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2013.07.15 15:41

오늘도, 내일도 반찬은 김치뿐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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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가 가난한 사람들의 ‘차별받은 식탁’을 찾아갑니다. 수급자 가구의 식탁을 찾아 최저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또한 중증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맛집을 찾아 함께 밥을 먹으며 모두에게 공평한 식탁은 무엇인지 묻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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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현 씨가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을 김치볶음밥을 준비하고 있다.

 

김치를 철컥철컥 가위로 자른다. 참치 캔도 하나 딴다. 기름 뺀 참치 한 캔을 프라이팬에 털어 넣고 달달 볶는다. 전기밥솥에 안쳐놓은 뜨끈한 밥을 그 위에 한 주격, 두 주걱 퍼담는다.
 
김치볶음밥이다. 반찬은 깍두기, 청주에 사는 친언니가 보내준 김치, 마른 오징어채 정도다.

 

아들, 딸과 함께 사는 김세현 씨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주로 해먹는 식단이다. 아이들은 모두 학교 가고 집에 혼자 있으니 요란스레 챙겨 먹는 것도 귀찮다. 먹다 남은 김치들 달달 볶아 아침 겸 점심으로 대충 챙겨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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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현 씨
김 씨는 청각장애 1급의 농인이다. 그의 아들(17세)도 농인이다. 딸(16세)은 뇌병변장애에 청력장애가 있다. 딸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애화학교(청각장애 특수학교)에 다니면서 언어치료를 하고 혀 수술을 받아 완벽하진 않지만 이제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김 씨는 10년 전, 이혼하면서 수급자가 됐다. 남편도 농인이었다. 이혼 후, 남편은 양육비를 전혀 주지 않았다. 생계비가 끊기니 결국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게 됐다. 아이를 자신이 키우게 된 것은 다행이었으나, 두 명의 중증장애아동을 마땅한 직장 없이 홀로 키운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수급비가 10년 전이나 변함이 없어요.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수급비도 오르고 살림이 나아져야 하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학령기 아동이면 학교에 가야 하잖아요. 아동의 욕구도 있고. 그런데 수급비에는 그런 게 전혀 반영되지 않아요. 그리고 농인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가 없으니, 희망이 없어요.”

 

김 씨가 체감하는 수급비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2013년 현재 3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는 126만315원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지급받는 수급비는 매년 정해지는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한다. 김 씨가 현금으로 직접 받는 수급비는 103만1862원이다. 김 씨는 수급비와 함께 장애인연금 15만 4천 원과 장애아동수당 각 10만 원씩 20만 원을 따로 받아 한 달에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은 135만 원가량 된다. 세 명이 살기에는 빠듯한 살림이다.

 

이 중 한 달 식비로 50만 원이 나간다. 그리고 월세 20만 원, 집 관리비가 15만 원~20만 원 정도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여름·겨울방학 때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관리비가 더 많이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김 씨는 방학이 별로 달갑지 않다.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돈만 85만 원~90만 원이니 한 달 수급비에서 남는 돈은 겨우 10만 원가량이다. 이 돈으로 필요한 각종 생활 비품을 사야 한다.

 

“딸 병원비도 나가고… 돈이 다 바닥날 때도 있고, 조금 남을 때도 있어요. 저축은 돈이 조금씩 남을 때 해요.”

 

한 달, 한 달 살아가는 게 급하니 미래를 위한 저축은 늘 뒷순위로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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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가 십자수로 만든 가족사진 액자. 보행이 불편한 딸을 위해 동 주민센터 지원을 받아 화장실을 수리했다.

 

16, 17세의 사춘기 아이들을 위해 맛난 것을 넉넉히 해주지 못하는 것도 속상하다. 한창 클 나이라 먹고 싶은 게 많을 텐데, 늘 부족하다.

 

“반찬은 많지 않아요. 많은 음식은 못하지만 아이들 입맛에 맞는 음식들로 주로 해요. 아는 사람들이 반찬 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학교 가고나면 식사는 거의 저 혼자 먹는 편인데, 대부분 김치 하나로 먹죠.”

 

딸아이는 왜 항상 김치만 먹느냐 불평한다. 김 씨 자신은 김치찌개를 가장 좋아하지만 아이들은 잘 먹지 않는단다. 딸은 인도 요리를 좋아한다. 특히 인도 카레에 난(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구워서 만든 인도 전통 빵)을 곁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김 씨가 집에서 직접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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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현 씨가 ‘사랑’을 뜻하는 수화 손동작을 본떠 직접 만든 연꽃 작품.
“돈이 부족하니 반찬을 잘 안 사게 돼요. 그러니 당연히 종류를 많이 갖출 수 없고.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삼천 원어치 정도 과일 사고. 아들이 과일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좋아하는 건 하나에 오천 원짜리 비싼 서양과일, 그런 걸 좋아해서…”

 

장은 일주일이나 이주에 한 번 정도 집 근처 수유시장으로 보러 간다. 버스로 한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보통 걸어서 간다. 주로 파, 과일, 채소 정도 사온다. 김 씨는 이곳이 마트보다 양도 많고 싸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외식은 어렵다. 3개월이나 6개월에 한 번 정도 수급비 받는 날에 아이들 먹고 싶은 걸 먹으러 간다. 식당에 가면 메뉴판을 가리켜 손짓하거나 직접 종이에 글씨를 써서 주문한다. 사실, 돈도 돈이지만 소통이 어렵다는 것도 외식을 꺼리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먹는 것뿐만 아니다. 입는 것부터 해서 요즘 아이들이면 당연히 가지고 다니는 휴대전화까지, 아쉬운 걸 꼽자면 끝도 없다. 휴대전화는 할부로 샀지만 매달 갚는 게 어려우니 한숨만 나온다.

 

부모로서는 남들 못지않게 자식을 키우고 싶다. 아이들도 남들처럼 이것저것 갖고 싶고 먹고 싶어한다. 그러나 부모의 바람도, 아이의 욕망도 이 현실은 단 한 번도 배불리 채워주지 않는다. ‘절약’이라는 단어는 넉넉지 못한 이들에게는 굶주린 배를 더욱 옥죄는 단어다.

 

“옷은 ‘아름다운 가게’ 가면 싸게 파니깐 거기서 사 입어요. 5월 5일 같은 특별한 날 되어야 정식으로 옷 한 번 사 입히고.”

 

일하고 싶지만 아이들 때문에 고정적인 일을 하기는 힘들다. 특히 딸이 몇 해 전에 수술해서 요즘은 걷는 연습 중이라 김 씨가 곁에 있어야 한다. 눈·비라도 오는 날에는 수술한 곳이 더 아프다고 하니 엄마의 손이 늘 필요하다. 또한 4대 보험에 가입되는 일자리라도 얻으면 수급에서 자동 탈락하니 현실은 더 엄혹하다. 취직할 것인가, 수급비를 받을 것인가. 모두 선택은 불가능하다.

 

아침 겸 점심으로 한 김치볶음밥이 넉넉히 남았다. 김 씨는 "오늘 저녁도 김치볶음밥을 먹어야겠네요"라며 웃었다.

 

* 수화통역 :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철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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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현 씨네 집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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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학교 보내고 김세현 씨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주로 해먹는 식단. 김치볶음밥과 반찬으로는 깍두기, 청주에 사는 친언니가 보내준 김치, 마른 오징어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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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현 씨는 100만 원가량의 수급비와 장애인연금 15만 4천 원, 장애아동수당 각 10만 원씩 20만 원 등으로 한 달에 총 135만 4천 원가량을 받고 있다. 학령기 장애아동 두 명과 살아가기엔 빠듯한 살림이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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