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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입력 | 2011.02.14 22:32 수정

2000년 초반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장애인의 성적권리 담론은 2005년 한국에서 「섹스자원봉사」가 번역되면서 급속도로 팽창됐다. 이 책에서는 장애인의 성적 소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합법적인 성구매 행위제도(공창제), 섹스쿠폰, 섹스자원봉사, 성서비스 중개 등이 소개되었다. 또 최근에 개봉되었던 조경덕 감독의 「섹스볼란티어」 영화도 같은 맥락에서 소외된 장애인 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것으로 소개되어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07년 장애청년 드림팀은 ‘권리로서의 장애인의 성’을 주제로 「섹스자원봉사」에 소개된 네덜란드와 독일 등을 방문해, 현지에 운영되는 장애인 성서비스 업소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 당시 장애청년 드림팀과 함께 연수를 다녀온 국립재활병원 의사 이범석은 유럽의 장애인 성서비스 업소가 일반적인 ‘매매춘’의 방식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장애인 성서비스 업소에서 일하는) ‘섹스도우미’들이 뇌성마비, 척수마비 등 장애인 고객에 대해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 최대한 장애인의 욕구에 맞춰 성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또한 장애청년 드림팀에 참여한 몇몇 척수장애남성들은 자신의 장애에 맞게 성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섹스도우미’의 마인드와 태도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인터뷰와 사례발표를 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권리로서의 장애인의 성’의 실천방식에 대해 장애인당사자들, 연구자, 의사, 장애인 단체 활동가 등이 다른 시각과 입장을 갖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공감(아래 공감)은 장애여성의 경험을 기반으로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로서, 현재 일부 장애인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장애인의 성적 권리 주장에 대해 젠더적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할 필요성을 느꼈다. 공감은 2010년 6월에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독일, 노르웨이, 덴마크지역의 장애인 성서비스 기관을 비롯해 장애인 고객을 받고 있는 탄트라 마사지 업소, 성노동자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 장애여성 단체,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여성단체 등을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공감 외부의 다양한 사람들과 장애인 성서비스에 대한 입장을 토론할 수 있었고,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장애인 성서비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갖게되었다.

 

우선,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소외되고 차별받아 온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이야기하는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장애인의 성과 관련된 책과 영화에서 주체로 등장하는 사람은 장애남성이며, 이들의 시각과 주장이 주된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장애남성의 관점에서 성적권리의 박탈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준과 근거는 비장애남성의 성적 향유와 자유로움, 사회적으로 특별히 허용되고 있는 남성 일반의 성문화일 것이다. 따라서 장애남성은 비장애남성과 같은 성적인 욕망을 실현할 수 없는 처지를 두고 자신의 성적인 소외와 차별의 문제를 주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장애여성은 성적 욕망을 실현하는 의미에서 성적권리를 주장하는 것보다 성적 착취와 폭력의 대상이 되는 문제를 먼저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장애여성의 입장에서 성적권리의 내용은 성서비스를 통한 (성기중심적인) 섹스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닌, 주로 안전하고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권리와 인권침해,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주장하게 된다.

 

▲ⓒ장애여성공감

 

독일에서 만난 마티아스라는 장애남성은 베를린의 ASL(Arbeitsgemeinschaft fűr selbstbestimmtes Leben schwerstbehinderter Menschen e.V: 한국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성격의 기관)에서 섹시빌리티(Sexybility)라는 자조모임을 결성해 장애인들간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정보교환과 토론을 해왔다. 마티아스는 모임에 참석하는 장애남성과 장애여성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견해 차이를 소개했다. 장애남성들은 모임에서 주로 성구매시 성노동자와의 소통과 업소의 접근성에 관한 경험을 나누길 원하고, 장애여성은 성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특히 마티아스는 모임의 참석자가 했던 ‘장애남성은 섹스를 안하는 것보다 나쁜 섹스가 낫다고 하고, 장애여성은 나쁜 섹스를 하기보단 안하는게 낫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 지점이 바로 장애남성과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생각 차이라고 했다.

