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2014.04.02 14:12

내 친구 박경석이 감옥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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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은 15년 지기 내 친구다. 인권운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만난 장애인 운동가가 박경석이다. 그는 장애인운동을 대표하는 운동가다. 나는 그가 나를 찾아왔을 때를 정확히 기억하기 때문에 그와 인연을 맺은 지 15년이 되었음을 안다. 혜화동 허름한 3층 건물에 인권운동사랑방이 세 들어 살 때 그가 찾아왔다. 우리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그를 사무실에 들이지 못하고 지금은 사라진 인근의 한 서점에서 기다리게 하고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꽁지머리가 아닌 짧게 깎은 머리에 매우 다부진 상체를 지닌 휠체어 탄 장애인의 모습이었다. 그는 척수장애인이기 때문에 하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 대소변 처리에도 일정 정도 활동보조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도 그는 당당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형형한 그의 눈빛을 기억한다.

 

나는 그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 하지만 그의 전화를 받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분명히 무언가 일을 저지를 때 전화를 해서 의논을 한다. 천생 싸움꾼인 그는 늘 무언가 싸움을 준비한다. 그는 점거농성의 달인이다. 자기가 직접 하기도 하지만 싸움을 기획하고 배후조종하는 데도 능하다. 그의 기획 속에서 2000년대 초반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진행되었다. 철로를 점거하고, 버스를 점거하더니 목에 쇠사슬을 감고, 거기에 철제 사다리까지 목에 걸고 도로를 점거해버리곤 했다. 충격적으로 우리 사회에 집 밖을 나올 수 없는 장애인들의 현실을 폭로한 그의 점거 투쟁 덕에 장애인 이동권은 투쟁 4년 만에 법으로 보장되게 되었다. 하지만 법에도 규정되어 있는 장애인 이동권이 아직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예산을 핑계로 저상버스와 장애인콜택시를 법이 정한 대로 확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박래군 선생니임.” 그가 전화할 때면 장난스럽게 이렇게 시작하고는 한다. 지난 토요일 페이스북에서 그가 서울구치소로 간다는 걸 알게 된 뒤 전화를 걸었을 때도 여지없이 그는 이렇게 말했다. 12년 전 기초생활보장법 투쟁을 하다가 죽은 고 최옥란 씨의 납골당에서 그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추모 주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감옥에 가기 전에 들러서 인사를 했을 것이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12년 전에 떠난 최옥란과 얘기가 나온다. 벌금 5백만 원 받고 수배당한 그, 그리고 벌금 300만 원을 받았던 최옥란. 최옥란은 감옥에 가야 한다고 했지만 그녀는 곧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나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벌금 때문에 수배가 떨어졌고 고민하다가 옥란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몸빵하려고 노역을 살려고 구치소로 간다. 구치소 가기 전에 옥란에게 인사하고 간다.”

 

그가 구치소로 가기 전에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남겼다. 그 말대로 그는 최옥란을 보고 서울중앙지검을 갔다. 서울구치소로 가자고 했지만, 저상버스도 없고, 휠체어 채로 그를 이동시킬 방법을 백방으로 알아보다가 3시간 가까이나 지체되어서 겨우 장애인콜택시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 장애인콜택시는 규정상 경기도 의왕에 있는 서울구치소까지 가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했는가 보다. 그런데 장애인들은 이동하기 위해 매일 이런 전쟁을 치른다. 어디 한 번 가기 위해서는 3시간 전에는 미리 불러놔야 한다. 부족한 장애인콜택시는 늘상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이틀 밤을 서울구치소에서 잠을 잤을 것이다. 서울구치소는 어땠을까? 그곳도 무척이나 당황했을 것이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생활시설이나 활동보조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그들인지라 박경석을 수감시키는 데도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2백만 원어치의 벌금을 몸빵해야 하니까 무려 40일을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아는 박경석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고분고분 노역을 살지 않을 것이니 얼마나 갑갑할 것인가.

