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 대학의 '장애학생 비서' 제도
시간 당 10달러 비서, 각 클래스마다 한 명씩 지원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1-04-15 13:57:33
버클리 대학 인근 지역의 모습.ⓒ샘

에이블포토로 보기▲버클리 대학 인근 지역의 모습.ⓒ샘
모든 것이 새로웠다.
건물도, 사람들도, 주변 환경도…….

그 중에서 음식이 달라진 것이 반가웠다.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닐 때는 항상 서양 음식이었는데 학교 내에도 월남 국수가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학교 밖으로 나가면 길거리에 즐비한 상가도 좋아보였다.

특히, 학교 생활에서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장애인을 위한 비서 제도'였다. 이전 학교에서는 그저 한 사람씩 장애인이 학교 생활하는 데 거들어 주는 도우미 정도였으나 버클리는 전혀 달랐다.

우선 명칭부터 '도우미'가 아닌 '세크러터리'(비서)다. 비서를 각 클래스마다 한 명씩을 배치해 주는 바람에 갑자기 서너 명의 비서가 생겼다. 학교는 비서들에게 시간 당 십 달러씩을 지불해 준다.

비서는 학생 중에서 내가 직접 선발할 수가 있다. 학생으로서 적잖은 비용을 어렵지 않게 벌 수 있기 때문에 서로가 하고 싶어 한다. 나는 각 과에 지원하라고 발표하거나 내가 직접 지목하기도 한다.

첫 학기의 비서는 경영학과와 사회학과 등에서 뽑았다. 그네들은 강의 시간에 노트도 해 주고 도서관에 동행해 필요한 책들을 찾아다 주기도 한다. 그 외에도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와 주곤 한다.

내가 남들을 많이 시키는 타입의 성격이 아닌 탓에 대부분은 스스로 하려고 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만 시키기 때문에 비서들도 무척 좋아했다.

비서들은 나에게는 더 없이 다정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나 혹은 비서로서의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다부지고 표독스러웠다.

한 클래스에서 교수가 내 비서에게 부탁했다. 다른 사람도 좀 도와줄 수 있느냐고.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 저었다.

“나는 샘의 비서입니다. 그 어떤 다른 일도 돕지 않겠습니다.” 찬 바람 쌩쌩 도는 그녀의 말에 교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들어야 할 과목이 있는 데 정원 20명이 다 차서 더 이상은 받을 수가 없다고 했다. 난감했다. 꼭 들어야 하는 과목인 데 벌써 다 차다니.

“샘, 내가 처리해 볼께요.” 파트 타임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는 다른 비서 한 명이 말했다.

“이미 다 찾다는 데 어떻게……."

“길이 있을 겁니다.”

비서는 담당 교수를 찾아갔다.

“20명 정원은 무엇에 근거한 것입니까?”

“좌석 수 때문이지.”

“그럼 샘을 받아 주십시오.”

“좌석이 다 찾다고 하지 않았나.”

“그는 좌석이 필요 없습니다. 휠체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좌석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비서의 무서운 기세에 눌려 교수는 허락했다. 학칙이 까다로운 우리 학교에서 정원외 학생을 받은 예는 들어 보지 못했다. 비서가 웃으며 눈을 찡끗해 보인다.

“나는 쉽게 물러서지 않아요.”

그런 지독한 비서들이 일처리를 잘 해주어 학교 생활이 훨씬 수월했다. 그러나 모든 비서들이 그런 것 만은 아니다. 가끔씩은 학생이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 비서를 시켜 주기도 한다.

그리고 비서가 나를 도와주는 경우보다 내가 비서를 도와주는 경우도 흔하다. 내가 노트 정리를 해주거나 비서의 공부를 도와주기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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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샘 (samdk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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