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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의 완벽한 시간" 포스터.  ⓒ네이버영화

【에이블뉴스 박선희 칼럼니스트】벚꽃 날리던 교정에서 농구를 하던 선배. 하얀 구름 속에 빛나던 태양도 푸르름을 잔뜩 품은 봄바람도 그의 빛나는 미소를 가릴순 없었다. 스기는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 캔버스에 그림으로 담지만 현실에선 말도 한 번 못 붙여 본 사이다.

스기가 도서관에서 봉사활동 할 때도 이와타선배를 마주한 날이 있었다. 대출이 안되는 책이라 빌려 줄 수 없다는 말에 앉아서 저녁까지 책을 읽던 그때도 그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대출이 안되는책은 건축잡지였는데 지금 여기 스기가 일하는 회사와 협업하는 회사와 회식하는 자리에 1급 건축사로 이와타 선배가 앉아 있는 거다. 

꿈에 그리던 첫사랑을 만난 스기는 자기를 알아보는 선배의 목소리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건 어쩔수 없다.

첫사랑!

말만 들어도 설레는 단어다. 나에겐 첫사랑이 누구였을까? 이웃집에서 자취하던 얼굴까만 중학생 걔였을까? 초등학교 3학년때 전학 간 축구 잘하던 걔였을까, 아니면 고등학생 때 같은 성당 다니던 트롬펫 불던 오빠였을까?

제대로 말도 한번 못 해 본 사이가 첫사랑의 정의라면 셋 다 같은 형편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와타 선배 옆에는 항상 아시나언니가 있었다. 스기가 더 다가 가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트롬펫 오빠에게도 항상 그언니가 있었지. 그 오빠는 해질녘이면 성당옆에 트롬펫을 불었다. 동네 가운데 동산에 있던 성당에서 불던 트럼펫 소리는 마을 구석 구석에 스며 들었다. 그 소리가 들릴 때면 서쪽하늘은 언제나 붉은 저녁 노을이 졌다. 그 두 사람은 어찌나 잘어울리는지, 나는 그저 감탄하고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1박2일 청소련 수련회였는데 모닥불을 피워놓고 빙 둘러 앉았는데 트럼펫 오빠가 휘파람을 불었다. 트럼펫으로 다져진 그의 폐활량은 3옥타브를 오르내리면 어떤 악기도 낼수없는 휘파람을 불었다. 까만 밤하늘, 점점히 박힌 별들, 휘파람 소리에 일렁이는 불꽃들...이 정도면 첫사랑 맞네 맞아. 첫사랑의 기준은 적어도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고등학생은 되야 인정하는 걸로 하한선을 두어야 하는건가!

스기는 다시 이와타 선배를 보자 깨달았다. 

아직까지 그를 좋아하고 있음을. 그런 사랑의 눈빛은 속일수 다 들키게 마련이니까. 화장실까지 따라와 짖꿎게 스기의 마음을 묻는 동료에게도 속마음을 들키게 된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선배회사 사람들은 회식을 끝나는 분위기였고 그 가운데 앉은 채로 쭉 뻗은 다리를 질질끌고 있는건 이와타선배였다. 그는 능숙하게 휠체어에 옮겨 앉고 흐느적 거리는 다리를 올려놓고 신발을 신고 출발했다.
영화 '우리들의 완벽한 시간" 한 장면.   ⓒ네이버영화

영화 '우리들의 완벽한 시간" 한 장면.   ⓒ네이버영화
놀란 모습으로 서 있는 스기에게 만나서 반가웠어. 다음에 보자 라는 말을 밝은 표정으로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여직원들 사이의 이슈는 당연히 이와타였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하는 동정론, 그래도 1급 건축사까지 따다니 대단하다는 옹호론, 어쨌든 "그런 사람"과 사귀는 건 힘들 거다 하는 현실파 등등 오전의 빈틈을 채우는 간식꺼리가 된 그를 위해 모두 부정하고 싶었지만 못했다.

성당오빠는 남고 밴드부 악장이었는데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면 우리 여고에도 와서 연주를 했다. 그 오빠는 한쪽 다리를 살짝 절었는데 밴드부를 지휘할 때 살짝살짝 몸의 중심이 앞으로 왔다 뒤로 갔다하는 모습이 또 너무나 멋있었다. 오빠의 공식적인 여자친구는 공부도 잘하는 데다 모습도 우아한 기품이 있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오빠는 마치 요즘 아이돌처럼 인기를 몰고 다녔다. 오빠를 좋아하는건 여자친구만이 아니라 나만이 아니라 거의 전교생이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 찾기가 더 쉬울터 였다.