 

나의 머릿속에는 지난 2006년 봄인가 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제도를 쟁취할 때의 투쟁 장면이 떠오른다. 40여 명의 장애인이 한강대교 북단에서 노들섬까지 휠체어를 버리고 다리 위로 내려와 기었다. 겨우 5백여 미터의 거리. 그들은 팔과 무릎으로 기면서 기어이 갔다. 도중에 아스팔트 위를 기던 장애인들이 하나둘 병원에 실려 갔다. 겨우 3백 미터를 무려 6시간 넘게 기어서 노들섬에 도착했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팠다. 그렇게 아픈 모습을 보고서야 세상은 활동보조인제도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박경석과 장애인 동지들이 이룬 성과는 이런 눈물겨운 투쟁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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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30일 광화문에서 시작한 고 김주영 활동가 노제 행렬. 행렬 앞에 고 김주영 활동가의 얼굴 사진이 박힌 플래카드를 든 박경석 대표가 있다.

 

이번에 박경석이 감옥에 간 이유도 활동보조인 문제 때문이었다. 2012년 10월 성동구 행당동 단칸방에서 살던 한 장애여성이 불에 타 죽었다. 전신을 잘 쓰지 못하는 고 김주영 씨가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세 시간 만에 일어난 불로 숨진 것이다. 비장애인이라면 단 몇 걸음 만에 뛰어나올 수 있는 방에서 질식사했다. 고인에게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박경석은 그런 고 김주영 씨의 장례위원장으로 광화문광장에서 계동 보건복지부까지 장례행렬을 이끌면서 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벌금 2백만 원을 부과받았다.

 

늘 선이 문제다. 선을 그어 놓고 그 선을 넘지 말 것을 강요한다. 집시법이든 도로교통법이든 언제나 약자에게는 불리하게 선을 규정한다. 그 선은 법에 따라 위임된 경찰이 권한을 갖고 있고, 검찰과 법원도 늘 경찰의 편이 되어 도로에도 선을 긋는다. 박경석은 그 선을 넘어서 불에 타 죽은 한 장애여성의 장례를 지내준 탓에 감옥에 갔다.

 

황제노역이 문제가 되고 난 다음에 ‘일수벌금제’라는 것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일면 타당한 대안일 수 있다. 소득 수준에 따라서 하루 6백만 원, 하루 6만 원 식으로 차이를 두고 하자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얘기를 들을 때 부아가 솟는다. 누구의 하루를 단지 소득 수준에 따라 재단한다? 내가 보기에 박경석의 24시간은 그 재벌이라는 자의 24시간보다 훨씬 더 값지다. 재벌이라는 그자는 24시간 범죄를 꿈꾸고 시도하고 그런 위에서 번 부당한 소득으로 떵떵거리고 살면서 세금도 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박경석은 24시간 장애인의 차별을 없애는데 골몰하였다. 박경석의 하루가 몇 배, 아니 몇천 배 더 값진 것이 아닌가. 그럴 거면 일당 5만 원을 일률로 적용하는 게 평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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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9일 자진노역을 앞두고 서울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나는 박경석이 40일을 꼬박 감옥에서 살다 나왔으면 좋겠다. 몸으로 부당한 노역을 고발하면서 법 한다는 인간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으면 한다. 물론 박경석, 그도 힘들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감옥이 장애인의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도록 했으면 좋겠다. 아무나 잡아들이고 아무나 감옥을 살리면 안 된다는 것을 각인시켜주면 좋겠다.

 

또 하나, 정말 친구로서 박경석이 그곳에 오래 머물다 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그의 하루는 너무 고되다. 너무도 많은 일, 너무도 많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는 쉴 틈 없이 자신의 휠체어를 굴려 왔다. 걸핏하면 지방에 내려가고, 걸핏하면 투쟁 선두에서 책임을 져왔다. 하필 장애인차별투쟁주간이다.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까지 장애인들은 많은 투쟁을 기획하고 있다. 그가 출소하면 이런 일들에 조금도 쉬지 못하고 다시 일하느라 바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더욱더 그가 그곳에서 오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내내 나는 친구가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시시각각 확인하겠지.

 

누구는 감옥에 가고, 누구는 광장에서 밥을 굶는다. 이래저래 괴로운 계절,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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