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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가 가난한 사람들의 ‘차별받은 식탁’을 찾아갑니다. 수급자 가구의 식탁을 찾아 최저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또한 중증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맛집을 찾아 함께 밥을 먹으며 모두에게 공평한 식탁은 무엇인지 묻고자 합니다.  

 

장애인등의 편의증진법상 300제곱미터가 넘는 음식점은 주 출입구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또한 1000제곱미터가 넘는 식당은 복도, 계단 또는 승강기, 화장실 대변기 등에 편의시설을 꼭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먹고 외식하지 않는 한 300제곱미터(90여평)이 넘는 큰 음식점보다 테이블 서너 개 있는 작은 식당이 한 끼를 해결하기에는 더 안성맞춤이다. 그렇지만 300제곱미터 미만 규모의 음식점은 아직 법적인 편의시설 의무 조항이 없다. 장애인은 반강제적으로 큰 식당에 가서 외식을 '당해야' 한다.

이번에는 빛고을 광주광역시를 찾았다. 서울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세 시간 반을 달려 광주 송정역에 도착했다. 김영애 씨(뇌병변장애)와 김종호 씨(뇌병변장애), 도연 씨(시각장애)를 만나 광주 수완지구에 있는 나정상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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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 씨와 김종호 씨, 도연 씨를 만나 광주 수완지구에 있는 나정상회로 향했다.

 

“돼지갈비가 먹고 싶어.”

영애 씨에게 취재 요청할 때 원하는 음식이 있느냐고 묻자 답한 음식이다. 그리고 “그런데 외식을 해 봤어야 어디 갈만한 데가 있는지 알지. 좀 알아봐 줘.”라고 덧붙였다.

영애 씨가 준비 중인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광주지부 사무실에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을만한 식당을 수소문했지만 찾기가 어려웠다. 같은 공간을 쓰고 있는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의 한 활동가도 “이 근처에 맛있는 곳은 몇 군데 있지만 휠체어는 못 들어갈 텐데….”라며 식당을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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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상회의 상차림.
 
도연 씨의 아는 후배에게 물어물어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찾았다. 그러나 걸어서 갈 거리는 아니고 장애인콜택시를 불러 이동해야만 했다. 그렇게 광주에서 꽤 유명하다는 돼지갈비 전문점 나정상회에 도착했다. 대형종합상가 2층에 있는 나정상회는 경사로, 엘리베이터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자리를 잡고 돼지갈비를 주문하자 10여 분 만에 갈비가 구워져 나왔다. 시각장애가 있는 도연 씨는 “구워져 나오니 좋네요. 보통 구워야 하는 고깃집에서는 주문하면 불판에 올려 주기까지만 하잖아요. 그러면 언제 뒤집어야 하는지 보이질 않으니까 혼자서는 갈 수 없죠.”라고 평했다.

이에 종호 씨도 “나는 언제 뒤집어야 하는 줄은 알지만 뒤집을 수가 없어.”라며 도연 씨의 말에 공감했다.

간장 양념이 진하게 밴 갈비를 노릇하게 구워낸 뒤 깨를 뿌렸다. 밑반찬으로는 돼지껍데기 깻잎무침, 물김치, 겉절이 등이 깔끔하게 나왔다.

도연 씨는 갈비 한 쪽을 입에 넣으며 메뉴판을 볼 수 없기에 직원과 대화로 메뉴가 무엇이 있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소통이 충분히 필요한데 패스트푸드점에서는 그럴 수 없어서 식사하기가 꺼려진다고 말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받는 직원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계속 줄 서고 내가 계속 메뉴에 대해 물어보면 빨리 주문하고 가줬으면 하는 표정을 짓고 있겠죠? 레스토랑 같은 곳은 오히려 편해요. 붙잡고 물어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어느 식당은 주문서가 테이블에 놓여 있고 직접 표시해서 주문하는 곳이 있는데 이럴 때가 제일 난감해요.”

점자 메뉴판이 있으면 주문이 수월하겠냐는 물음에 도연 씨는 “점자 메뉴판이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매장의 어느 곳에 비치된 줄 모르면 소용이 없죠. 요즘 애플리케이션 잘 만들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패스트푸드 같은 체인점은 차라리 웹 접근성을 준수해서 제대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면 주문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집에서 메뉴가 뭐 있는지 들어보고 가면 되니까.”라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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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 씨.
 
