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시·청각 중복장애인 극단 날라갓(Nalaga'at)의 '빵만으론 안 돼요' 공연 장면. |
무대 위에 일렬로 선 11명의 시·청각 중복장애인들이 무대 위에서 빵을 만들기 시작한다. 밀가루를 반죽하며 저마다의 얼굴에 씌워진 흰 가면을 벗으며 자신을 소개하는 배우들. 제과점을 배경으로 시·청각장애인의 일상, 그리고 꿈과 희망이 춤과 노래를 통해 빵 굽는 냄새로 전해진다.
이스라엘 시·청각 중복장애인 극단 날라갓(Nalaga'at)의 '빵만으론 안 돼요'가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서 10일과 11일 두 차례 걸쳐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빵만으론 안 돼요'는 일상 속의 작은 희망들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잔잔한 이야기를 시·청각 중복장애인의 언어로 전달하는 작품이다. 장애인 배우들에게 장면의 전환을 진동으로 알려주기 위한 북소리가 울리고, 이에 맞춰 배우들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검은 옷을 입은 스텝과 함께 등장하고 퇴장한다.
수화를 촉감으로 읽기 위해 서로의 손을 더듬는 이들의 소통방식은 정적이면서도 인간애가 넘친다. 이러한 소통 방식이 자연스럽게 극 안에 스며들며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일조한다.
▲연출을 맡은 아디나 탈 씨. |
아디나 탈(Adina Tal)이 연출을 맡은 '빵만으론 안 돼요'는 시·청각 중복장애인 개개인의 이야기를 하나의 구조로 극화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빵을 만드는 과정에 배우들의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버무리면서도 설익지 않은 희망을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이탈리아 관광, 영화 보러 극장가기 등 소박한 일상의 꿈과 함께 반죽이 된 빵이 오븐 속에서 익을 동안 노래와 춤이 이어지고, 저마다의 이야기가 극의 막바지에 이르러 따뜻하게 구워진 빵과 함께 감미로운 향을 풍기며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내는 데는 2년간 리허설과 500회 이상 공연한 날라갓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호흡이 절대적 역할을 한다. 무대 위에서 감각에 의존해 스텝들과 동료 배우들의 터치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연기를 펼쳐내는 배우들은 자신의 희로애락을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 펼쳐낸다.
연출을 맡은 아디나 탈 씨는 "완벽한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 속에서 이 공연은 관객 모두에게 아무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과 우리 개개인의 현실뿐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일깨운다"라면서 "각자를 서로 연결하면서도 다른 점을 받아들이는 계기를 제공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아디나 탈 씨는 " '빵만으론 안 돼요'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라면서 "시각 청각 장애 배우들이 모든 인간은 평등할 뿐 다르지 않다는 것과 개개인이 자신의 방식과 능력에 맞는 전문성과 우수성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극단 날라갓은 이스라엘 자파 지역에 상설극장과 함께 시·청각 중복장애인들이 서빙하고 수화로 소통하는 '카피쉬(kapish)'와 레스토랑 '블랙아웃(Blackout)'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20만 명이 날라갓 센터를 방문했으며, '빵 만으론 안돼요'는 500회 공연을 돌파하는 등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소수자'를 주제로 열리는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는 개막작 '빵만으론 안 돼요'를 시작으로 오는 28일까지 의정부예술의 전당을 비롯한 시내 곳곳에서 '욕망의 파편들' 등 프랑스, 이스라엘, 미국 등 총 6개국 80개의 작품이 선보일 예정이다.
문의 : 031-828-5892~3
김가영 기자 chara@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