으며 구청 측은 '경사로를 설치하려고 해도 도로를 침범하게 되는 곳은 설치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데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촉구하고 "특히 구청 바로 옆에 있는 우리은행의 경우 도로를 침범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경사로를 지나치게 가파르게 만들어 실제로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없는 '구색 맞춤'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경사로를 최대한 많이 설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면서 "우리은행 경사로 문제는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날 면담을 마치며 장추련 박옥순 사무국장은 "장애인단체 회원들은 주변에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거의 없어 사무실에 밥통 하나 갖다놓고 김치 등 몇 가지 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실정"이라면서 "구청이 장애인편의시설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함께 캠페인을 하는 등 서로 힘을 합해 지역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며 이는 구청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 ▲식당이 있는 영등포구청 본관 건물. |
구청 식당이 있는 영등포구청 본관 건물은 지은 지 30년이 넘은 건물로 엘리베이터는 1999년에 설치됐다. 당시 지하 1층까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영등포구청은 지난 6월 공문을 통해서는 '지하 1층까지 설치할 경우에는 지하 2층까지 굴착을 하여야 하는 관계로 건축물 구조 안전상 문제 및 대피시설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