영애 씨는 원래 휠체어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녔다. 그러나 장애가 심해지면서 몇 년 전부터 휠체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편의시설이 이렇게 안 돼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한다.

“휠체어를 타고나서부터는 모든 게 다 장애더라고. 내가 장애인지 세상이 장애인지. 배가 그렇게 고파도 뭐 사 먹을 수가 없어. 겨울에는 난방으로, 여름에는 냉방으로 식당 문은 꽁꽁 닫혀 있고 밖에서 직원을 아무리 불러도 안 나와. 턱 하나 정도는 뒤에서 밀어주면 올라갈 수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아예 서울 갈 때 도시락을 싸가지고가. 하도 먹을 곳이 없어서.”

종호 씨는 음식점의 화장실을 지적했다. 1000제곱미터(약 300평) 미만의 음식점은 화장실에 편의시설이 돼 있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기에 식사는 가능하지만 화장실은 사용할 수 없는 음식점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회식자리에 가면 대부분 방으로 안내하더라고요. 저는 목발도 짚으니까 방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화장실 가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아예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인 곳도 있고. 한 번은 소변을 계속 참다가 터질 때쯤 나와서 깡통에 해결한 적도 있어요. 화장실 때문에 술도 소주만 마시는 편이에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대다수가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되는 맥주 마시는 것을 꺼린다. 화장실 접근이 제대로 되기만 해도 ‘화장실 때문에’라며 하고 싶은 것에 제약을 받지는 않을 텐데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300평 이상의 크나큰 음식점을 이용하지 않는 한 화장실에 간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도연 씨는 대형마트의 푸드코트(먹을거리 장터)에 갔다가 짝꿍과 다툰 경험을 이야기했다. 우선 몇십 가지의 메뉴 중에 고르고 계산대에서 주문하고 계산한 뒤 번호표를 받아 번호로 음식이 나왔는지 확인하고 직접 음식을 받아와야 하는 푸드코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이 도연 씨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특히 배고플 때 같이 가면 나는 메뉴를 하나하나 불러주면 끌리는 것을 고르고 싶은데 짝꿍도 배가 고프고 그냥 선택의 폭을 좀 줄여서 제안해주면 안 되느냐고 다툰 적도 있어요. 한식, 양식, 중식 다 따로 나오니 어느 곳에 가서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숫자를 번호판에 보여주기만 하지 소리가 나지는 않으니까 내 음식이 나왔는지도 잘 모르겠고.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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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 씨와 종훈 씨.

영애 씨와 종훈 씨가 포크로 갈비를 제대로 찍지 못하자 종업원이 와서 영애 씨와 종훈 씨의 앞 접시에 직접 갈비를 썰어주며 “음식은 먹을만하세요?”라고 물었다. 영애 씨는 “적어도 여기서는 직원한테 반말은 안 듣네. 어떤 음식점에 가면 내가 언어장애도 심하고 하니까 반말을 하고 애들처럼 대하는 일도 흔해.”라고 설명했다.

갈비를 거의 다 먹고 식사를 주문했다. 물냉면, 비빔냉면과 비빔밥을 주문했다. 직원은 틈틈이 돌아다니며 빈 반찬을 부지런히 채워줬다. 그러나 영애 씨는 살짝 매콤한 비빔밥마저 매워서 먹지 못하겠다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안 아픈 데가 없어서 약을 많이 먹으니까 위 기능이 안 좋아져서 조금만 매운 것을 먹어도 아파. 나는 못 먹겠어. 그래도 취재하니까 이런 고급스러운 식당에도 오고 좋네.”
 
큰 식당을 찾아서, 아무리 목을 뒤로 제쳐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높디높은 종합상가에 가야만 외식을 할 수 있고 화장실도 갈 수 있는 현실. 빨리빨리를 외치며 한 끼를 때우러 가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보이지 않는 메뉴판으로 직원에게 어떤 메뉴가 있는지 물어보기가 꺼려져 텔레비전에서 나온 광고 메뉴를 더듬어 대충 주문하는 현실. 이들이 외식에서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자유롭게 ‘해방’되는 날은 과연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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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과 물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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