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자립생활센터)가 위기다. 90년대 후반부터 장애인운동을 주도하며 장애 관련 패러다임을 ‘재활’에서 ‘자립생활’로 전환케 했던 자립생활센터는 2005년 복지부 시범사업으로 10개 센터가 정부지원금을 받기 시작해 이제는 전국 230여 개 센터가 운영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런 양적 성장 이면에는 장애인운동의 위기 속에 새로운 방향 설정의 어려움, 여전히 부실한 법적 지원 체계 등에 봉착해 있는 실정이다.
이에 자립생활운동의 양대 진영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는 15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중증장애인자립생활 지원체계 강화방안 토론회를 열고, 자립생활센터의 향후 발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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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주시설도 복지관도 ‘자립생활’ 외쳐... 자립생활센터는 어디로?
발제에 나선 서해정 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현재 정부와 지자체, 민간 차원에서의 자립생활센터 지원 체계의 변화 양상에 대해 짚었다.
서 연구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우선 정부 차원에서는 2012년 발표한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3~2017)」을 통해 자립생활 기반 구축에 대해 세부 과제들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장애인복지서비스 및 주거지원으로 국한되어 있어 자립생활의 큰 그림을 그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지자체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자체 중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을 추진 중인 서울시의 경우 5년 이내에 거주시설 장애인 20%의 탈시설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립생활센터의 역할은 탈시설 전환서비스와 주거정책의 일환으로만 한정했다. 서 연구위원은 이로 인해 “정부와 지자체는 자립생활지원의 핵심 전달체계인 자립생활센터의 지원·육성에 대한 구체적인 중장기계획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라고 꼬집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와 지자체는 이제 자립생활센터가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유일무이한 기관이라고 보지 않고 있다. 정부는 탈시설 지원이나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 등은 센터만이 아니라 장애인거주시설도 할 수 있다고 보고 정책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거주시설 내 체험홈 운영을 지원하는 한편, 이에 필요한 기능보강 예산 요청이 들어올 경우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는 기존 시설의 형태를 자립생활의 틀에 맞춰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관련 법 개정으로 거주시설 정원이 30명을 초과할 수 없게 되자 거주시설을 공동생활가정 등으로 점차 소규모화 하는 한편, 기존 시설을 실제 거주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거주홈)과 낮 시간 동안의 지역사회활동을 지원하는 시설(거주홈지원센터)의 두 축으로 운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서해정 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 |
이는 장애인복지관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 장애인복지관은 복지관의 주요 기능 분류에 ‘역량강화 및 권익옹호 지원’을 삽입하기 시작했으며, 지역 내 장애인의 복지증진을 위한 종합적인 자립지원서비스 제공을 강조하는 추세다. 이에 최근 복지관에서는 비장애인 사회복지사가 장애인 당사자를 ‘동료상담’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
이러한 흐름은 정작 그동안 자립생활운동의 주체적 역할을 해왔던 자립생활센터의 위상을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서 연구위원은 “이처럼 센터 이외의 다양한 민간기관에서 이들 기관 고유 사업 외에 자립생활지원사업을 추가하거나, 장애유형에 따른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기관을 설치·운영하려는 노력이 더욱 활발해 지고 있다”며 “이런 새로운 전달체계에 대한 유사·중복성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 “자립생활센터도 장애인복지법 상 전달체계로 인정해야”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자립생활센터 측의 대안은 무엇일까?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이들은 이에 대한 다양한 해법을 내놨다.
김재익 굿잡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우선 자립생활센터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할 것, 그리고 센터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성과지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소장은 “중앙정부는 2007년 전면 개정된 장애인복지법 이후 아직까지 시행령 없이 시행규칙에서 자립생활센터의 운영기준만을 명시하고 있다”며 “이는 보건복지부의 큰 허점”이라고 꼬집었다. 지자체의 경우를 보면 “서울시는 강력한 조례가 있고 실태조사 및 보고서는 만들고 있으나 자립생활지원에 대한 중장기 계획은 없다. 그러나 지방의 경우 아예 사업평가조차 하지 않는다”라고 당국의 부실한 센터 지원 체계를 문제 삼았다.
김 소장은 따라서 자립생활센터를 단지 개별적 서비스만 제공하는 기관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장애인복지법 상의 주요한 서비스 전달기관의 하나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애인복지법 제58조에 따르면, 장애인복지시설의 종류로 장애인 거주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재활시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장애인 의료재활시설, 장애인 생산품 판매시설을 규정하고 있다. 김 소장은 여기에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시설’이라는 항목을 추가해 자립생활센터뿐만 아니라, 가칭 동료상담지원센터 및 자립생활체험홈도 서비스 전달체계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김 소장은 자립생활센터가 자체적으로 자신의 활동에 대한 평가지표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지원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센터가 복지관, 시설 등과 유사 중복 사업이라고 지적받으며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게 될 판”이라며 “이제는 (센터 활동에 대한 평가도) 과학적이고 계량적인 방식으로 발달해야 한다. 어떤 일을 했는가를 정확히 기록해야 동료상담, 탈시설 등 우리 운동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복지관과 경쟁구도 말고, ‘자립생활운동 원칙을!’
노금호 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법적 지위 확보와 성과 지표 마련도 중요하지만, 자립생활센터가 누구를 위해 어떤 서비스를 할 조직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 소장은 “애초 우리의 목표는 자립생활센터 자체가 아니었다. 인간 이하의 존재로 살고 있는 장애인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목표였고, 이를 위한 경로로서 자립생활센터가 존재했던 것”이라며 “자립생활센터는 자립생활운동의 결과일 뿐”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즉, 자립생활운동의 애초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법적 지위 확보와 성과 지표 마련 등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노 소장은 따라서 “자립생활센터의 주요 지원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거주시설 측에서 시설 확충을 주장하는 주요 근거는 시설 대기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수요에 비해 마련된 시설은 50%도 안 된다고 말한다.”며 “이 말은 거꾸로 그만큼이 바로 자립생활 지원을 받아야 할 대상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평가받으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자립생활센터는 50% 이상 장애인 당사자 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센터의 사업 비전이 명확해야만 이 원칙을 지킬 수 있다.”며 “그렇지 않고 지금과 같이 복지관과 경쟁구도로 간다면 양적 평가에 매몰될 수밖에 없고, 동료성 강한 장애인 활동가 대신 업무 효율이 높은 비장애인 활동가만을 채용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