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복지
2011.11.17 18:19

소리 없는 몸짓의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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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는 양심 앞에서 정직하고자 했던 젊은이의 번민과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혹자는 아직 세상을 제대로 살아보지 않은 젊은이의 순수한 열정과 결백한 신념이 담겨 있다고도 하고 혹자는 시대적 상황으로 일제에 대한 저항시라고도 하지만 그런 것은 잠시 접어 두자.

이형복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이형복씨 ⓒ이복남
밤하늘의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담담하게 걸어가겠다는 결의는 차라리 슬픈 몸짓 같다. 자신이 걸어야 할 삶의 길에 순순히 순응하고자 했던 인간 말이다. 고통 속에서 사랑을, 어둠 속에서 빛을 처절하게 노래하는 장애인의 삶과 닮아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형복(1971년)씨는 경남 진해에서 4남매의 3째로 태어났다. 위로 형이 둘이고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있다. 아버지는 기계 만드는 사업을 하셨는데 그가 서너 살 무렵 아버지는 사업체를 부산 사상으로 옮겼다. 아버지가 무슨 기계를 만들었다는데 영업이 잘 안되셨는지 집은 늘 가난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그는 열병을 앓았다. 어머니는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업고 병원 문을 두드렸으나 그 새벽에 문을 열어주는 병원은 없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동네 병원을 전전하다가 하는 수 없이 큰 병원으로 갔으나 가망이 없다고 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형복씨의 고교시절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이형복씨의 고교시절 ⓒ이복남
“이미 때가 늦었는지 병원에 다닌 기억은 없습니다.” 병원에 가는 대신 어머니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아들 귀 들리게 해달라고 날마다 빌었다. 이형복씨는 정화수를 이명수라고 했다. 이명(耳鳴)이란 귀에서 들리는 소음에 대한 느낌으로 일종의 병으로 치부하는데 그가 알고 있는 이명수(耳鳴水)란 잘 들리지 않는 귀가 울려서 들리게 한다는 물이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어머니는 이명수가 아니라 이명술을 먹였다고 했다. 설마 중학생에게 술을? 실제로 술을 먹었단다. 언제? 일 년에 한번이란다. 그 때가 언제인데? 정월보름이란다.
아하, 그렇다면 그것은 청각장애인에게만 먹이는 이명술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먹는 정월대보름귀밝기술이다. 보름날 아침에 귀밝기술을 마시면 1년간 귀를 밝게 해준다는 풍습인데, 이형복씨에게 수화통역으로 설명을 해 주었지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부모님은 그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부산배화학교(청각장애인학교)에 입학시켰다. 어머니가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의 등하교는 아버지가 시켰다. 아버지와 버스를 타고 학교까지 갔고, 학교를 마치고 나오면 아버지가 기다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나왔는데 아버지가 없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다 지친 그는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마임'하는 이형복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마임'하는 이형복씨 ⓒ이복남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무작정 걸었다고 했다. 아무리 걸어도 아버지가 보이지 않아 길에서 울고불고 했다. 젊은 여자가 그를 발견해서 집이 어디냐고 묻는 것 같았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기에 대답도 못했던 것이다. 젊은 여자는 그를 파출소로 데려갔고 파출소에서 배화학교에 연락을 했다. 그가 파출소에 기다리고 있으려니 아버지가 왔다. 아버지는 일을 하시다가 늦었다고 했다.

“부모님이 수화를 할 줄 아세요?”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부모님하고 대화를 어떻게 하세요?” 간단한 이야기는 입모양이나 몸짓으로 알아채고 필요한 내용은 필담으로 한단다.

그는 제법 말을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 덕분이라고 했다. 선생은 그들에게 열심히 말을 가르쳤는데 파와 마를 가르칠 때는 촛불을 켰다. 파는 입바람을 일으켜 촛불이 꺼져야 되고, 마는 촛불이 꺼지면 안 된다고 했다. 오른손 둘째손가락으로 오른쪽 콧구멍을 막으면서 빵이라고 했는데 나중에는 오른쪽 콧구멍을 막는 것이 빵이다, 왼손바닥에 오른손을 오므려 끝을 댔다가 위로 올리며 손가락을 벌리는 것이 빵이라는 둥 학생들 간에 시비가 붙기도 했다. 사실 빵이라는 수화는 콧구멍을 막는 것이 아닌 두 번째 수화가 맞는 말이다.<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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