협업당당자로써 이와타를 자주 만나게 되며 자연스럽게 둘만의 식사자리에서 선배가 말했다. 교통사고 였다고. 그렇게 척수손상 하반신 마비인 사람이 돼었다고. 스기는 그말을 들으며 선배를 돕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결심한다.

어느날 선배가 출근을 안했기에 물어보니 병원에 있단다. 급히 찾아간 병실에서 이와타는 욕창이 번져 있는 그의 허리를 보았다. 척수손상환자에게 피할수 없는 욕창.

영화 '우리들의 완벽한 시간" 한 장면.   ⓒ네이버영화


영화 '우리들의 완벽한 시간" 한 장면.   ⓒ네이버영화
감각이 없이니 아픈줄도 몰라 심해져 염증으로 열이 올라야 알수있는 피부괴사 증상이다. 공모전 일로 무리해서 생긴거다. 입원중에도 환부가 닿지 않게 엎드려서 일을 할 정도로 열심인 이와타모습은 스기의 마음에 더 깊은 인상을 새겨준다.

남들처럼 데이트도 하고 전시회도 다니고 어느날은 스기가 고백을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선배를 좋아했다고. 돌아온 선배의 대답은,

받아들일 수 없다 였다. 자기는 타인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사고 후 누구도 좋아하지 않기로 했다고. "이런"몸인 사람을 좋아하지 말라고. 심지어 그 말도 했다. 어떨땐 바지에 실수할 때도 있다고.

바지에 쌀 수도 있지 뭐!

영화 '우리들의 완벽한 시간" 한 장면.   ⓒ네이버영화




영화 '우리들의 완벽한 시간" 한 장면.   ⓒ네이버영화
카페 안의 사람들이 다 쳐다 볼 정도로 큰소리의 답이 돌아왔다. 스기가 예쁜 눈을  깜빡이며 이렇게 나올 땐 거절할 말이 없을거다. 고등학생때 어디에나 느껴지던 스기의 모습이 이와타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던 이유이기도 하겠지.

이제 스기는 이와타의 핼퍼 역할도 한다. 돈도 아끼자고 하는 의미인걸 보면 아직 활동지원사 정책이 시행되기 전인가 보다.

그들은 같이 퇴근하고 저녁도 함께 해먹고 스기가 청소 빨래도 해주고 간다. 둘 사인 한층 가까워지고 서로의 존재가 더 소중한 상대가 되었다.

그날도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스기가 누군가에게 밀려 선로로 떨어지는 사고가 생겼다. 간절히 손을 뻗혀보지만 이와타의 손을 잡기엔 너무 멀었다. 선로에 쓰러져 있는 여자친구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스기는 "이런"몸이 너무도 절망스러웠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한 스기는 영양실조 란 엉뚱한 진단을 듣는다. 화들짝 놀라 달려온 스기의 부모와 처음 인사를 하게 되었다. 휠체어 탄 사람이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딸의 남자친구로 마주하게 되니 부모의 눈엔 휠체어 만 거대하게 보일 거다. 휠체어 위의 이와타도 눈길을 둘데가 없는건 마찬가지다.

드디어 스기의 아빠가 잠깐만 밖에서 이야기 좀 하자고 한다. 아빠는 이와타에게 허리숙여 인사를 했다.

우리 막내딸이 너무 여려서 이와타씨의 여자친구가 될만큼 강하지 못합니다. 제발 헤어져 주십시오. 미안합니다.

 이타와가 각오하고 있던 말이다. 스시를 사랑해서 함께 있고도 싶고 그녀를 위해 보내주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이타와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영화 '우리들의 완벽한 시간" 한 장면.   ⓒ네이버영화
이와타와 스기는 어떻게 완벽한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첫사랑은 처음 맛 본 탄산음료처럼 충격적이고 내가 낮설게 느껴지며 온 시간이 온통 그에게 물들어 있는 시간 같다. 짜릿하고 불안하고 나에겐 친절해 지지 않는 시간.

어쩌면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지 않을까?

 

* 우리들의 완벽한 세계

2019년 개봉. 일본영화

감독: 시바야마 겐지

주연: 쿠아나 츠구미. 아유카와 이츠키

영화보기: 쿠팡플레이, 웨이브, 티빙,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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