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는 내부 토론을 거쳐 2010년 장애인계를 뜨겁게 달궜던 열 가지 소식을 뽑았습니다. 장애등급심사, 날치기 처리, 현병철 위원장 등이 앞순위를 차지했습니다. 수차례 논의에서 아래 열 가지에 뽑히지 못한 소식으로는 △활동보조인 조직화 △장애인고용공단 양경자 이사장 낙하산 인사 △안태성 교수 승소 △20년 만에 막 내린 LPG 지원 △장애인야학 활성화 △진보교육감 당선 등이 있습니다. 새해에는 더 알찬 내용으로 독자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_ 편집실
1. 중증장애인의 생존을 위협한 장애등급심사 파문
2007년 4월부터 중증장애수당 신규신청자를 대상으로 시행된 장애등급 심사제도가 올해 1~3급 신규 등록장애인과 장애인연금 등 서비스를 새로 신청하는 사람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장애등급 심사로 장애등급이 하락해 기존에 받던 활동보조서비스가 끊기는 장애인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했다.
정부는 장애등급 심사제도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하다”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장애인계는 활동보조서비스, 장애인연금 등 복지서비스의 대상자를 장애등급으로 제한하고 있는 현실에서 장애등급심사로 말미암은 장애등급하락은 결국 서비스 대상자를 축소해 예산을 절감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와 같은 반발은 의료적 기준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장애등급제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장애인계는 5월 ‘장애등급제폐지와 사회서비스 권리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장애등급심사뿐만 아니라 장애등급제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급기야 9월 13일에는 중증장애인 19명이 서울 광진구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를 점거하고 ‘장애등급심사 중단과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며 닷새 동안 농성을 벌였다.
농성이 진행 중이던 9월 15일 복지부 최원영 차관은 농성 대표단과 가진 면담 자리에서 “장애등급제 문제는 당장 어찌할 수 없으나 장애인계와 논의의 장을 만들어 바람직한 대안을 찾아보겠다”라고 약속했고, 그 ‘논의의 장’으로 민관합동으로 구성된 장애인서비스 지원체계 개편 기획단(아래 기획단)이 11월 2일 출범했다.
기획단 회의에서 복지부는 △뇌병변장애 판정기준의 개선 △장애판정 심사의 객관성 제고 △장애인등록 시 제반 편의제공 확대 등의 개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장애인계가 요구하는 장애등급제의 근본적인 개혁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어 장애등급 심사제도를 둘러싼 장애등급제 문제는 내년에도 여전히 큰 불씨로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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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날치기로 3대 법안 제·개정 물 건너가
12월 8일 새해 예산안과 함께 24개 예산부수법안이 한나라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됐다. 이로써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조계사 천막농성 등을 진행하며 요구해왔던 올바른 장애인활동지원법 제정,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개정,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 등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장애인계는 정부가 내놓은 장애인활동지원법안이 본인부담금을 15%까지 높게 책정하고 1급 장애인과 나이로 대상자를 제한하며 서비스 상한선을 두는 등 독소조항이 있는 개악안이라며 이를 반대해왔다. 또한 박은수(민주당), 윤석용(한나라당) 의원이 대체법안을 내놓은 상태였다.
박은수 의원은 법안이 날치기 처리된 뒤 “장애인 생존권과 관련된 법안을, 정부가 발의한 지 2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법안을 하나도 고치지 않고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은 의정 사에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고 성토했다. 또한 윤석용 의원은 대체법안을 낸 당사자로서 날치기 처리 과정에서 정부안에 찬성표를 던져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상대빈곤선 도입 등의 내용으로 개정을 요구해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빈곤사회연대 등 20개 단체가 참여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위한 공동행동(아래 기초법개정공동행동)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상대빈곤선 도입 등을 요구하며 지난 11월 15일부터 조계사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특히 부양의무제는 보건복지부 자료에서조차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등으로 기초생활 보장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의 사각지대 규모가 103만 여명(2008년 기준, 전체 인구의 2.13%)에 이른다"라고 밝힌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이에 따라 곽정숙(민주노동당), 최영희(민주당) 의원 등이 부양의무제의 완화 또는 삭제를 담은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으며,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조차도 지난 9월 부양의무제 삭제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였다.
국회 보건복지위 윤석용 의원 등 121명이 지난 11월 24일 발의한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장애아동 부모, 장애인교육∙보육 전문가 등이 2년여 동안의 준비 과정을 거쳐 만든 법안이다.
