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지영 활동가의 49재가 3일 이른 11시 30분 서울시립승화원 추모의 집에서 열렸다. |
지난 4월 16일 패혈증으로 숨진 고(故) 지영 활동가(지체장애 1급, 44세)의 49재가 3일 이른 11시 30분 서울시립승화원 추모의 집에서 열렸다.
이날 49재에는 고인의 남편인 장애인문화공간 박정혁 활동가 등 유족과 동료활동가 등 30여 명이 함께했다.
장애해방열사 단 박김영희 대표는 “오늘로 지영 씨가 세상을 떠난 지 49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지영 씨가 없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고 어느 순간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다”라면서 “다만 전에는 지영 씨의 몸 상태를 걱정했다면, 이제는 정혁 씨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걱정한다는 게 다르다”라고 밝혔다.
박김 대표는 “지영 씨는 집회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뒤에서 사람들을 챙겨주다가 자신이 마이크를 잡게 되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당당하게 했다”라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그녀가, 그처럼 당당하던 그녀가 떠난 텅 빈 자리를 우리는 아직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다”라고 추모했다.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선철규 활동가는 “어제 정혁이 형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지영 누나가 없는 정혁 형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정혁 형이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 마음도 놓였다”라면서 “서울 올라오는 길이 쉽지는 않지만 앞으로 지영 누나를 자주 찾아오겠다”라고 밝혔다.
![]() ▲이날 49재에 참석한 유족과 동료활동가들. |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배미영 활동가는 “지영 언니와 함께 걷던 길을 걸을 때마다 아직도 생각이 많이 난다”라면서 “어제 지영 언니도 잘 아시던 분(고 권문석 알바연대 대변인)의 장례식장에 갔다 왔는데 앞으로 젊은 나이에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박정혁 씨는 “그녀는 자기 걱정보다는 항상 남을 먼저 걱정해주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걱정해주는 이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라면서 “언제나 당당했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녀를 만나러 와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고 지영 활동가는 1968년 7월 13일 속초에서 태어나 20세가 되던 1987년까지 보육원에서 생활했다. 20세 이후에는 경북 구미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다 29세 되던 해 감기바이러스로 경추장애 진단을 받았다.
2004년까지 철원 은혜요양원에서 생활하다가 시설에서 나와 서울 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체험홈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탈시설 후 고인은 은혜요양원에서 겪었던 온갖 인권침해와 비리를 폭로하며 성람재단 비리 척결 투쟁에 힘을 실었다.
2005년에는 은혜요양원에서 함께 탈시설한 박정혁 활동가와 결혼했으며, 2007년에는 서울 성북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을 창립했다. 고인은 너른마당 운영위원장이자 교사, 탈시설장애인 멘토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 사회에서 중증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돕고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통해 장애인문화운동도 함께했다.
![]() ▲ 49재에 앞서 고 지영 홛동가가 안치된 추모의 집을 찾아 인사를 하는 동료활동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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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 발언에 앞서 분향을 하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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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 발언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 |
![]() ▲ 고 지영 활동가의 영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