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닮은 종소리 들려 나를 흔들고 가네
그대 없는 이 빈자리 눈물만이 채워지는데
이 세상 그 누가 나보다 가슴 시릴까
세월의 강에 나를 남기고 떠나버린 사랑아
내 생애 단 한번 한번이라도 그대를 만나고 싶어’
이수진 노래의 ‘그대의 빈자리’이다. 아무도 없이 홀로 가슴 시리게 살아온 세월, 가슴 속 슬픔이 가득한 빈자리에는 스산한 바람이 스쳐 갈 뿐이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참고 또 참았던 눈물 속에서도 그저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고 장애가 없던 그 시절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신흥금방에서 김호락씨 ⓒ이복남 |
한말의 끝 부분 쯤 될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글방을 운영했다. 할머니의 친정은 인근에서 꽤 부자였었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집에 돈이 있으니 가난한 선비를 사위로 삼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막상 할머니가 시집을 와 보니 서방은 날마다 공자 왈 맹자 왈 하고 있을 뿐 집안에는 입에 풀칠을 할 땟거리도 없었다.
할머니는 친정으로 달려갔다. “아버지가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보냈으니 시댁이 못사는 것도 아버지가 책임을 져야 될 겁니다.” 할머니는 친정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외양간에 매어진 소를 몰고 나왔다. 당시만 해도 농경사회에서 소는 큰 재산이었다. 친정아버지는 소를 몰고 가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할머니가 친정에서 재산을 얼마나 빼돌렸는지 모르겠지만 그 소를 발판으로 집안을 일으켜 세웠고 슬하에 칠남매를 두었다. 첫째와 둘째는 공부도 많이 가르쳐서 면장 등 공무원도 시켰고, 칠남매가 결혼을 하여 분가 할 때는 안채와 바깥채가 딸린 한옥 기와 두 칸 집과 논 서마지기씩을 때 내 주었다.
▲김호락씨의 빛바랜 사진첩에서 ⓒ이복남 |
“세상이 다 내 것이었고 행복이 뭔지도 몰랐지만 불평불만 없는 천진난만한 아이였었지요.” 5살이 되던 해 늦가을이었다. 물 빠진 논에는 벼도 이미 다 베고 타작도 끝낸 터라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논으로 가려면 어른들이 모여 앉은 당산나무 밑을 지나가야 되는데 한 어른이 그를 가리키며 ‘저 놈 누구 아들인지 장차 장군 깜이네’ 그러자 누군가가 “갑점이 아들 아이가”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다.
논에서는 동네 아이들의 기마전이 시작되었다. 기마전(騎馬戰)은 보통 4명이 한 조가 되어 세 명이 말(人馬)이 되고 그 위에 한 명은 목말을 태운 기수(騎手)가 되는데 몇 패가 편을 갈라 목발을 탄 기수의 모자를 벗기거나 눌러 떨어뜨리거나 하는 경기이다. 그가 비록 다섯 살이라고 해도 장차 장군 깜이 될 만큼 튼실하므로 동네 아이들의 기마전에는 그를 참여 시켜 주었는데 그는 아직 어렸기에 목말을 탄 기수를 맡곤 했다.
그가 기수가 되어서 곧잘 상대편 기수의 모자를 뺏곤 했는데 그날은 일이 생기려고 그랬는지 아래에서 받쳐주는 인마(人馬)들의 협동이 잘 되지 않았는지, 그만 상대편 기수에게 모자를 뺏기면서 목말을 탄 상태에서 머리부터 논바닥으로 처박고 말았다.
▲김호락씨와 어머니, 누이동생 부부와 조카 ⓒ이복남 |
척추 뼈가 부러졌다면 견디지 못했을 텐데 그래도 견딘 것을 보면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 척추에 이상이 생긴 것만은 분명했다. 그는 잠이 들었으나 열이 펄펄 끓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정신을 잃었다.
“할머니가 생계란을 떠 먹여서 간신히 살아났다고 합디다.”
할머니는 슬하에 7남매나 두었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그를 챙겼던 것이다. 일주일쯤 후에야 정신은 돌아왔는데 일어서지를 못했다. 일어서려고 하니까 다리에 힘이 없어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등뼈의 가운데쯤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