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립생활기금(Independent Living Fund)을 지키기 위한 영국 장애인들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점거 농성이 지난달 28일 시작됐다. ⓒDPAC |
영국의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이 자립생활기금(ILF: Independent Living Fund) 폐지에 항의하며 지난달 28일부터 런던 국회의사당 서쪽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광장을 점거하고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천막 농성을 주도하고 있는 영국의 장애인단체 DPAC(Disabled People Against Cuts)는 누리집(http://dpac.uk.net)을 통해 "영국정부는 장애인들이 집구석이나 시설에 가둬진 채 숨어서 살아가던 시절로 되돌아가길 원하고 있다“라며 자립생활기금 폐지에 강하게 항의했다.
DPAC는 또 “장애인들은 복지국가를 파괴하고 오직 1%만을 위한 이윤추구를 위해 노동자를 공격하는 예산 삭감의 표적이 되고 있다”라면서 “노동자와 실업자, 싱글맘, 학생, 그리고 연금수급자 등 공격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이들과 연대 저항에 나선다”라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www.theguardian.com)의 보도를 보면, 100여 명의 시위대가 웨스트민스터 사원 광장에 모여 항의시위를 벌이면서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농성장을 강제로 철거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물리력을 동원해 이들을 진압했으며, 이 과정에서 천막을 치려던 시위자 1명이 경찰관 폭행 혐의로 체포됐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DPAC가 누리집을 통해 공개한 영상을 보면, 영국 경찰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턱을 넘어 이동하기 위해 설치한 경사로를 두 발로 가로막아 진입하지 못하게 막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경찰의 행동에 시위자들은 “창피한 줄 알아라”(“Shame on you”)라고 외치기도 했으며, 일부 장애인들은 쇠사슬로 사원을 둘러싼 울타리에 휠체어를 묶으며 강하게 저항했다.
![]() ▲한 참가자를 연행해 가려는 영국 경찰들 (유튜브 영상 캡처 ⓒDPAC) |
![]()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경사로를 통해 이동하려 하자 경찰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DPAC) |
![]() ▲한 시위 참가자가 사원 울타리에 자신의 휠체어를 쇠사슬로 묶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DPAC) |
자립생활기금은 1988년에 설치된 영국 중앙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자립생활 지원 예산이다. 이 제도는 최중증 장애인 1만 8천여 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활동보조인을 고용해 이용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해온 제도이다. 즉 장애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구매할 수 있게 자금을 제공하는 제도이다.
영국은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와 예산이 갖춰져 있지만, 중앙정부가 관장하는 자립생활기금이 장애인 이용자들의 만족도 면에서 더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DPAC는 밝히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12월, 영국의 노동연금부(Department of Work and Pension) 장관은 이 기금의 신규 신청자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2015년 4월부터는 아예 기금 자체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최근 영국에 불어 닥친 사회보장 예산 삭감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시민단체 UK Uncut(www.ukuncut.org.uk)의 설명에 의하면, 지난 2010년 10월 27일 영국의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이 1920년대 이래로 가장 극심한 공공 서비스 예산 삭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사회서비스 전체 예산은 40억 파운드(약 7조 원)가량 삭감되었고, 2015년까지 총 80억 파운드(약 14조 원)의 예산이 삭감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11월 영국 법원은 이러한 자립생활기금 폐쇄 결정이 위법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기금 폐쇄 결정이 “공공영역에서의 평등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갈 능력을 잃게 될 이들에게 피할 수 없는 상당한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며 재판부 만장일치의 견해를 내놓았다. 그럼에도 노동연금부 장관은 올해 3월 6일, 다시 한 번 2015년 6월 30일에 반드시 자립생활기금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영국 정부가 자립생활기금 폐쇄를 강행하면, 기존에 기금을 받던 장애인에 대한 지원 책임은 모두 지방정부로 이양되게 된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이 책임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DPAC는 이 책임을 수반하기 위한 기금 전환은 2016년까지만 보장되는데, 그 이후 자금조달 계획에 대해서는 어떠한 계획도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2016년까지의 기금 전환도 지방의회의 다른 일반예산에 쓰이지 않고 온전히 장애인 자립생활에만 쓰이리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기금 폐쇄에 대해 영국의 장애인들은 “자립생활기금이 폐쇄된다면 우리는 집안에 갇힌 죄수일 뿐”이라며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영국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은 DPAC 누리집을 통해 자립생활기금 폐쇄 이후 자신의 삶이 어떨지를 증언하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 마리 레이버 씨는 “지방정부의 보호 정책 외에 아무것도 지원되지 않는다면 나는 아침 7시 45분부터 밤 10시 반까지 휠체어에 앉아 오직 점심시간과 티타임, 딱 두 번의 휴식시간만 갖게 될 것”이라며 “나는 활동보조인이 방문하기 전까지 화장실 가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옷이 다 젖게 될 것이며, (…) 단지 밥 먹고 물 마시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DPAC 등 장애인단체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점거 농성을 7월 22일까지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오는 7월 4일 늦은 2시(현지 시각)에는 노동연금부 앞에서 ‘자립생활의 날 파티’도 열 계획이다.
현재 웨스트민스터 사원 점거농성에는 DPAC 등 장애인단체들과 ‘경제위기 책임의 민중전가 반대’를 내걸고 활동하는 Occupy London(오큐파이 런던), 사회보장 예산 삭감에 반대를 내걸고 활동하는 UK Uncut(유케이 언컷) 등의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국왕의 대관식을 진행하는 곳으로 그 상징성 때문에 많은 점거농성이 이어지는 곳이다.
![]() ▲7월 4일 '자립생활의 날 파티'를 홍보하는 웹 포스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