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2014.04.02 14:26

최옥란 열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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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30 11:59 입력 | 2014.03.31 00: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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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란 열사가 안장된 서울시립승화원 유골함.

 

“옥란이가 기초생활보장법으로 싸우자며 2001년 그 추운 겨울에 명동성당에서 농성했을 때는 그 싸움이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어요. 지금에서야 옥란이가 벌인 투쟁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최옥란 묘역참배 추모발언 중


지난 2월 가난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기저기서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지 않도록 대책을 이야기했지만, 3월에도 많은 이들이 가난과 장애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최옥란 열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에 목숨 걸고 싸우다 지난 2002년 3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러한 잘못된 복지정책은 계속되고 있으며 열사의 투쟁 또한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남은 이들은 이러한 현실에 맞서 싸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지난 29일 장애인·빈민단체 활동가 10여 명이 최옥란 열사가 안장된 서울시립승화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열사의 투쟁을 기억하고 계승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의당 장애인위원회 김휘주 위원장은 “열사가 돌아가셨던 시점이나 2014년 현재나 장애인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송파 세 모녀 사건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라면서 “장애인을 위한 실천에 연대하고 싸우겠다”라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성남 재정특별위원장은 “지금 부양의무제를 깨뜨리기 위해 광화문역에서는 600일 가까이 농성하고 있다”라면서 “10여 년 전 이야기를 지금 하는 것이 화가 난다. 열사가 이야기했던 것들을 우리가 이어서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다짐했다.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박경석 회장은 “옥란이는 기초법의 한계를 그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라면서 “기초법이 만들어질 당시 제대로 못 만든 것이 한이 된다. 12년이 지난 시점에도 같은 일로 싸우고 있는데 싸울 때도 제대로 싸웠으면 한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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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란 열사 영정사진.

 

# 최옥란 열사의 못다 이룬 투쟁


2000년대 이전에 장애인은 노동에서 배제되고 변변한 소득보장조차 이뤄지지 않았기에 생계를 위해 노점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옥란 열사도 생계를 위해 1998년부터 청계천 길가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열사는 강한 생활력으로 노점을 철거하려는 단속반에 맞서 싸워가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열사는 노점에서 번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한편 이혼한 남편으로부터 아들을 데려와 함께 살려고 했다.


그러나 열사의 소박한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열사는 2001년 3월 동사무소로부터 ‘수급권과 노점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2000년 10월부터 빈곤층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한다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 시행됐지만, 월수입이 33만 원 이상이면 수급권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안정적인 생계를 꾸리기 위해서는 노점을 계속 해야 했으나 수급권을 포기하면 임대주택, 의료급여 등 복지를 받을 수 없어 열사는 노점을 그만뒀다.


노점을 그만둔 열사에게 남은 것은 생계급여 월 26만 원, 장애인 수당 월 4만 5000원이 전부였기에 아파트 임대료 16만 원, 월 26만 원가량 드는 치료비를 내고 나면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열사는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대통령에게 절박한 처지를 알리는 편지를 썼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당신도 장애인이면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법이 저의 작은 꿈들을 다 잃게 했습니다. 노동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그나마 거기에서 장사해서 돈을 좀 벌어서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나의 아들을 찾으려고 힘이 들어도 참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장사도 못 하게 해 이제는 더 살 수 없는 심정입니다.” - 최옥란, ‘유서 - 김대중 대통령께’ 중


최옥란 열사는 2001년 12월 3일부터 8일까지 최저생계비 보장을 외치며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열사는 당시 농성을 통해 기초법이 빈민들의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을 호소했고,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보건복지부 장관 집에 방문해 생계급여 26만 원을 반납하기도 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벌써 두 명의 수급권자가 자살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더 이상 수급자들이 자살하거나 저같이 자살을 생각하지 않도록 바뀌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민, 사회, 장애인 단체에 부탁드립니다. 비록 지금은 저 혼자 텐트 농성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와 함께하리라는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 최옥란, ‘명동성당 농성을 결의하며’ 결의문 중


농성 후 최옥란 열사는 아들 양육권을 되찾기 위한 소송을 준비하면서 양육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통장에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 열사는 2002년 2월 동사무소로부터 수급권 재심사 명목으로 소득과 재산을 신고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양육권을 되찾기 위해 통장에 모아둔 돈으로 수급권이 박탈당할 위기에 놓이자 열사는 21일 새벽 과산화수소와 수면제를 복용해 자살을 시도했으나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이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열사는 가난해도 아들과 함께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꿈, 가난한 사람이 자살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이루지 못한 채 3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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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부터 한 달 동안 여의도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과 2013민생보위는 기초법 개정안을 저지하고 장애인연금 공약이행을 촉구하는 농성을 진행한 바 있다.

