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정신병원에서는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치료법이 등장한다. 소설 끝에 주인공 맥머피가 받게 되는 전두엽 절제술은 1935년 한
포르투갈 의사의 실험에서 비롯된다. 전두엽을 잘라낸 원숭이가 온순해진다는 점에 착안해 정신장애인의 전두엽을 잘라냈다. 이 수술은 정신장애인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일부 있었다는 이유로 빈번하게 자행됐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영국
등에서 수만 명의 정신장애인이 이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이 수술이 뇌 일부를 잘라내는 만큼 부작용이 크다는 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수술
받던 사람들 일부는 죽었다. 살아나온 사람 일부는 침대에서 누워 지내기만 했다. 이 정신병원의 또 다른 치료 수단으로는 전기충격이 있다. 책에 등장하는 설명을 보면 의사 일행이 우연히 도살장에 가서 소를 망치로 잡는 모습을 본다. 망치로 머리를 맞는 소 중 일부는 죽지 않고 발작을 일으킨다. 의사들은 뇌전증(간질) 장애인들이 발작 후 온순해지는 것을 떠올리며, 인간의 머리에 전기충격을 줘 강제로 발작을 일으킨다. 지금은 전기충격을 가축을 도살할 때 사용한다. 이마저도 동물권 단체에서 잔인한 방식이라며 극구 반대하는 형편이다.
정신병원의 ‘치료’는 누구를 위한 치료인가
약물과 상담 같은 가벼운 치료부터 전두엽 절제술 같은 위험한 치료를 거친 수용인들은 때때로 “신제품보다 더 훌륭하게 고쳐져서” 사회로 돌아간다. 수용인 일부가 죽거나 부작용에 시달려도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됐다. 도리어 수용인들 또한 치료에 대한 두려움 등 여러 이유로 희생을 감내하게 된다.
랫치드 수간호사는 맥머피를 전두엽 절제술 수술대로 보낸다. 맥머피는 그전까지 보였던 삶의 의지를 모두 잃고.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의학적으로 정신장애인이 아니었으므로, 그에 대한 치료의 목적은 적절한 치료를 통해 사회복귀를 돕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병원의 질서와 안녕, 수간호사의 권위에 대든 것에 대한 징벌이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소설 속 수용인들은 이러한 비상식적 치료에 반대했고, 브롬든은 병원을 탈출해 대지로 나아간다. 수많은 브롬든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해온 것에 힘입어 오늘날 소설에 등장하는 정신병원의 ‘치료법’은 대체로 사라지는 듯한 분위기다. 그러나 현재에도 장애를 ‘치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적정한 의학적 성취가 장애인들의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일부나마 덜어낼 수 있다면 그것을 반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
등을 사회 바깥으로 내몰고 ‘치료’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면, 이 소설의 이야기들은 지금 여기에서 재현될 수밖에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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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복지
2016.02.18 12:44
그들의 장애 ‘치료’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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