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서문에서 방글라데시 삐르뿌르에 사는 어린 소녀 리피는 이 세상 어딘가에는 어린이들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있지 않은지 궁금해한다.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이 절박한 수많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삶을 해결하기 위해 현지에서 활동하는 NGO 활동가들을 칭찬해 줘야 할 듯하지만 저자가
본 현실은 이와는 동떨어져 있다. NGO 활동가들은 마이크로파이낸스 활동을 하면서 마치 사채업자처럼 되었고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은 빚에 허덕이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빈곤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과 전쟁을 통해 1971년 독립한 나라로 정치적, 종교적 혼란에다
지리적 약점까지 겹친 저개발, 개발도상국이다. 방글라데시는 흔히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지만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짐작할 수 있듯, 책을 보면 그런 이야기는 별 신빙성 없는 허황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있다.
그라민 은행을 위시한 NGO에서 가난한 농촌 여성들에게 소액 대출을 해 주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그림자국가’ 역할을 수행하는
NGO에게 종속되어, 빈곤이 마치 자신들의 책임인양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저자는 NGO들이 1970년대 가난한 사람들을 교육하고 의식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다 1990년대에 이르러 왜 신자유주의적 인간을 만드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는지 분석한다.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NGO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은 나날이 좌절에 빠지게 된다. 고향을 떠날 수도 없는 가난한 이들은 대출을 갚지 못해
다까와 같은 곳에 엄청난 슬럼을 형성해 살아가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한국이나 일본 등에 가서 이주 노동자로 일하기도 한다. 결국 방글라데시에서
소액 대출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끼워 팔기 식으로 제공되는 사업 모델들도 현실적이지 못해서 부채가 증가하고,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은 일자리 확충 등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지만 신자유주의를 퍼뜨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는 그라민 은행 등의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은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그저 개개인의 책임으로 가난 문제를 떠넘긴다.
이 책에는 무수히 많은 NGO 단체 이름이 약어로 등장한다. 가장 큰 NGO 분야를 가진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인 그라민 은행과 공동체간자원구축(BRAC, Building Resources Across Communities)의 발원지이다. 흔히
언론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규모에 맞는 적당한 양의 자본을 대출해 주고 이를 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게 만들었다고 이들
기구들을 칭송하곤 한다. 실제 NGO들은 이윤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빈민을 도와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그렇기에 풀뿌리 차원에서
세계화를 실현하는 기관으로 점차 변모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업가이자 소비자인 시민’이라는 이상을 심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농촌
여성들은 성공하더라도 기껏 동네 사채업자 수준의 일을 할 뿐이다.
앞서 말했듯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UN이나 선진국에서 원조금을 받아서 이를 어려운 사람에게 집행하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필수품을 제공하거나 교육이나 복지에 투자하는 등 인도주의적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 NGO다. NGO는 하나로 묶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비영리기구이면서, 서비스를 공급하면서 분쟁을 예방하는 평화주의의 수단이기도 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혜자들의
습관과 행동을 규제하고, 국가와 공적 분야 기관들이 해 오던 서비스와 기능들을 상당 부분 떼어 와 국가의 사유화를 돕는 역할도 한다.
방글라데시에서 NGO가 만들어진 1970년대에 NGO는 절실하게 필요한 사회복지를 제공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의식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시간이 흘러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는 과정을 거쳐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점차 신용 대출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NGO의 성격이 변화했다. 여기에 그라민 은행을 만든 무함마드 유누스 교수가 큰 역할을 했다. NGO가 국제 자본의
헤게모니 아래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NGO는 이윤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빈민도 도와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했고, 이렇게 대출 상환을 강요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가장 취약한 가난한 여성들에게 자본주의적 사업가 정신을 주입하게 된다. 스스로를 지키기도 버거운 이 여성들은 여러 압력 속에서
생활이 피기는커녕 가지고 있는 아주 작은 재산마저도 잃게 된 것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이러한 여러 사례들을 보여 주고,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가지고 여성들이 스스로 NGO와의 관계를 지배-종속 관계로 설정하게 되는 현실을 고발한다.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여성들 (사진 제공 : 오월의봄)
방글라데시
가난한 농촌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요인은 다양하다. 우선 이들 여성들은 전통적인 농촌 사회에서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다. 거기에 마을
공동체에서도 남자들에 비해 너무 자유가 없다. 또한 이슬람 전통으로 여성에게 억압적인 여러 규율도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NGO들이 상환
압박을 하기 위해 이런 폭력들을 이용하는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여성들은 일종의 연대 보증을 서게 되어 서로 간에 대출금을 갚도록
압박하기까지 한다. 이 책의 4장 부채의 사회적 삶에서 방글라데시 농촌 여성들의 여러 사례를 통해 이런 현실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책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최전선에서 수행하는 NGO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가난한 사람들의 푼돈까지 싹싹
긁어모아 가는 자본의 모습이 보인다. 방글라데시 농촌 여성의 이중 삼중의 고통도 느낄 수 있다. 책 마지막 부분에는 ‘착한 자본주의의 허상을
넘어’라는 제목으로 해제도 실려 있고, 여기서 한국 독자들이 생각해 볼 만한 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시간이 부족한
독자는 뒤에 실린 해제만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인류학자가 쓴 사회과학 책이라 내용이 딱딱한 편이다.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고,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가난하고
취약한 농촌 사람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이를 큰 틀에서 본다면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통치성 등의 논의를 이 책을 통해 좀 더 사례 중심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러한 기본 인식을 가지고 우리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방글라데시는 한국보다 훨씬 열악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좀 더 직접적인 지원이 많이 주어져야 하고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약탈적인
성격을 버리고 원래 NGO의 역할을 다시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에 더해 여성들이 종속되어 있는 여러 사회적 굴레들을 파괴하는 것이
절실하다.
* 글쓴이 : 장원. 출판사에서 수년간 편집자로 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