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 얼마 전 지역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통합 복지시설의 개관을 준비 중인 지인으로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용인 간에 BF인증과 관련된 사항으로 촉발된 갈등에 대한 갈등을 전해 들었다.
BF인증이란 무엇인가?
‘BF(Barrier-Free) 인증제도’는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등 이동 약자가 물리적 시설과 공간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일정한 설계 기준을 충족한 경우 부여하는 국가 인증제도이다. 이는 단순한 건축 편의 제공을 넘어서, 사회 구성원 누구나 접근 가능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철학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의 BF인증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9조를 법적 근거로 하며, 2006년 제정된 이후 국토교통부와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주관하여 운영하고 있다. 인증 항목은 총 8개 분야(이동·접근, 내부시설, 위생, 안내 등)로 구성되어 있으며, 2023년 기준 누적 인증건수는 1,422건에 달한다. 그러나 여전히 수도권에 인증이 집중되고 민간 부문 참여는 저조한 실정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 2023년 BF인증 운영보고서)
세계 주요국은 BF인증과 유사한 제도를 이미 법제화하고 있으며, 대부분 ‘접근 가능성’을 시민의 법적 권리로 명시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법인 ADA(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1990)법은 연방차원에서 모든 공공 및 민간시설에 대해 접근성 기준 준수를 강제한다.
ADA Accessibility Guidelines(ADAAG)은 시설의 진입로, 주차, 엘리베이터, 화장실 등 구체적 설계 기준을 규정하며, 위반 시 민사소송이 가능하다. 이것은 접근성은 시혜가 아닌 법적 권리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고령자·장애인의 이동 및 시설 이용 원활화에 관한 법률'(通称: 배리어프리 신법)을 통해 교통시설, 도로, 공공건축물에 대해 의무적 배리어프리 기준을 적용한다. 국토교통성과 복지부가 공동 주관하며, 계획 단계부터 ‘무장애 설계 계획서’ 제출이 필수다. 이와 같이 “배려”가 아닌 사전 설계의 표준 절차가로서 확립을 의미한다.
영국은 기존 '장애차별금지법(DDA, 1995)'을 통합한 'Equality Act 2010'에 따라 모든 서비스 제공자에게 ‘합리적 조정의무(reasonable adjustments)’를 요구한다.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정보,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운영 방식까지 포함된다. ‘차별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이용이 가능하도록 조치할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 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들은 현실에서 기득권 구조와 충돌하며 갈등을 유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BF인증을 위한 휠체어 통로, 점자블록, 경사로 확보 등이 “비장애인을 불편하게 한다”는 민원이 빈발한다.
서울 은평구의 노인복지관-장애인복지관 통합 과정에서 BF기준 도입에 대해 기존 노인 이용자들의 “공간 축소와 낯선 동선”에 대한 반발이 있었고, 서울 모 체육시설에서는 BF공간 설치로 샤워실과 휴게공간이 줄어들자 민원이 제기되었다.
미국에서도 ADA기준에 따라 식당 내 통로 확보로 테이블 수가 줄자, 자영업자들이 “매출 손실”을 이유로 기준 준수를 회피하거나 벌금을 감수하는 사례가 많다. 일본 시부야역의 엘리베이터 설치에는 지역 상인들이 “장애인을 위한 설계가 미관과 흐름을 해친다”며 10년 넘게 반대한 전례가 있다. 영국에서는 경사로 설치가 “고건축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부되기도 했다.
BF인증이 확대되면서 공공시설 내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용자 간의 갈등이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공간을 둘러싼 권리의 재배치 문제이며,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원인이 있다.
첫째, 공간의 제로섬 인식이다. 무장애 설계를 통해 휠체어 회전 공간, 점자유도블록, 경사로 등을 설치하면 기존 비장애인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공간이 줄어들었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체육시설의 샤워실이나 도서관의 열람실 등에서 휠체어 사용자 공간이 확보되면서 기존 비장애인 이용자의 공간이 축소되자 불만이 제기된 바 있다. 이러한 반응은 BF인증이 ‘공간을 빼앗는다’는 기득권적 반사작용에서 비롯된다.
