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 장애인에게 있어 기술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특히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이전까지 상상하기 어려웠던 방식으로 우리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최신 AI 기술과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변화와 기대를 장애 당사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AI 안내견 'RoboGuide' 시각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동반자
이 기획은 박물관, 쇼핑센터, 병원, 공공장소 등에서 시각장애인의 이동성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더 큰 자립성을 촉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 글래스고대
기존의 로봇 안내견이 제공할 수 없었던 정밀한 실내 이동을 가능케 하는 로봇, 바로 'RoboGuide'는 AI 기술이 시각장애인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개발 중인 이 로봇은 실시간 환경 인식, 장애물 회피, 음성 상호작용 기능을 갖추고 있다. 2023년 헌터리언 박물관에서의 실증 실험에서 나는 다른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이 로봇의 안내를 체험했다. 단순한 이동 보조를 넘어, 전시 설명을 음성으로 제공받으며 공간을 자유롭게 경험한 순간, 기술이 제공하는 자율성의 진가를 실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공공장소 출입에 대해 찬반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식당, 카페, 대중교통 등에서 안내견의 출입이 제한되거나 거부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며, 이는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현실이다.
특히 안내견과 함께 저상버스를 이용하거나 대중교통을 탈 경우, 일부 비장애인 승객들은 공간 협소나 알레르기 등을 이유로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장애인의 이동권과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권리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위해 마련된 보조견, 저상버스, 장애인 좌석 등의 제도는 모두가 조금씩의 불편을 감수함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는 단순한 배려를 넘어,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권리이며, 공공성의 본질적 실천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AI 기반 안내견 로봇의 도입은 물리적·사회적 제약을 줄이고, 공공장소 접근성과 이동의 자유를 더욱 확장시킬 수 있는 중요한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AI 로봇은 알레르기, 위생 문제 등 기존 안내견에 대한 거부감을 일부 해소할 수 있으며,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보다 세밀한 안내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수어 아바타와 자동 통역 , 청각장애인의 소통을 넘어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AI 기술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3D 아바타 수어 통역 시스템이다. '핸드사인톡톡'처럼 음성을 수어로 실시간 번역하는 기술은 단순한 '소통'을 넘어서, 청각장애인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돕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청각 정보의 시각화는, 사회 참여와 표현의 권리를 확장하는 기초 인프라이다. 실제로 한국의 국립국어원은 공공기관 홈페이지 내 공지사항, 민원안내 등을 수어 아바타로 변환해 제공하고 있으며,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박물관, 공공관광지, 법정 안내 등에 이 아바타 기술을 활용해 청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활용 사례는 수어 아바타 기술이 단지 실험적 기술이 아니라, 실질적인 공공 서비스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격차의 우려, 기술 발전의 그늘에서 소외되는 사람들
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가운데, 정작 그 변화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 특히 장애인은 정보 격차의 심화로 또 다른 배제를 경험하고 있다. 최첨단 기기를 접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 디지털 리터러시, 사용환경의 접근성 보장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AI는 기술 혜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차별 구조로 작동할 위험이 있다. 특히 고가의 보조기기나 복잡한 설정을 요구하는 장치는 오히려 정보 약자에게는 벽이 된다.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대책이 필요하다. 첫째, 모든 AI 기반 보조 기술은 '디지털 접근성'을 중심 가치로 설계되어야 한다. 둘째,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기기 지원과 보급, 교육 프로그램이 동반되어야 한다. 셋째, 장애 당사자가 기술 개발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 자신의 사용 경험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참여형 기술 개발' 모델이 확산되어야 한다. 기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AI 기술의 활용을 위해 필수적인 정보통신 요금에 대한 감면 혜택 확대도 중요한 정책 과제이다. 특히 고령의 장애인층은 스마트 기기나 AI 기술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단순한 기기 보급만이 아니라, 그 활용을 가능케 하는 교육과 정보 제공이 병행되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은 물리적 접근성과 함께, 학습과 실천의 기회를 함께 제공받을 때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첨단 기술은 누구의 것인가
그러나 이 모든 기술은 단순히 존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장애인의 관점, 목소리, 일상 경험이 이 기술의 개발 과정에 실질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AI 기술은 단순히 장애인을 '도와주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어야 한다. 사용자로서가 아니라, 공동 설계자로서 장애인이 이 과정에 참여할 때, 기술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기술은 도구다. 그러나 그 도구를 누가 만들고, 누구를 위해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억압이 될 수도, 해방이 될 수도 있다. 장애인을 위한 AI 기술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 가능성을 현실로 바꿀 차례다.
그리고 우리는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경계를 넘어, 모두를 위한 기술, 모두를 위한 디자인,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AI 기술은 장애인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특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다양성과 평등성을 확장하는 보편적 도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누구나 나이, 상황, 능력에 따라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장애를 경험할 수 있는 만큼, AI 기술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접근 가능한 기술'이다. 이것이 바로 기술이 인간을 위한 것임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첨단 AI 기술이 고가의 비용, 복잡한 절차, 혹은 제한된 인프라로 인해 소수의 실험실 수준에 머무르거나 일부 선택받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며, 공공의 자원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와 지자체,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책임을 나누어야 하며, 기술의 민주적 접근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혁신은 오히려 또 다른 차별과 배제를 낳는 도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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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인권/복지
2025.04.28 09:59
장애인의 삶을 바꾸는 AI 기술, 그리고 기대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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