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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립전자에서 20년 넘게 일하다가 지역사회로 나와 '별꼴'에서 커피 내리는 일을 맡은 김명학 씨.

 

한적한 평일 오후 인문학 학습을 위해 한두 명씩 모여들고 있는 문화예술카페 '별꼴'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하자 중증장애인 바리스타 김명학(뇌병변장애 1급) 씨가 느리고 느린 속도로 한 잔의 커피를 만든다. 커피에 대해 잘 모르며 커피 맛 또한 잘 모른다는 그는 공간의 느낌과 사람 그리고 커피가 어우러진 감성을 찻잔에 담아 내민다.

 

"우선은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바리스타 교육은 2개월 정도 받았는데 사실 아직 커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커피맛도 잘 몰라요. 그동안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 말고는 마셔본 적이 없거든요. 20년 동안 정립전자에서 일했었는데 폐쇄적인 공간에서 다람쥐 쳇바퀴처럼 일하다 보면 나 자신도 멍할 때가 잦았어요. 지금은 뭐랄까 늘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 공간이 마음에 들어요"

 

지난 10월 14일 문을 연 카페 '별꼴'은 연구공간 수유너머R와 함께 공간을 쓰며 시 읽기, 체호프 단편 읽기, 가난뱅이 생활기술 워크숍 등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매일매일 커피를 만들고 있는 그는 이 공간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손쉽게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고 직접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키워가고 싶다고 말한다.

 

"수유너머와 공간을 나눠쓰니 우선 싸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아요. 하지만 무엇보다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 좋아요. 별꼴이 문화예술카페라 여러 사람이 모여서 시도 읽고, 연극도 하고, 쿠키나 빵을 만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문화활동을 하고 있어요. 장애인들은 문화예술을 접하기가 어렵고, 그런 공간이 있다고 해도 접근성이 안 좋은데 '별꼴'에 모여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함께 문화예술을 접해본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동료 바리스타와 함께 커피를 만들고 있는 김명학 씨.

 

어린 시절, 휠체어가 없어 개조한 자전거를 타고 가끔 외출했을 뿐 대부분 방안에서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보냈다는 명학 씨. 그는 고향인 전북 부안에서 30여 년을 재가장애인으로 살았다. 30대가 되던 무렵 그는 문득 하는 일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것이 견딜 수 없었고, 비록 돈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을 하고 싶은 간절함에 구인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장애인복지신문에서 정립전자 구인공고를 보고 서울로 상경했다. 그렇게 20여 년의 정립회관 생활이 시작되었다.

 

명학 씨의 서울생활은 낯설고 힘들었지만, 당시 정립회관에 있던 노들장애인야학에 다니게 되면서 사회의 모든 문제에 대해 새롭게 눈뜨기 시작했다. 교육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받았으며 장애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책임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틈틈이 길거리에서 현장 투쟁을 함께하며 자신이 꿈꾸던 삶을 만들어나갔다.

 

정립전자 작업장에서 제품 제조 준비작업을 해왔던 명학 씨는 20여 년간의 기숙사 생활을 청산하고 지난 9월부터 한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단기 무상임대주택 평원재에 살면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자립은 정립전자에 있을 때에도 한 거지만 이번엔 정말 참다운 자유를 느끼고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할 수도 있고…. 물론 정립전자에 있을 때도 편했어요. 3층은 숙소고 2층이 작업장이라 이동하기도 편해서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밖에 잘 안 나가게 되더라고요. 지역사회안에 있어도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밖은 정말 딴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명학 씨는 자신이 한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재가장애인으로 집에서, 시설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아주 작은 꿈일지라도 그 꿈을 안고 지역사회로 나오라고 이야기하는 장애인활동가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카페 '별꼴'에서 바리스타로서 하는 일들이 그 꿈을 향한 과정이다. 장애인이 저마다 자신의 일을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그가 바꾸고 싶어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하며 나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비록 혼자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고, 또 느리지만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돈도 중요하지만 노동하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부에서 장애인에게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 더 많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단 사회에 나와서 부딪혀보는 게 무엇보다 필요해요."

 

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그는 '별꼴'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동료에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깊은 향을 풍기는 한 잔의 커피를 내밀며 삶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는 동생에게 커피를 만들어주었을 때가 기뻤어요. 타인에 의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이곳에서 크던 작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열고 있는 문화예술카페 '별꼴'.



김가영 기자 chara@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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