둘째, ‘정상성’ 중심의 시선과 사용 문화 때문이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추가 설비가 마치 ‘특권’처럼 보이며, 일종의 비효율적 시설로 취급되곤 한다. 예를 들어, 점자안내판이나 음성안내기가 "시끄럽다",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 요구가 들어오는 사례도 있었다. 이는 기능 중심의 효율성과 시각 중심의 미적 기준이 장애인의 접근권보다 우선시되는 구조적 문화를 반영한다.
셋째, 사용자 간 조율 구조의 부재다. 많은 BF인증 시설들이 사전 사용자 협의 없이 전문가 판단이나 공공설계 기준에 따라 추진되면서, 비장애인 이용자들이 ‘갑작스런 변화’에 대한 심리적 저항을 나타내게 된다. 또한 인증 이후의 실효성과 유지관리 부족은 “이렇게 해놓고도 잘 쓰이지 않는다”는 식의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문화적 해결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모두를 위한 설계’라는 인식 전환: 장애인을 위한 설계가 아니라, 노인, 임산부, 어린이 동반자, 병후 회복자 등 우리 모두가 언젠가 이동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BF인증은 모두의 삶을 위한 설계임을 강조해야 한다. 이를 위한 교육과 공공캠페인이 병행되어야 한다.
사용자 협의 메커니즘 제도화: BF설계 초기 단계에서부터 장애인 당사자와 비장애인 이용자 양측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 구조(예: 이용자 설명회, 시뮬레이션 워크숍)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공감 기반의 공간 배치를 가능케 하고, 민원 발생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설계의 유연성과 심미성 강화: 무장애 설계가 ‘장애를 위한 특별설계’가 아니라, 공공성과 미적 조화를 갖춘 통합 디자인임을 보여주는 사례를 확대 보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유니버설 디자인 기반의 우수 BF사례 공모 및 확산이 필요하다.
공간 효율성에 대한 대화의 재구성: ‘누구의 공간이 줄었다’는 식의 제로섬적 사고에서 벗어나, 공간을 통한 사회적 포용이 어떻게 공동체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지를 비용 대비 편익이 아닌 가치 기반으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향후 제도 개선 방향은 첫째, 인증의 의무화 범위 확대가 필수적이다. 단지 공공시설에 한정된 현재의 틀에서 벗어나, 대형 민간 건축물, 숙박업소, 병의원, 다중이용시설로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사후관리 체계와 재인증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일회성 인증이 아닌, 지속 가능한 관리와 점검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설계 단계에서부터 장애 당사자와 비장애 이용자의 참여와 협의구조를 제도화해야 하며, 체험형 교육이나 이해당사자 간 워크숍을 활성화해야 한다.
넷째, 지방과 소규모 시설에 대한 재정적 지원 확대 및 신청 절차 간소화도 동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접근 가능한 사회’는 일부 사람만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가능성과 존엄을 지탱하는 공공성의 기초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우리나라 역시 단순한 인증 제도에서 나아가, 접근성 보장을 권리로 확정하는 법제 개혁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나서야 할 때다.
무장애 설계는 결코 소수만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BF인증제도는 장애인을 위한 특수설계가 아니라 임산부, 유아를 동반한 보호자, 고령자, 일시적 부상자, 짐을 들고 이동하는 시민 등 누구에게나 필요한 ‘보편적 안전망’이다. 휠체어 경사로는 유모차와 캐리어, 노약자의 보행에도 똑같이 쓰이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안내는 비상상황 시 비시각정보의 한계를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즉, 장애인을 위한 것이 곧 사회 전체의 편의를 높이는 제도라는 점에서 BF인증은 배려나 시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기본 조건이 되어야 한다. 접근성을 보장하는 환경은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언젠가 노화하거나 이동이 불편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장치이다.
이제 무장애 인증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성의 핵심이자 권리 보장의 문제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우리 모두에게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BF인증은 곧 ‘모두를 위한 설계’이며, 포용적 사회로 나아가는 필수 기반임을 사회 전체가 인식하고 함께 구축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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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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