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쯤으로 기억한다. 아버지한테 타자기를 사달라고 졸랐다. 글을 쓰고 싶어서였는데 아버지는 내가 그것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며 망설이셨다. 마침 누나가 대학에 들어가서 영문 타자기가 필요하다니까 그제야 아버지는 누나의 영문 타자기와 함께 한글 타자기도 사 오셨다. 당시는 장애상태가 지금보다는 조금 나아서 무릎으로 서서 빠르게 걷기도 했고, 테니스공을 손으로 잡고 던질 수도 있었다.
타자기의 무게는 상당했다. 약 10kg 정도였는데 그것을 책상에 올려놓고 사용하곤 했다. 오른손으로 자판을 탁탁 치면 왼쪽으로 종이가 밀려가면서 글자가 찍히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난 그것으로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얘기는 하나도 없고 동생 얘기, 누나 얘기, 같이 살았던 할머니 얘기 등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주로 쓴 것 같다. 그것도 사방 몇 평 안 되는 방구석에서 말이다.
글을 썼다기보다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것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심지어 그것으로 그림까지 그려봤을 정도니까. 타자기로 그림 그리기는 까다롭지 않았다. 종이 끼우는 곳에 종이를 조금씩 손으로 조절해 자판 하나만 계속 찍어가며 초점을 맞춰주면 제법 그럴듯한 그림이 나온다.
그렇게 어릴 적 추억이 묻어난 타자기가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독일의 구덴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이후 450년이 지난 1868년 미국의 크리스토퍼 숄즈라는 사람이 지금 형태의 타자기를 발명했다고 한다. 그 이후 수많은 작가들이 이것을 이용해 명작들을 집필했다. 영국 시인 존 메이스필드는 ‘시와 산문을 두드려 만든다.’며 타자기에 대해 노래했고 미국 작가 폴 오스터는 ‘빵 굽는 타이프라이터’라며 타자기를 칭송했다.
▲내가 사용했던 타자기와 같은 모델인 크로바 타자기. |
타자기는 또한 그것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힘 좋은 남성들만의 영역이었던 노동의 영역에서 여성들의 일자리를 혁명적으로 넓히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화이트칼라라는 말도 타자기가 발명된 직후 나오게 된 말이다. 타자기는 이렇듯 20세기 문화를 풍미했다. 나 역시 글쇠 한 자 한 자를 누르면서 영화 속에 날올 법한 유명한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스티븐 킹 소설 '미져리'를 비디오로 보면서…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타자기가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으로 그 화려했던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우리나라 타자기 생산업체인 크로바와 마라톤이 95년 일찌감치 문 닫았고, 지구 상의 마지막 타자기 생산공장인 인도의 고드레지&보이스도 결국 문을 닫는단다. 결국 타자기는 골동품이 되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컴퓨터도 조만간 골동품이 될 것이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력 때문에…
하지만 난 여전히 타자기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 풋풋한 잉크 냄새와 한 자 한 자 글쇠를 찍을 때마다 ‘탁~탁!’하고 나는 경쾌한 리듬이 글 쓰는 재미를 더해주곤 했다. 물론 한밤중에 치는 타자 소리 때문에 잠이 깬 할머니의 잔소리도 꽤 들었지만 말이다.
박정혁의 달팽이의 기어달리기
달팽이는 매우 느린 동물 중 하나다. 그런 달팽이가 어디론가 기어가는 중이다. 자기 자신은 있는 힘껏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빠르다고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달팽이는 너무 느리다. 너무나 느려서 가고 있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다른 이들이 푸념을 늘어놓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돌아간다. 그의 걸음걸이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묵묵히 기어 달린다. 꽃이 피면 꽃향기 맡으며, 바람이 불면 바람과 대화하며, 비가 내리면 비와 함께 묵묵하게 한 방향으로만 기어 달린다. |
박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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