비장애아동 중심의 아동복지법과 성인기 장애인 중심의 장애인복지법 사이에서 소외되어 생애주기에 따른 독특한 복지적 욕구와 권리가 법적으로 보호되지 못하고 있는 장애아동의 현실에서 △장애영유아 조기개입서비스 △의료 및 발달재활(재활치료)서비스 △보장구 및 보조공학기기 서비스 △보육 및 돌봄서비스 △가족지원 등을 장애아동과 그 가족에게 필수적으로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4일 동안의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단식농성과 49명의 장애인부모 삭발투쟁에도 이번 날치로 법 제정이 무산되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지난 12월 15일 "현 정부와 한나라당이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생존권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그리고 누가 그 행위에 동조했는지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며 "장애아동복지예산 증액약속 외면! 장애인활동지원법 날치기 통과! 현 정부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다시금 강력히 규탄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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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병철 사태, 인권위 파행운영
2001년 시민단체들이 함께 세운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9년 만에 파행으로 치달았다. MB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권위 조직과 기능, 역할은 축소됐고, 인권 문제에 대해 정부 눈치를 보면서 제때 제 목소리를 내지 않거나 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독립 기구로서의 권위가 훼손되고 위상도 추락했다.
속이 곪을대로 곪은 인권위는 11월 1일 문경란, 유남영 두 상임위원의 전격 사퇴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인권위 건물 7층에서 농성에 돌입하고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어 조국 비상임위원과 전문위원 자문위원 상담위원 등 61명이 사퇴하고 인권위를 떠났다.
11월 4일에는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촉구 인권시민대책회의'가 발족했고, 김창국 초대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전직 인권위원 기자회견(11/8), 야 5당과 인권시민단체의 ‘인권위원장 사퇴촉구 공동결의 대회’(11/9), 전직 직원들의 입장표명(11/10), 법학자 및 변호사 등 법조계 334명의 현병철 사퇴촉구 선언(11/10), 전북, 광주, 대구 울산, 부산, 경기지역 등 전국 인권사회단체 660개가 현 위원장의 사퇴촉구 성명에 연명(11/11)하는 등 사퇴하라는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하지만 현 위원장은 11월 9일 인권위 국정감사에서 “인권위는 가장 잘 운영되고 있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라며 사퇴의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 기념식에는 많은 수상자들이 거부를 선언하고 인권위 앞에서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자리를 찾기 위한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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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애인 문화예술공연 다양화, 활성화
2010년에는 다른 해보다 더 다양하고 풍성한 장애관련 문화예술 공연이 펼쳐졌다.
장애인문화공간은 중증장애인노래패 '시선'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몸짓패 '바람', 현장글쓰기모임 '글텍', 영상활동가모임 '새봄프로젝트' 등과 함께 국내 최초 장애인미디어아트 작품 ‘옹달샘’을 선보여 장애문화예술의 영역을 확장했다.
어느 해보다 중증장애인의 현실을 깊이있게 표현한 창작극도 꾸준히 발표됐다. 지난 11월 27일 8년 만에 창단식을 한 ‘춤추는 허리’는 장애여성의 사연을 극으로 구성한 ‘춤추는 라디오’를 선보였고, 장애인 극단 '판'은 노래극 '불편한 상상'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폭력과 차별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려내며 성공적으로 정기공연을 마무리했다.
극단 ‘애인’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중증장애인의 시각에서 재해석해냈고, 장애인극단 ‘휠’은 사고로 말미암아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소녀 루이스의 성장동화 '춤추는 휠체어'를 무대에 올려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한편, 문학과 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중증장애인 현장글쓰기모임 '글텍'은 두 번째 시 낭송회 '장애인, 거꾸로 뜨는 무지개를 타다! - 시란(詩亂)'을 열고 창작 시를 통해 중증장애인의 현실을 표현했다.
또한 소수자, 지적장애인, 신체장애인 예술가들을 발굴하는 로사이드(RAW+SIDE)가 개인전 '규섭과 200명의 친구들', 그룹전 '노트소년들'을 열어 예술 바깥의 것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장애인문화예술을 한걸음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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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어진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
지난 5월 대전의 고교생 이아무개 군(17세) 등 세 명이 지적장애인 중학생 정아무개 양(15세)을 집단 성폭행한 후 6월 중순까지 16명의 학생들이 정 양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했다. 그러나 경찰은 ‘가해 학생이 미성년자인데다가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고 폭력이 행사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가해학생들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후 여론의 질타로 검찰이 가해 학생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지난 10월 대전지방법원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고 피해자와 피의자들이 합의했다’라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보다 앞서 7월 대구에서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장애여성에게 직원이 수차례 성폭행을 가해 대구 장애인단체가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으나 장애인 성폭력사건은 흐지부지되며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다.
10월에는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을 상습 성폭행한 복지시설 대표와 사회복지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12월에도 강릉의 한 평생교육시설 교사가 수년 전부터 최근까지 이 교육시설에 다니는 18살의 지적장애학생을 자신의 집 등지에서 수차례 성폭행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장애인계의 분노를 샀다.
장애인계는 피해자의 나이에 관계없이 피해자가 ‘신체 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 상태임을 이용하여 간음 또는 강제추행’을 한 경우에 대해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성폭력특별법 6조의 ‘항거불능’ 항목이 오히려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무죄판결을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며 ‘항거불능’ 항목을 삭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