 

# 최옥란 열사 12주기, 빈곤층 복지제도 여전히 문제


최옥란 열사가 가난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기초법에 항거하다 별세한 지 12년이 지났으나 빈곤층 복지제도는 개선되기는커녕 더 나빠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빈곤층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나 2013년 수급자의 수는 오히려 줄었다. 지난달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2011년 146만 9000명으로 전체인구 대비 2.9%였던 수급자 수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2013년에 135만 1000명, 전체인구 대비 2.6%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반면 비수급 빈곤층은 수급자의 3~4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민사회단체나 학계에서는 비수급 빈곤층을 410만 명으로 추산하며 2010년 10월 새누리당 강명순 전 의원은 통계청 자료, 국민연금공단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비수급 빈곤층이 최대 600만 명에 이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기초법을 개정해 개별급여를 통해 급여 범위를 늘리겠다고 밝혔으나 이 또한 수급자의 생활을 개선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지속해서 제기됐다.


지난해 5월 새누리당 유재중 의원이 발의하고 정부에서 일부 내용을 수정해 추진할 예정인 기초법 개정안은 보건복지부에서 통합적으로 지급하던 급여를 ‘맞춤형 개별 급여’로 나눠 복지부, 국토교통부 등 소관 부처로 이전하고, 급여 범위와 수준도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계측한 최저생계비가 아닌 소관 부처 장관이 결정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장애인·빈민·시민사회 단체는 기초법 개정안이 발의될 때부터 △최저생계비 기준 해체되고 소관 부처 장관이 급여를 예산에 맞게 자의적으로 결정함으로써 각 급여 안정성과 권리성 침해 △급여 분절화로 개인별 보장 금액 하락 및 수급 신청 어려움 예상 △행정업무 급증으로 급여 지급 지연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또한 기초법에 명시된 부양의무자 기준이 수급대상자의 수급권을 제한해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어낸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지난 9일 강남에서는 딸에게 소득이 생겼다는 이유로 수급비가 끊긴 6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20일 창원에 거주하는 40대 남성이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수급비가 깎여 분신자살을 기도하는 등 최근까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기보다 완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복지부는 올해 10월에 부양의무자 소득 기준을 현행 290만 원에서 463만 원으로 완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수급대상자가 되는 빈곤층 수는 12만 명(복지부 추산)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 복지부 용역결과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비수급 빈곤층은 117만 명으로 기준 완화로 수급대상자가 되는 인원을 제외하더라도 여전히 100만여 명이 비수급 빈곤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이 광화문역에서 587일(30일 현재)째 농성을 이어가고 2013민생보위, 국민기초생활보장 지키기 연석회의 등 장애인·빈민·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기초법 개정안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등을 요구하는 등 각계각층에서 빈곤층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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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은 지난 2012년 8월부터 600일 가까이 농성을 진행하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촉구했다. 사진은 첫 날 농성 자리를 마련한 모습.


# 장애인·빈민운동 활동가, ‘열사 투쟁 계승하겠다’


이렇듯 빈곤층 복지가 개선되기는커녕 후퇴하는 현실에서 최옥란 열사 12주기를 맞아 장애인·빈민운동 활동가들은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리라는’ 열사의 믿음에 투쟁으로 답했다.


지난 26일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최옥란 열사 12주기에 열린 10회 전국장애인대회 투쟁선언문에서 “12년 전 최옥란 열사가 못다 한 투쟁, 동지가 못다 한 삶의 고통을 지금의 우리가 이토록 끔찍하게 마주하고 있다”라면서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을 지키고 이 땅의 썩어빠진 복지제도를 뿌리째 뒤집어버리기 위해 강력한 민중연대 투쟁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밤 대한문에서 열린 장애해방열사 합동추모제에서도 참가자들은 최옥란 열사 등 장애인 차별, 빈곤에 맞서 싸우다 돌아간 열사들을 추모하며 열사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아직도 우리 곁에는 수많은 최옥란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그 아픔과 똑같은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당신이 그들을 품었던 것처럼 이제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함께 닦기 위한 투쟁의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 최옥란 열사 추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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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묘역참배에 참여한 활동가 10여 명이 열사 영정에 묵념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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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최옥란 열사의 투쟁을 회고하는 박경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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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객들이 열사 제단에 술을 올리고 있다.


갈홍식 기자 redspirits@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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