 

두 번째로 ‘장애인 성서비스에 개입되어야 할 타인은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한국은 성매매가 법적인 처벌대상이지만 독일은 2002년부터 성매매가 합법화된 나라이다. 그래서 독일의 장애인들은 섹스를 하기위해 성노동자에게 성을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이 경우에 장애인 성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혹은 개입하는 타인은 성노동자일 것이다. 독일에는 아주 극소수이긴 하지만 성매매와는 다른 지향을 갖고 장애인 성서비스에 개입하는 ISBB(‘Institut zur Selbst-Bestimmung Behinderter : 장애인 자기결정 상담소)와 같은 장애인 성서비스 제공기관도 있었다. 이는 섹슈얼베글라이퉁(sexualbegleitung : 베글라이퉁은 영어accompany, escort와 유사한 의미. 섹슈얼베글라이퉁은 '성적동행'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의 방식으로 성워크샵을 통해 섹슈얼베글라이터(sexualbegleiter : 남성제공자)와 섹슈얼베글라이터린(sexualbegleiterin : 여성제공자)이 장애인에게 성적인 상담과 치료서비스, 섹스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곳이다. 이 경우에 장애인 성서비스 제공자 혹은 개입하는 타인은 섹슈얼베글라이터(린)이다. 앞의 두 경우 모두 ‘돈’을 매개로 하고 있다는 점과 서비스 제공을 위해 타인이 직접 개입한다는 것이 공통된 점이다.

 

한편, 한국은 최근에 장애인이 활동보조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성적인 활동보조를 요구하는 문제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되고 있다. 성적인 활동보조는 반드시 성교행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활동보조인이 중증장애인의 요청에 의해서 자위행위를 도와주는 일, 자위도구를 구입해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 장애인의 성적파트너와의 성관계를 포함한 성행위를 지원하는 일, 성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일 등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행위를 어디까지 활동보조서비스로 규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이처럼 성노동자, 섹슈얼베글라이터(린), 성과 관련된 활동보조를 하는 사람 등은 장애인 성서비스를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제공하거나 제공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서비스의 내용, 관계 맺기 방식 등은 다르지만 제공자로서 그 제공의 댓가를 받는다.

 

▲ⓒ장애여성공감

 

우리는 독일지역의 장애를 가진 레즈비언과 소녀를 위한 장애여성조직 바이버네쯔(weibernetz)를 만났다. 바이버네쯔는 장애인성서비스에 관해, 그것이 장애인에게 누군가 섹스를 제공하는 것인가, 장애인과 제공자간의 금전적인 관계 외에 다른 것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가, 성서비스를 원하는 장애인의 욕구는 성욕의 충족인가 아니면 타인과의 접촉에 대한 욕구까지 확장되는 것인가 등의 복잡한 질문을 한다. 그래서 타인과의 (언어적, 신체적) 접촉과 타인에게 들은 몸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장애인의 자긍심을 높이고, 권리 확보 투쟁에 힘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섹스행위 자체는 성매매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장애인의 섹스를 위해서 특별한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하는 순간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섹스가 무엇인가'보다 '섹스 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이야기들이 오고가지만, 여전히 불편하고 풀리지 않는 장애인 성서비스 담론의 한계는 무엇인가?

 

현재의 담론에서 이야기되는 논의의 핵심적인 부분은 (중증)장애남성의 성적욕구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고, 누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장애인은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타인에게 의존해야한다는 것을 스스로 전제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장애인의 성적권리가 다른 이들의 권리 혹은 다른 측면의 권리에 비해 우위를 점해야 하며, 장애인의 성적욕구를 즉각적으로 해소해야만 한다는 논리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지? 그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장애/남성/이성애 중심적으로 구성된 성적 만족의 각본을 전제부터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가부장제 안에서 억압받던 여성들이 자위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성적 욕망을 긍정하고 남성 없는 성적 만족을 쟁취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장애인의 주체성을 의심하고 대상화하는 여타의 복지서비스처럼 장애인의 성이 또다시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받아야만 하는 무엇이 되어버리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장애여성공감

 

 

* 이글은 한겨레21에도 실렸습니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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