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활동보조에 관한 책 한 권이 나왔다. 책 제목은 『활보 활보』(북드라망). 저자인 정경미 씨는 2011년 10월 1일 활동보조인으로 일을 처음 시작했다. 그때 처음 ‘제이(책에서의 이름)’를 만났고,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는 습관'이 있던 정 씨는 활보 일이 끝나는 밤이면 습관처럼 하루 있었던 일들을 노트에 끼적였다. “글로 풀어주지 않으면 몸이 덜거덕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레 ‘활보(장애인활동보조의 준말) 일지’를 쓰게 되었고 출판사 블로그에 연재하게 되면서 책으로까지 출판하게 됐다.
『활보 활보』북 콘서트가 지난 12일 늦은 7시 성북동 카페 별꼴에서 열렸다. 이날 북 콘서트에는 저자 정경미 씨와 책에 제이와 H(에이치)로 등장하는 그녀의 이용자들도 함께했다.
이제까지 정 씨가 활동보조인으로 일하며 만난 중증장애인은 총 세 명이다. 처음 만난 제이, 그리고 S(에스)와 H. 현재 정 씨는 오전엔 H, 오후엔 제이의 활동보조를 하고 있다. 정 씨는 활동보조 일을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신체와 만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그게 정 씨에겐 “매일 죽을 것 같은 일”이었지만 “글을 쓰면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
활동보조 일을 하면서 ‘낯선 신체의 충격’이 가장 컸던 이는 S다. S는 발을 손으로 쓰는 친구였다. “발에도 표정이 있다”는 것을 S를 통해 처음 깨달았다. 당시 S의 오전 활동보조를 맡았던 정 씨는 아침에 S의 용변, 식사, 방 청소 등 하루 생활을 준비하는 일을 했다. S의 활동보조 일은 8개월가량 이어졌다.
“처음 만났는데 '오줌!' 하는 거예요. 처음 사람 만날 때 이렇게 만날 수도 있구나,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생리적 차원에서 만나는 사람이니 굉장히 가깝게 만나는 거잖아요. 용건만 간단히 말하는 사람이어서 ‘컵 갖다 줘’하며 명령어처럼 이야길 했어요. 그 명령어를 계속 듣는 게 힘들었고 발을 손으로 쓰는 친구라 ‘발가락질’을 하는데… (웃음) 그게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발로 자기 가슴을 치고. 이건 신체가 다르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죠. 그런데 머리가 생각하기 전에 감정이 확 올라오는 거예요.
제가 남의 명령을 정말 듣기 싫어하는 신체라는 걸 그때 절실히 느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못 견뎠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신체를 대상화해서 바라보진 않아요. S의 몸이 어떻고 몸짓이 어떻다는 기억이 제겐 없어요. 활동보조 일을 할 땐 내가 그 몸이 되니깐. 혼자 똥 눌 때와 같이 눌 때의 느낌은 다르지만.”
활동보조 일이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거”였다.
“예를 들어 밥 먹는 활동을 같이 하는 거예요. 이용자와 같이 먹는 아침은 나 혼자 먹는 밥과 다른 활동이에요. 그런 활동을 하는 거죠. 그랬을 때, 내 신체가 바뀌어요. H와 같이 활동하면, 내 신체와 다른 신체가 연결되면서 정말 다른 신체가 되는 거죠. 나에겐 그게 새로운 신체의 체험이었어요.”
그렇다면 이용자들에게 활동보조란 무엇일까.
제이 씨는 답한다.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같이 하면서 보조하는 거요.”
또 다른 이용자인 H 씨는 “시설에선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해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H 씨는 40년 넘게 시설에서 살다가 탈시설한 지 2년 정도 됐다. 정 씨의 표현을 빌자면 그녀는 '신생아'다.
하루에 오전, 오후로 나눠 두 명의 활동보조 일을 하는 정 씨는 두 이용자의 ‘우편배달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는 정 씨가 생각하는 활동보조의 역할과도 닿아있다. “활동보조를 통해 이용자들이 제일 필요한 게 뭘까, 지금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 듣고 나도 이야기하고 그런 대상이 되는 게 활보 아닐까. 끊임없이 지껄이는 활보가 되자. 그래서 오전에 가면 오후에 있었던 이야기를, 오후에 가면 오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요. 두 사람 반응도 달라요. 제이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에스는 ‘갸는 철 좀 들어야겠다’”
활동보조 일을 하고 있지만 반대로 정 씨가 이들로부터 활동을 보조받는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제가 사람들 보고 마주치는 걸 두려워해요. 그런데 앞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막아주니 사실 그게 너무 편안하죠. (웃음)”
정 씨는 활동보조 일을 하며 짬짬이 글도 쓰고 책도 읽는다. 혼자 있을 때는 자는 것밖에 하지 않으면서, 같이 있을 때 도리어 바빠진다.
정 씨에게 있어 활동보조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귀 알아듣는 능력’이다. 초심을 지속하지 않으면 매일 듣는 이용자의 말들이 안 들리는 때가 있다. 뇌병변장애로 언어장애가 있는 이용자의 말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활동보조의 중요한 일 중 하나다.
현재 두 사람의 활동보조 일을 하지만 정 씨의 수입은 넉넉지가 않다. 정 씨는 장애인만큼이나 장애인 활동보조 일도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말한다.
“굉장히 고립된 상황에서 일해요. 이용자 눈치도 봐야 하고, 또 활동하는 상황이 동료가 없는 상황이잖아요. 활동보조인들끼리 연대하기보다 질투와 반목이 심해요. 그러니 활동보조인끼리 이야기하는 경우도 없고. 이용자가 비교한다는 거죠. 이 활동보조인은 이렇게 해주는데 왜 안 해주느냐 하는 식으로.
이 책 나오면 활동보조인들이 제일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무도 안 읽고 아무도 안 좋아하더라고요. 일하는데 그거 쓸 시간이 어딨어, 일 열심히 안 했다는 지탄을 받아요.”
그럼에도 장애인들은 활동보조인이 있어 좋다. H 씨는 같이 웃고 떠들 수 있어 좋다 하고, 제이 씨는 나들이하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 그러한 활동할 수 있어 좋다며 웃는다.
사실, 정 씨도 H 씨 덕분에 요즘 ‘목욕테라피’를 한다.
“H네 집(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 와서 나는 깜짝 놀랐다. 이 집에는 더운물이 펑펑 나오는 것이다! 따뜻한 물로 H는 이틀에 한 번씩 샤워를 한다. 보일러도 틀지 않는 방에서 온수 없이 겨울을 나고 있는 나로서는 실로 믿기지 않는 일이다. 나는 가난한 가정부가 주인집 장 보며 쾌감을 느끼듯 더운물을 맘껏 쓰며 H를 목욕시켜 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목욕을 할 때 나는 H의 몸에 따뜻한 물을 아낌없이, 정말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내가 물세 내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언니, 펑펑 쓰자구! 나는 갑자기 H를 ‘언니’라고 부른다. 그리고 쏟아지는 따뜻한 물의 축복 속에서 우리가 마치 혼연일체의 하나가 된 기쁨으로 들떠서 타월에 비누 거품을 부글부글 부풀리며 마구 떠든다. 언니, 이건 목욕이 아냐. 치료야 물리치료. 맞지? 목욕테라피!” - 186쪽, 『활보 활보』
이날 북 콘서트는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들로 활발하게 채워졌으며 두 시간가량 진행되었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관련기사] |
인권/복지
2013.06.17 12:32
활동보조, “처음 만나는 신체와 연결되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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